프리미엄 패션 숍, 건강검진, 레스토랑 등 일반인에게도 오픈

리비에라 바이 마에스트로
18세기 프랑스 소설가 쇼데를르 드 라클로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는 프랑스 혁명 전야의 파리 귀족사회를 염탐했다. 특히 사교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메르퇴이유 부인과 바람둥이 비콩트의 계략은 프랑스 상류사회의 비밀스러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은 영화 <위험한 관계>, <발몽>,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으로 이어지며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전해졌다.

소설과 영화 속 프랑스 상류층의 화려하면서도 은밀한 사교계는 귀족이라는 이들의 감미로운 생활을 들추며 탐욕과 쾌락에 젖은 삶을 드러낸다. 그러나 상류사회의 귀족들이 영위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부러움의 대상이 됐고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을 가져다 줬다.

이러한 귀족은 현재에 와서 VIP(Very Important person)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그들만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교계가 아닌 VIP들의 프라이비트한 공간들이 형성되며 일반인들에게는 그 존재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는 VIP보다 한 단계 높은 극소수의 상류층으로 'very'가 하나 더 붙은 VVIP 계층이 형성됐다. 이들은 상위 1%도 아닌 0.1%의 부유층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사회는 그들에게 더욱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귀족마케팅'이라는 말조차 VVIP들을 뜻하는 신조어로 부각했을 정도다. VVIP가 선호하는 특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업계에선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성행한다.

최근 VVIP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맞추기 위한 업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을 타깃으로 금융계와 패션계 등은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눈에 띄는 점은 VVIP 공간들이 외진 곳에 숨기보다는 일반인들에게도 오픈돼 있다는 사실이다.

오룸다이닝
LG패션 마에스트로는 최근 VVIP를 위한 프리미엄 숍 '(Riviera by maestro)'를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론칭했다. 이태리와 프랑스 브랜드인 루비암, 헤르노, 볼리올리, 브로이어, 구띠리지 등 정통 클래식 캐주얼을 갖췄다. 3040세대 전문직 등의 고소득층 남성을 타깃으로, 재킷 하나 가격만 150만 원 이상의 고가 의류로 구성돼 있다.

마에스트로 측은 "재구매율이 50% 이상"이라며 한 번 구매한 VVIP 고객들의 만족도가 그만큼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태리나 프랑스에서 제품을 구입한 적이 있는 고객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 에서 판매하는 의류들은 유럽에서도 고가, 즉 명품으로 인정되고 있는 옷들이라는 사실이다.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들이기 때문에 구입 경험이 있는 VVIP 고객들에게만 적용되는 제품인 셈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살려 강남 중심부에 프리미엄 숍을 오픈하고 VVIP 계층의 발길을 잡는 마케팅을 세웠다. 특히 고가 제품이 주를 이루다 보니 백화점 내 편집숍으로 오픈돼 있어도 일반인들이 다가가기엔 보이지 않는 문턱이 존재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워낙 고가의 제품들은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 고객들에게 판매를 유도하진 않는다. 이런 제품은 한두 벌만으로 백화점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백화점에서도 VVIP 매장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도 VVIP를 위한 전용 점포를 마련했다. 서울 장충동 호텔신라 6층에 마련된 'SNI호텔신라' 점포는 예탁자산 30억 원 이상의 초고액자산가들을 위한 프라이비트한 투자 공간이다. 429㎡(130평)규모로 럭셔리한 상담실과 세미나실, 와인바 등이 갖춰져 있으며, 10년 경력 이상의 베테랑 PB(프라이비트 뱅커) 10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말 그대로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고액 자산가들의 특성을 감안해 특급호텔에서 세무, 부동산, 가업승계 컨설팅 등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반얀트리클럽앤스파
의료계도 VVIP들을 위한 프리미엄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는 1800만 원짜리 '파트너스 프리미어 CEO'라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내걸었다. 서울성모병원도 외국인과 VVIP를 겨냥해 2000만 원이라는 비용의 '마리안 멤버스 플레티넘'을, 삼성서울병원은 이미 지난해 1500만 원짜리 '인터내셔널 CEO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아랍, 몽골 등의 왕족이나 부호들이 예약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누구든지 드나들 수는 있어도 아무나 이용할 수 없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NO 회원제, VVIP 공간들 문을 열다

'2주 입원비가 1200만 원?' 놀랄 일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천태만상이다. 배우 고소영은 최근 득남을 한 이후 강남의 한 산후조리원에 입원해 몸조리를 했다. 그런데 이 산후조리원이 VVIP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 연예인과 재벌가 등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산후조리원이다.

간판도 없을 뿐더러 입소문으로만 찾아가야 하는 곳이다. 2주 입원하는 최저 비용이 400만 원선. 고가의 조리원이지만 철저한 보안이 지켜지는 만큼 연예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따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어서 일반인들도 입원은 가능하다.

최근 이런 VVIP시설을 갖추고 일반인들을 유혹하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청담동의 도 올 4월부터 비밀스러운 공간을 오픈했다. 외부에서만 보면 안의 공간을 도무지 예감할 수 없는 6층짜리 건물로 되어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화려한 외관에 비해 내부를 알 수 없어 박물관이나 갤러리쯤으로 생각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5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도 아페리티프를 즐길 수 있는 공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각 룸에는 왕족풍의 인테리어로 또 한번 놀란다. 오룸갤러리를 이용하는 VVIP 고객들만 이용할 수 있던 공간을 일반 고객에게도 공개한 것이다. 철저하게 프라이비트 다이닝을 즐길 수 있어서 연인들의 프러포즈 장소나 모임이나 정찬 시에 이용되기도 한다.

옆 테이블에 누가 있는지,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전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룸 안에 화장실이 마련돼 있을 정도로 VVIP들의 사생활을 중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인 회원권이 1억 3000만 원, 가입한 부모(1억 8500만원)들의 자녀 한 명당 2500만원의 가입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남산의 리조트 호텔 '반얀트리 클럽&스파 서울'(이하 반얀트리 클럽)은 VVIP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곳이다. 재벌가 사람들이나 연예인, 정치인 등 사생활에 예민해하면서 중시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하지만 회원 가입비 등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상위 1%의 부자들만이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아주 은밀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반얀트리 클럽은 대중에게 공개되는 일이 많아졌다. 가수나 예술 단체들의 기자간담회가 자주 열리며 언론에 오픈된 것이다. VVIP들의 프라이비트한 공간이라는 점 때문에 높은 장벽을 실감했던 사람들도 언론을 통해 비친 이곳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곳은 회원이 아닌 비회원들에게도 오픈하면서 대중의 끊임없는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10월 중에는 비회원들도 대상으로 한 브런치 콘서트와 영화 제작보고회가 나란히 열릴 계획. 올해로 내한 10주년을 맞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야외수영장 디 오아시스에서 브런치 콘서트를 연다. 할리우드 영화 <마이 라이프 마이 시크릿>의 배우 캐빈 베이컨이 참석하는 제작보고회도 즐길 만하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VVIP 마케팅은 고객에게 '나는 특별하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매출을 유도하고고 고급이미지를 높이는 여러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앞으로 이 같은 VVIP 마케팅을 적용한 곳이 대거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