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제천 능강 솟대문화원안마당, 뒷뜰에 제각각 희망의 표식들…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산수의 고장 단양에서 제천을 향해 가는 길목에는 강바람 산바람마저 굽이치다 가뿐 숨결을 고른다는 고개마루가 있다.

아득한 발 아래로 청풍호 푸른 물결이 한손에 잡힐 듯하고, 뒤로는 켜켜이 이어진 준령들이 튼실한 바람막이가 되어 늘 고운 햇살이 머무는 언덕이다. 이곳엔 솟대들이 비상의 꿈을 품고 군무를 펼치는 능강 솟대문화원이 있다.

타박타박 오솔길을 올라 솟대문화원에 이르자, 너른 마당에 각기 다른 모양의 솟대들이 인사하듯 반긴다. 까마득히 높은 등걸에 얹어 놓은 크고 작은 나무새가 있다면, 저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솟대와 무심히 강물을 내려다보는 나무새가 있다.

장독대에 살그머니 내려앉은 올망졸망한 솟대가 있는가 하면, 성큼 지붕 위에 둥지를 튼 나무새도 있다.

그리고 산속의 긴 밤, 솟대문화원 뜰을 밝힐 가로등에 단단히 자리매김을 한 채 오도카니 산을 향해 돌아앉은 나무새가 있으며,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배이는, 처마 끝에 오종종하게 열을 지어 선 솟대들도 있다.

이렇게 능강 솟대문화원에서 마주한 솟대들은 이전에 보던 다른 곳의 고만고만한 솟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금세라도 종종걸음 치며 일상의 주변을 맴돌거나, 어느 순간 내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아 소곤소곤, 깊어가는 가을 숲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하지만 솟대문화원 마당 곳곳의 나무새들은 제 본분을 잊지 않은 묵언의 수행자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변함 없는 제 몫의 희망을 단단히 여미고 비상의 찬란한 순간을 간절히 기원한다.

마당의 높디 높게 세운 들 솟대를 돌아봤다면, 이제는 예술적 가치가 빛을 발하는 전시용 솟대 작품을 감상할 차례다.

냉큼 실내 전시관 입구로 향하는데 한창 오수를 즐기던 누렁이가 부시시 졸음을 털고 일어서더니 길안내를 자청한다. 누렁이를 따라 전시관으로 들어서려는 찰라 뒤따르던 햇살이 전시관의 검은 대리석 벽에 산과 나무, 그림자를 새기더니 한 순간 수많은 솟대들을 주르르 세운다.

'촬영 절대불가! 마음에만 담아가세요'란 문구가 심기를 어지럽히지만 멋진 솟대 작품을 만날 설레임을 꺾지는 못했다. 살며시 마음결을 가다듬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수십 마리의 나무새가 어우러진 대형 작품부터 덜컥, 내밀어지는 손을 자꾸 부끄럽게 하는 앙증맞은 소품까지,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솟대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전시실에서의 감동은 근사한 솟대 작품이 지닌 예술성만은 아니다. 솟대의 크기와 높이가 희망의 순도와 간절함에 비례하지 않듯, 솟대를 세우는 방법과 장소 또한 주어진 공간과 현실적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성을 발휘해 아름다운 솟대 세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전통 솟대 문화를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생활과 친근한 조형물로 인식의 전환을 이끄는 소중한 장소가 있다는 게 반갑고 감사했다.

더구나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즉석에서 구매할 수도 있지만, 그저 마음껏 눈과 마음으로 즐기며 감상한 후 가슴에 꼭꼭 챙겨 와 자신만의 솟대 만들기에 도전해 보는 '산 배움의 장' 역할까지 한다.

하기에 솟대 전시관의 가장 솔깃한 관심거리는 현란한 조각솜씨의 유려한 대작들보다 오히려 제작과정이 단순해 찬찬히 살펴보기만 해도 눈썰미 좋은 이라면 금세 따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삶의 공간에 나의 희망을 담은, 나만의 솟대를 세울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될 솟대 작품들이 더 인기였다. 해서 늘 가까이서 보고 즐길 수 있는 자그마한 솟대 작품 앞에선 너나없이 멈춰진 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요모조모 열심히 관찰을 하는 사이 이내 저마다의 마음 한 켠에 자신의 희망을 닮은 나무새를 살포시 앉힌 예쁜 솟대 하나씩을 세워갔다.

실내 전시관을 벗어나 뒤란을 돌며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솟대들과 만났다. 가장 먼저 마주친 솔방울 두어 개로 만들어진 소박한 솟대의 곰살스러움에 미소가 머금어지고, 사시사철 푸르른 대나무숲에 세워진 솟대에게선 싱싱한 기운이 살아 올랐다. 그런가 하면 가을꽃 사이에 다소곳하게 무리진 솟대들로부터는 살픗살픗 고운 향기가 날린다.

그렇게 뒤란의 솟대들은 앞뜰의 장대한 솟대의 모습도 아니고, 실내전시관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귀한 자태의 솟대 형상도 아니건만 낮은 등걸에, 소박한 본래의 생김 그대로 자신의 희망을 향해 훨훨 솟구쳐 오를 하늘로 당당히 고개를 든 채 그들만의 비상의 순간을 꿈꾸고 있다.

어느새 뉘엿해지는 햇살에 걸음을 재촉해 앞마당에 다시 서자 마치 문화원을 호위하는 병사인 양 빙 둘러선 솟대들은 제 그림자의 길이를 늘려가며 잦아드는 햇빛을 쫓고 있다.

스쳐 지나칠 여행길에서 예정 없이 불쑥 들어섰던 능강 솟대문화원. 그곳은 안과 밖, 앞마당과 뒤뜰, 그리고 하늘과 땅에서 저마다 다른 생김, 제각각의 형상을 지닌 솟대들이 모여 한결 같은 비상을 염원하는 나무새들의 천국이자 아름다운 희망의 표식인 솟대들의 나라다.

그리고 두어 시간 남짓이면 전시관 앞마당과 뒤뜰을 걸으며 투명한 햇살, 투명한 하늘, 투명한 물빛이 빚어내는 만추가경의 절경에 만취할 수 있는 근사한 가을 나들이 장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은 높이 오른 수많은 솟대들을 보며 일상의 삶에 지쳐 슬며시 유기했던 희망이란 에너지를 다시금 갈무리하는 깊은 여운을 지닌 감회가 특별한 여행지다.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산 6번지에 소재. 입장료는 무료이고 개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동절기는 오후 5시에 폐관한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글·사진=양지혜 여행작가 himei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