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리카르도 방한 4종류 선보여… FTA 발효 후 지각변동 예고

'와인을 설명하는 데 웬 지도야?'

11월 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현대갤러리 내 레스토랑 두가헌에선 조촐한 분위기의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씨는 자신의 와이너리(winery)를 설명하기 위해 지구를 촬영한 위성사진, 유럽의 지도, 스페인 일대 지역의 지도 사진 등을 스크린에 보여줬다.

지역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이 달라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스페인은 새로운 경작지를 허가받는 데 무척 힘이 들어요. 그래도 제가 소유한 Pago Diana 와이너리는 테르강이 지중해와 만나는 강의 하류 유역에 위치하죠. 비옥한 침전물과 토양,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최적의 조건에서 지중해 포도의 상위 품종들을 생산하고 있어요."

리카르도 씨는 사실 신경외과 전문의다. 그는 세계통증학회(WIP) 회장으로, 지난 2006년부터 포도 재배 및 와인 생산에 직접 나서며 '닥터스 와인'의 대표주자로 불리고 있다.

스페인 의사 의 와인 왼쪽부터 'clos diana', 'teria', 'dianel lo'
'닥터스 와인'은 의사들이 와인을 직접 만들면서 붙여진 이름. 리카르도 씨는 스페인 와인의 전도사로서 아시아에선 한국에 가장 먼저 자신의 와인을 소개했다. "한국을 좋아하지만, 한국 사람이 좋아서 한국이 좋아졌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스페인 와인은 어떤 매력을 지닌 것일까.

스페인 와인이 끌리는 이유

"스페인 와인이 한국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지닐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와 유럽연합의 FTA가 체결되면서 가장 관심을 받은 분야가 주류다. 특히 국내에선 칠레산과 호주산 와인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유럽의 고급 와인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FTA의 효력이 발생하는 내낸 7월이면 질 좋고 값싼 유럽산 와인으로 포도주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와인 전문가들이 많다.

리카르도 루이 로페즈
국내 유명 소믈리에이자 직접 와인을 생산하는 한상돈 소믈리에도 "유럽 와인 중에서 스페인 와인이 갖는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개인 생산자가 많은 스페인 와인은 친환경으로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카르도 씨의 와이너리도 비옥한 토양을 지녔다는 점 이외에도 고대 로마시대에 Via Augusta(로마 가도)가 건설되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Manso Sant Mateu Estate가 매우 오랜 기간 와인을 생산해 온 지역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포도 재배지역에서 질 좋은 포도로 와인의 깊은 맛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리카르도씨는 TERIA, Clos Diana, Dianel.lo, NINFAS 등 네 종류의 와인을 소개했다. 2006년에 만든 TERIA와 Clos Diana는 12달 동안 최상의 프랑스 오크통에 숙성시킨 와인이다. 비슷한 제조와 숙성과정을 거쳤지만 맛과 향이 다르다. TERIA는 옅은 자줏빛을 띤 진홍색으로 강렬한 블랙베리 및 체리향을 풍긴다.

오크배럴에서 숙성되면서 배어든 가죽 향과 연기 향이 어우러진 약간 구운 커피의 향이 난다. 입에 전달되는 느낌이 풍부하고 원숙하며 진해 여유롭게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디저트와 화이트와인
Clos Diana는 붉은 색을 띤 와인으로, 서양자두와 산딸기, 신선한 무화과 등의 과일향이 감미롭다. 여성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풍부하고 균형 잡힌 풍미를 낸다.

NINFAS와 Dianel.lo는 각각 2007년과 2008년에 만들어졌다. NINFAS는 금빛이 감도는 레몬 색깔의 와인. 복숭아와 살구, 배의 옅은 향이 일품이다. Dianel.lo도 적당하게 퍼지는 탄닌의 톡 쏘는 느낌과 목 넘김이 부드러운 와인이다. 밥이나 파스타, 생선 및 고기 요리와 어울린다.

"스페인 와인은 에이징 하는 걸 좋아합니다." 리카르도 씨는 스페인 와인의 큰 특징은 숙성과정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와인은 5~10년 오크통에 숙성시키거나 3년 여간 병에 담아 숙성시켜 와인의 깊고 진한 맛을 내고 있다. 깊은 풍미를 즐기는 와인 애호가들이라면 스페인 와인을 찾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칠레산, 프랑스산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는 무엇일까. 리카르도씨는 "기후가 가장 큰 차이"라며 스페인 와인의 지역적 특성을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의사가 권하는 '닥터스 와인'

"진료하는 환자들에게도 항상 와인을 권합니다."

리카르도 씨는 '닥터스 와인'의 선두주자로서 와인의 좋은 점을 열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와인을 즐기던 가정사를 지녔다.

그의 고종 할아버지는 120세, 그의 아버지는 93세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여지없이 "와인을 즐기던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의학적으로 하루에 한두 잔의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긴 하지만 장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리카르도씨는 와인을 두고 "매일 마셔도 좋은 음식"이라며 권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의사가 술을 적극 권하는 것이 어쩐지 낯설다. 가톨릭 신부들도 포도주를 즐긴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리카르도 씨는 포도재배에 있어 특히 자신감을 보였는데, 직접 일일이 손으로 재배하고, 손으로 으깨어 즙을 짜내는 등 고전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유기농의 친환경 재배법은 와인의 맛을 더욱 깊이 있게 해준다.

이렇듯 '닥터스 와인'의 특징은 의사가 와이너리의 주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건강을 생각하고 건강에 좋은 와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집중적인 와인 품질관리(유기산, 미네랄, PH)와 숙취에 관한 의사의 정확한 권고 및 예방적 품질의 와인을 생산해낼 수 있다. 특히 품질 좋은 개별 포도원의 와인이 중심이 된다는 게 장점이다.

리카르도 씨는 자신의 와인 등 스페인 와인이 현재 한정적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조만간 그 맛을 알게 된 한국인들이 계속 즐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정서와 스페인 와인은 많이 닮아 있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 지낼수록 정을 느끼게 해주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오랜 숙성 과정을 통해 깊은 맛을 내는 스페인 와인과 비슷하죠. 가족, 친구들과 언제 어디서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페인 와인을 적극 권합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