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가죽 공방 채드킨, 에르메스 새들 스티치 공법 사용

지난해 말은 에르메스 브랜드 역사에 남을 힘든 시기였다. 소문난 명품 사냥꾼 LVMH(루이비통 모에헤네시) 그룹이 에르메스의 지분을 사들이며 적대적 인수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고, 한 쪽에서는 웬 남자가 버킨 백 웨이팅 리스트의 허상을 밝힌다며 <에르메스 길들이기>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구매 이력을 쌓은 후 프라다 정장을 쫙 빼 입고 매장을 찾아가면 3년 기다려야 한다는 버킨 백을 직원이 바로 창고에서 꺼내준다고 밝힌 마이클 토넬로는 실제로 이 방법으로 버킨 백을 잔뜩 사서 이베이에 팔아 치워 에르메스를 당황케 했다.

이 와중에 에르메스의 편을 들고 나선 이가 있으니 가죽 공방 채드킨의 사장 채드킨 씨다. '한땀 한땀' 손으로 떠서 만드는 에르메스의 새들 스티치 공법으로 가방을 만드는 그는 "최고급 가죽, 수작업, 그리고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에르메스는 존재하는 브랜드 중 가장 이유 있는 가격을 가진 브랜드"라고 말한다.

한 달 동안 겨우 가방 하나?

채드킨이 3년 전 자리를 잡은 명동은 패스트 패션의 천국이다. 자라와 H&M이 자리를 잡기 전에는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초대형 글로벌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매장을 열기 위해 1 순위로 점 찍어두는 장소이기도 했다.

서울의 패션 거리 중 가장 상업적이고 속도가 빠른 이곳에 채드킨 씨는 손으로 만드는 가죽 공방을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디자인을 의뢰받아 가방을 만들기도 하고 가죽 소품을 만드는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주요 품목은 가방이지만 지갑, 마우스 패드, 슬리퍼, 개 목걸이 등 가죽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지 취급한다.

가방 하나를 만들 때 들어가는 시간은 가방의 크기와 구조, 공법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보통 만사를 제쳐두고 뛰어들 경우 일주일, 퇴근 후 짬짬이 남는 시간을 내서 한다면 최대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

"모든 작업이 전통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수작업이라고 다 같은 수작업이 아니에요. 가죽을 꿰매기 전 가죽 위에 땀 간격을 표시하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 작업이 선행되는데, 이것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도구가 이미 나와 있지만 저는 일부러 따로 합니다. 먼저 땀 간격을 표시하고 그 다음에 일일이 송곳으로 뚫어가면서 바느질을 해요."

가장 전통적인 수작업과, 도구의 도움을 약간 받은 수작업은 어떤 결과의 차이를 불러올까? 답은 '없다'이다. 외관, 견고함, 기능,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단지 시간만 더 들 뿐이다. 그럼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가끔 수강생들이 '이렇게 하면 더 빨리 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쓰면 더 간단하게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냥 재봉틀로 하는 게 가장 빠르다고 대답해요. 빨리, 편하게 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하나하나 손을 타는 것 자체가 목표입니다."

채드킨이 고수하는 새들 스티치는 에르메스의 가방 꿰매기 방식과 동일하다. 말 위에 얹는 안장을 만들 때 쓰이는 새들 스티치는 원래 많은 가죽 브랜드들이 고수하는 방법이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에르메스 고유의 공법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해마다 마구 만들기 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금메달을 딴 챔피언들이 에르메스의 장인으로 일하고 있다. 겹 바느질로 불리는 새들 스티칭은 두 개의 바늘을 이용해 양쪽으로 교차시키면서 꿰매기 때문에 기계로는 불가능하며 모든 봉제법 중 가장 튼튼하다.

모든 편리를 거부합니다

가방 제작은 디자인 구상에서 시작된다. 디자인에 맞게 단면도를 종이 위에 그린 후 형지 작업(종이로 미리 형태를 만들어 보는 작업)을 거쳐 단면도가 완성되면 가죽 재단에 들어간다. 원하는 가죽과 실을 고를 수 있는 것은 커스텀 메이드의 가장 설레는 장점이다.

자른 가죽은 본드로 붙이고 기리메(엣지 코트: 가죽의 절단면을 정리하는 용액)를 바르고 봉제해 완성된다. 과정 중 기계 소리는 일절 들을 수 없다. 칼로 자르는 '사악사악' 소리, '꽝꽝'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 린넨 실이 구멍을 통과할 때의 가죽 스치는 소리, 평생 줄어들지 않을 것 같은 실이 조금씩 줄어들 때 새어 나오는 뿌듯함의 소리 뿐이다.

고리짝 시절 방식으로 가방을 만들다 보면 모든 것이 유혹이 된다. 서투르고 느려터진 손놀림을 보완해줄 수 있는 번쩍번쩍한 최신 도구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마다 온갖 꼼수가 떠오르지만, 과정을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다시 묵묵히 바늘 구멍에 실을 꿰게 된다.

가방을 만드는 일은 가죽의 맛을 알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흔히 미국이나 유럽의 호텔 직원들은 손님이 들고 있는 가죽 제품의 질로 그들의 위상을 가늠한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가죽과 그 가죽을 다루는 태도는 개인의 인생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질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 일이 삶에 대한 적극적이고 밝은 태도를 암시한다면 가죽도 그와 비슷하다. 좋은 가죽은 시간이 지날수록 투자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해주기 때문이다.

"천은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해지죠. 하지만 가죽은 그 시간을 입습니다. 그건 가죽과 가구의 공통점이에요. 가죽은 새 것보다 헌 것이 훨씬 멋있습니다. 잘 닳은 가죽은 돈 주고도 못 사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방도 할아버지가 쓰시던 70년 묵은 가방입니다."

이렇게 한땀 한땀 손으로 떠서 만든 가방의 가격은 얼마일까? 가죽 제품은 다른 소재에 비해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정직한 아이템이다. 악어 가죽의 경우 버킨 백 정도 크기의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는 400만~600만 원이 들어간다.

물론 소가죽이나 양가죽으로 내려가면 가격은 그보다 훨씬 떨어지며 타조 가죽은 그 중간 정도다. 일반적으로 좋은 소가죽을 사용해 중간 크기의 가방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40만~50만 원대에 자기만의 가방을 가질 수 있다.

"요즘 타임리스, 영원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시대가 빨리 변할수록 그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 것 같아요.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것들이 변질되는 걸 막는 움직임도 필요해요. 언어는 계속 바뀌고 공법은 발전하며 기계들은 매일 업그레이드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인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고 성의를 보여줄 수 있는 길은 전통 방식밖에 없지 않을까요?"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