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호텔이란] 프라이빗 파티, 호텔 아트페어 열고 한식 세계화 주도

광활한 초원 한가운데 선 집은 그곳에 박혀있는 바위처럼 견고해 보인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집에선 안정감과 무게감이 느껴진다.

반면 대도시의 현대식 공법으로 지어진 휘황한 건축물은 어쩐지 그곳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다. 특히, 공항과 호텔이 그렇다. 사람이 온전히 머물러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일까. 여행과 관광조차 '문화'라는 형태의 자본이 된 시대, 그저 스쳐 지나가거나 잠시 머물 뿐인 이곳은 그래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호텔의 모습은 사회적인 성공의 척도로 비춰지기도 한다. 영화 <인 디 에어>에는 호텔의 장기 거주자가 등장한다.

여러 호텔을 전전하며 1년 중 322일을 출장으로 보내는 라이언 빙햄. 그에게 호텔은 집과 다름 없다. 관계 맺기에 서툰 그에게 호텔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고독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관계 맺기에 실패한 별종이나 섬처럼 둥둥 떠 있는 도시 문화로 상징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기에 그는 이미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김인숙 작가는 현대인의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호텔을 주목했다. 그녀에게 호텔은 특별하지 않다. 우리 집 안방, 옆집 거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바로 그곳에서도 벌어진다. <토요일 밤 Saturday Night>(2007)은 그런 시각이 고스란히 담겼다.

뒤셀도르프의 호텔을 마주보고 들이댄 카메라 렌즈 속엔 66개의 방의 창문이 들어온다. 호텔 속의 사람들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술잔을 옆에 두고 체념한 듯 침대에 앉아있는 제복을 입은 남자, 기계적으로 감정 없는 혹은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남녀, 자살이나 살인을 시도하거나 도청을 하는 사람들의 추레한 욕망이 가감 없이 보여진다.

물론 이들은 설정된 상황이다. 작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주제로 작업하기 위해 호텔 방에서 생긴 일에 관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분한 주제를 기반으로 66개의 방에 관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방으로 보이는 장면들은 진짜 호텔이 아닌, 스튜디오를 빌려 실제 호텔 방을 재연해 제작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삶의 어둠과 쓸쓸함을 강조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이들에게는 화려하고 심지어는 미지의 공간이기조차 한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임을 말하고 있다.

일례로 그녀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호텔 맞은 편 길에서 불 켜진 방에서 홀로 고독하게 있는 사람을 보았다. 물질 문명의 발전으로 현대인들은 잉여의 시간을 부여 받았지만 늘어난 시간만큼 고독감은 커지는 것만 같다." 우리는 그저 욕망에 충실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고독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어찌 보면 일본의 와시오 카즈히코 작가도 같은 맥락에서 호텔을 비춘다. 그가 조명한 '극동 호텔'은 우리가 연상하는 호텔과는 거리가 있다. 세계에서 몰려온 백패커를 위한, 동경에서 가장 싼 숙소. 그곳에서 촬영한 외국인의 모습에선 여행자의 설렘보다는 생활인의 피로감이 엿보인다.

여행자는 으레 답답한 현실에서 자유를 외치며 뛰쳐나온 이들이지만 그들에겐 이방인이 느끼는 긴장감,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든 듯한 아련함, 수화기를 든 얼굴에선 초조함마저 읽힌다. 각기 다른 곳에서 한 곳에 모인, 출신도 배경도 다만 짐작할 뿐인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섬처럼 떠있다.

많은 이들이 호텔을 찾아온 외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지만, 분주하게 돌아가는 호텔의 내부를 조명한 작품도 있다. 2월 9일부터 갤러리 아트사간에서 열리는 'Documentary in the Hotel'은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호텔리어들의 작품이 걸린다. 호텔의 속살을 비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사진동호회인 싸이(PSY)는 이전까지 세 번의 전시를 연 바 있다.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아주머니, 때론 작품을 만들 듯 때론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듯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 손님들이 오기 전 분주하게 준비하는 웨이트리스들, 식사를 마치고 편안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외국인들도 있다. 그들에게 호텔은 그저 스쳐 지나거나 잠시 머물 수만은 없는 지극히 치열한 생활의 터전일 거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