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한란

한파가 무섭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매서운 추위를 겪어본 것이 참 오랜만인 듯하다. 이런 추위에 피어나는 꽃도 있을까?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고 한겨울에 피는 꽃은 거의 없다. 이미 남쪽에서 피기 시작한 대표적인 겨울꽃 동백나무도 전북으로만 올라와도 봄꽃이 되지 않던가.

그런데 정말 이즈음 꽃피는 식물이 있는데 바로 한란이다. 그래서 이름도 한란(寒蘭), 즉 추위에 피는 난초이다. 한반도에서는 자생하는 곳이 제주도 한라산 자락 한 곳이라서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봄꽃이 될 염려도 없는, 말 그대로 겨울꽃 그 자체이다.

한란은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가녀리고 향기로운 동양 난초의 품격을 가장 잘 가지는 난초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선형의 잎은 늘씬하게 뻗어 뒤로 젖혀지고 한 겨울 그 사이에서 올라온 꽃대에는 황색이라고도 녹색이라고도 자색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아주 신비롭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길게 올라온 꽃대에 적게는 5개에서 때론 10개가 넘는 꽃이 차례로 달린다.

한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희귀식물이다.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는데 이 한란의 자생지 전체도 보전을 위한 천연기념물이다. 자생지는 그 희소성은 물론이고 가장 북한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별한 가치로 인정받은 덕택도 있다.

사실 한란이 이 땅에서 살아 남는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미 아름다운 난초는 조직배양을 통해 대량생산되고 보급되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꽃가게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연 그대로의 다양한 변이를 가지는 자생지에서의 한란을 탐욕이라는 말이 그대로 어울리게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자생지에서 자라던 한란은 이러한 도채에 의해서 사라져갔다. 법적으로 보호받은 종이니 그 자생지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면 울타리를 넘고, 울타리의 위를 막으면 땅을 파서 들어가는 등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한란을 캐갔다.

그래서 지금 한란 자생지는 몇 겹의 울타리가 쳐진 천연의 요새와 같고, 하나하나 개체를 확인하며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보호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그 요새 속에서 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수많은 한란들이 여기저기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 보존을 위해 노력한 이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원래 한란은 한라산 남쪽 해발 900m에서 거의 남쪽 바닥까지 상록수림 아래 두루두루 자라는 종이었다. 지금은 확실하게 꽃이 피는 모습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한란 요새이다.

한란에는 전설이 있는데,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는 지극한 효자에게 산신령이 나타나 한겨울 뒷산에 피는 꽃을 술에 담궈 병을 낫게 해주었다는 전설이다. 기록으로 나타나는 의미 있는 이야기는 추사 김정희가 1840년 제주에 유배되어 9년 동안 살면서 제주한란을 재배하고 또 난을 즐겨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데 그가 처음 제주한란을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우니 한창 피어있을 이 고고한 한란이 걱정이 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