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보령시 성주산

성주산 자연휴양림에 가을이 짙어간다
보령시(옛 대천시와 보령군을 합한 새 지명)는 바다와 산을 모두 끼고 있는 천혜의 휴양지다. 서해안에 대천, 무창포, 홀뫼 등의 해수욕장이 있는가 하면 동쪽으로는 금북정맥이 길고 우람하게 뻗으면서 오서산(791m)과 성주산(680m) 등의 준봉을 빚어 놓았다.

특히 성주산은 해발 600미터 이상의 산 가운데 서해안에서 가장 가까워 등산과 휴양, 삼림욕, 해수욕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며 늦가을 단풍도 퍽이나 곱다.

1994년까지만 해도 성주산은 석탄을 캐던 광산 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던 탄광들이 모두 문을 닫았고 활기 넘쳤던 광산촌들은 폐허로 변했다. 연탄 전성기에는 개들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성주산 일대가 시대의 변천에 두 손 들고 폐광으로 바뀐 것이다.

폐광 지대라고 하면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우선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성주산은 다르다. 광산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부터 산림을 잘 보존해온 덕분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낙락장송들이 탄광의 버팀목으로 희생되지 않은 채 아직 우거져 있고 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층층나무, 신갈나무 등의 낙엽 활엽 교목들도 울창한 숲을 간직하고 있다.

숲길 따라 거닐며 즐기는 늦가을 단풍

일가족이 쉬기에 좋은 성주산 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
성주산은 크게 화장골 지구와 심원동(심연동) 지구로 나눌 수 있다. 두 골짜기 모두, 계곡미 자체는 돋보일 만큼 빼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맑고 시원한 물이 알맞게 흘러 휴양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곳에는 성주산 자연휴양림이 들어서서 주민들에게 아늑한 휴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숲 속의 집(통나무집), 야영장, 평상 등의 시설은 주로 화장골에 집중 배치되어 있고 심원동 쪽에는 별다른 시설 없이 계곡을 따라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성주산에는 임도(임간도로, 산림도로)와 등산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숲 속으로 뚫린 임도와 등산로를 따라 거닐며 즐기는 삼림욕도 상쾌하기 그지없으며 늦가을에는 활활 타오르는 단풍이 나그네를 반긴다. 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성주산 단풍은 대략 11월 초순부터 중순 사이에 물든다.

성주산의 여러 등산로 가운데 성주산 자연휴양림에서 전망대까지 오르내리는 왕복 2시간 코스는 그다지 힘들지 않으므로 산책 삼아 다녀올 만하다. 원두막 같은 목조 2층 건물인 전망대에서는 성주산 북쪽 줄기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선종9산의 하나였던 성주사 옛터

국보 8호로 지정된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성주산 자락의 성주골에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성주사 옛터(성주사지)가 있다. ‘성주(聖住)’는 ‘성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는 뜻이라고 전해진다. 성주사는 신라 문성왕 9년(847년), 낭혜화상(801~888년)이 세웠다.

법명이 무염인 낭혜화상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으로 당나라에서 도를 닦은 뒤 귀국해 성주사를 창건했다. 당시에는 신라 선종9산의 하나인 대가람이었으나 지금은 1만여 평의 넓은 터전에 주춧돌과 탑들만이 남아 옛 영화를 짐작케 할 뿐이다.

성주사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문화재는 다. 낭혜화상을 기리기 위해 신라 진성여왕 4년(890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석은 남포오석으로 만들어졌고 조각 솜씨가 섬세하고 정교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신라 최고의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지었다는 데 있다.

최치원의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문장력이 엿보이는 이 비문은 신라의 골품 제도에 대한 귀중한 기록을 담고 있으며 글씨는 최치원의 종제(사촌 아우)인 최인곤이 썼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 경주 초월산 숭복사비와 더불어, 최치원이 지은 우리나라 4대 금석문(金石文)의 하나로 꼽히는 걸작이다.

이외에도 성주사터에는 5층석탑(보물 19호), 중앙3층석탑(보물 20호), 서3층석탑(보물 47호), 동3층석탑(충남 유형문화재 26호), 석등(충남 유형 문화재 33호) 등이 남아 있다. 또한 1968년부터 두 차례에 걸친 발굴 작업에 의해 금당, 삼천불전,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발견되었고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의 와당(기와 조각)도 출토되었다.

성주산 단풍은 11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물든다
찾아가는 길

대천 나들목에서 서해안(1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보령 시내 쪽으로 들어오다가 부여 방면 40번 국도를 따라간다. 성주 터널을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가면 성주사 옛터를 지나 심원동으로 이어지고 직진에 가까운 오른쪽 40번 국도를 100미터 남짓 더듬은 다음 좌회전하면 화장골 및 성주산 자연휴양림에 다다른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고속버스나 직행버스를 이용해 보령시로 온다. 장항선 열차를 타고 대천역에서 내려도 된다. 보령시에서 심원동 입구는 시내버스, 성주리(화장골 및 성주산 자연휴양림 입구)는 시내버스나 부여행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맛있는 집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어망동의 장은 포구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에 나오는 자연산 석화로 유명하다. 천수만 특산인 석화를 석쇠에 올리고 숯불이나 연탄불로 구우면 퍽퍽 소리와 함께 굴 껍질이 벌어진다. 노릇노릇하게 살짝 익은 속살을 초장에 찍어 먹는 맛이 향긋하면서 고소하고 담백하다. 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는 까닭에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자연산 석화 외에 양식 굴도 있는데 자연산은 껍질이 짙은 반면에 양식 굴은 희끗희끗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굴 구이를 맛본 다음 시원하고 구수한 굴국수로 입가심을 하면 금상첨화다.


1만여 평의 넓은 터전에 주춧돌과 탑들만이 남은 성주사 옛터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