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전남 순천 금둔사

금둔사를 품고 있는 금전산.
유명한 조계산(전남 순천) 남쪽에 해발 679m의 금전산(金錢山)이 솟아 있다. 산 이름에 왜 쇠 금(金)자와 돈 전(錢)자를 붙였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불가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석가모니의 500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금전비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금전비구는 가난한 채약사(산에서 약초를 채취하고 그것을 팔아 연명하는 사람)였는데 석가모니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약초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꽃을 사서 공양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금전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금둔사는 오랫동안 백제 위덕왕 30년(583년) 창건한 백제 고찰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순천대학교 박물관이 지하 1.2~1.5m 지점에서 창건 당시 건물터 지층을 발견해 발굴한 결과 4동의 건물터를 확인했으며 여러 유물도 함께 발굴했다. 이러한 발굴 유물을 토대로 금둔사는 9세기 무렵에 창건된 사찰임이 밝혀졌다.

1984년부터 지허선사가 대웅전과 일주문, 선원, 약사전, 요사채, 홍교 등을 복원 중창해 오늘에 이르는 금둔사는 규모가 아담하다. 하지만 1988년 4월 1일 보물 945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역시 같은 날 보물 946호로 지정된 석불비상 등의 문화재를 품고 있어 문화유산 답사지로 사랑받으며 홍교(무지개다리)도 눈길을 끈다.

삼층석탑과 석불비상 등 보물급 문화재 간직

나란히 서 있는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석불비상.
금둔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는 9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전체 높이는 약 4m에 이르며 이중 기단 위에 올려졌다.

특히 1층 탑신 좌우 면에 불상을 향해 다과(茶菓)를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 돋을새김(양각)으로 새겨져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석탑 각부의 비례가 안정적이며 조각 수법도 세련된 멋을 풍긴다. 도굴되어 흩어져 있던 것을 1979년 7월 10일 복원했으며, 2004년에 다시 해체해 복원했다.

삼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금둔사지 석불비상은 비석 형태로 조각되어 개성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석불비상이라고 불린다. 판석 뒷면 하단에는 코끼리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 탄생시 태몽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이 역시 매우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

직사각형 판석에 돋을새김한 석불비상은 양감이 풍부하고 세부 표현이 정교하지만 다소 딱딱한 인상과 투박한 옷자락 등의 표현으로 9세기 무렵의 사실주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높이 약 3.15m로 삼층석탑과 함께 1979년 7월 10일 복원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 사이에는 돌다리인 홍교가 드리워 있다. 깊이 10m, 너비 20m에 이르는 계곡 위에 놓인 이 다리는 금둔사를 복원할 때 함께 복원했다. 자연석으로 균형을 잘 잡아 건축한 아치형 무지개다리로 아름다운 운치가 돋보인다.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연꽃봉오리처럼 생긴 높이 5미터쯤 되는 바위에 돋을새김한 석조비로자나불좌상도 살펴볼 만하다.

높이 5미터쯤 되는 바위에 돋을새김한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남도 매화의 출발을 알리는 금둔사 납월매

삼층석탑에 새겨진 차공양상에서 엿볼 수 있듯이 금둔사는 우리나라 차 재배의 효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창건 당시인 9세기 무렵 철감국사와 징효대사가 처음으로 차나무를 심은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금둔사 주변에는 2000여 평에 이르는 야생차밭과 1996년 차씨를 심어 가꾼 9000여 평의 지현다원이 있다. 야생차밭에는 700년이 넘은 고목들이 자라고 지현다원에는 15년 된 어린 차나무들이 자란다. 금둔사 차밭은 예나 지금이나 비료와 거름을 일절 사용하지 않으며 다만 봄과 가을에 두 차례, 차나무 근방에 자란 잡초를 베어 깔아 자생을 돕는 것이 특징이다.

금둔사는 이른 봄에 가장 아름답다. 매화꽃이 피는 까닭이다. 그것도 일본에서 건너온 흔하디흔한 왜매(矮梅)가 아니라 토종 매화여서 더욱 소중하며 향기도 짙고 그윽하다.

금둔사 매화 중에서 가장 먼저 피는 것은 홍매화의 일종인 납월매다. 엄동설한 납월에 꽃망울을 틔운다 해서 그렇게 불린다. 불가에서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12월 8일을 기려 음력 섣달 12월을 납월이라고 일컫는다.

1984년에 복원한 금둔사 대웅전.
금둔사 납월매는 음력 섣달부터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양력 2월 하순 무렵부터 피어 3월 중순 무렵에 활짝 핀다.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에서는 가장 먼저 매화가 피어나 봄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금둔사는 남도를 매화 물결로 출렁이게 하는 출발지인 셈이다. 금둔사 홍매화는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3월 하순까지 붉은 자태를 뽐낸다. 그러다가 청매와 백매가 바통을 넘겨받아 봄 향기를 이어간다.

찾아가는 길

승주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조계산 선암사 안내판을 따라간다. 선암사 입구 삼거리에서 왼쪽 낙안 방면 길로 12.6km 남짓 달리면 금둔사 입구에 이른다. 노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50m쯤 올라가면 금둔사가 반긴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전라선 열차나 고속버스, 직행버스 등을 이용해 순천으로 온다. 순천에서 낙안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탄 다음 택시로 갈아타거나 2km 남짓 걷는다.

맛있는 집

승주 나들목에서 선암사와 금둔사로 들어오는 길목에 쌍암기사식당(061-754-5027)과 진일기사식당(061-754-5320)이 있다. 두 집 모두 백반정식을 전문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맛집이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인 김치찌개와 생선구이를 비롯해 나물류, 버섯류, 젓갈, 김치류 등 맛깔스러운 기본 반찬이 16~18가지나 나오는 푸짐한 상차림이 입맛을 돋운다. 그러고도 값은 6000원 대여서 가격 대비 대만족이다.



글·사진=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