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통의 일본 모치 가게, 합정역 근처에 '이치모치' 오픈

연말이 되면 일본의 한적한 시골에서는 정월에 먹을 떡을 찧는 '모치 츠기' 행사를 종종 볼 수 있다. 힘 좋은 남자들이 떡메로 떡을 내려 치고 여자들은 치는 사이사이 재빨리 떡을 뒤집거나 만들어진 떡에 고물을 묻히느라 분주하다.

정월 다음날 사건사고 란에는 떡이 목에 메여 사망한 노인들의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너무 쫀득한 나머지 목구멍을 막을 정도인 일본식 모치는 만화나 영화에서 마치 피자 치즈처럼 죽죽 늘어지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한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모치는 장인의 음식이 아닙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기 때문에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정통 일본 모치를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지난해 말 합정역 근처에 문을 연 '이치모치'에서다. 이치모치는 와카야마 현에 있는 고야산 부근, 하나사카 지역의 모치 전문점 '카미키시야'의 첫 해외 분점이다.

장인의 음식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3대에 걸쳐 떡을 만드는 모치 가게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카미키시야는 약 400년 동안 7대에 걸쳐 모치를 만들어온 가게로, 일본 전국에 모치를 납품하는 와카야마 대표 모치 집이다.

일본식 팥죽 '젠자미'
8대손인 니시가이토 유이치 씨가 서울에 가게를 낸 것은 지난해 12월로, 본점에서 일하던 사람 중 한국에 관심이 많던 직원의 도움으로 첫 번째 해외 지점을 열게 됐다.

"일본에는 수 천 가지의 모치가 있지만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모치 속에 들어가는 앙금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인지, 사온 것인지가 모치 가게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죠."

일본식 모치와 한국식 찹쌀떡에 들어가는 재료의 차이는, 유이치 사장의 말에 따르면 거의 '없다'. 놀랍게도 그는 국산 찹쌀과 국산 팥, 국산 설탕으로 일본식 모치를 만들고 있다.

그의 하루는 9시에 출근하면서 시작된다. 전날 불려 놓은 찹쌀을 가루 내지 않고 그대로 쪄서 설탕을 약간 넣고 반죽한다. 팥은 푹 삶아 알갱이가 적당히 살아 있을 정도로 으깬 다음 물기를 빼고 설탕을 넣어 앙금을 만든다. 10시에 직원들이 출근하면 본격적인 떡 싸기가 시작된다. 아침에 그날 팔 모치를 다 만들기 때문에 도중에 다 떨어져 문을 일찍 닫는 경우도 있다.

일본 모치? 한국 찹쌀떡?

'오하기'
카미키시야의 레시피를 그대로 가져온 이치모치의 주력 메뉴는 야끼 모치다. 생 모치를 구운 야끼 모치는 앙금을 넣어 완성한 떡을 팬에 노릇하게 지져서 만든다. 흰 떡과 쑥떡, 2개 세트로 구성된 야끼 모치는 기름기 없는 바삭한 겉면에 안은 쫄깃한 떡, 그리고 팥의 엷은 단 맛이 어우러져 누구의 입맛에라도 무리 없이 맞는다.

"흔히 일본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단 맛은 서구의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일본은 유럽의 케이크나 초콜릿을 많이 받아 들였지만 당도는 일본식으로 개량해서 먹고 있죠."

그에 따르면 단 맛은 두 가지로 나뉜다. 양갱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한 단 맛이 있고, 케이크나 초콜릿의 노골적이고 강렬한 단 맛이 있다. 일본의 모치나 쇼트 케이크에 들어가는 일본 설탕은 단 맛 뒤의 여운이 짧아 입 안에 들처근하게 남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유이치 사장의 고민도 이것으로, 국내산 모든 재료가 모치 만들기에 적합하나 설탕만은 단 맛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다. 그는 국내 설탕 중 일본 것과 지속성이 비슷한 설탕을 모색해보고 마땅치 않을 경우 일본 설탕을 수입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야끼 모치 전문인 이치모치에서는 한 입 물면 주욱 늘어나는 생 모치는 아쉽게도 맛볼 수 없다. 대신 일본식 팥죽인 젠자이에는 말랑말랑하다 못해 목이 멜 정도의 모치가 들어 있다. 곁들이 음식인 소금 간한 다시마 '시오콘부'와 함께 먹으면 젠자이의 진한 단 맛을 질리지 않고 더 오래 음미할 수 있다.

코무기 모찌
모치를 기름에 튀긴 모찌텐은 본점에는 없는 오리지널 메뉴로, 일본에서 모치를 튀겨 먹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인들 입맛을 고려해 만든 특별 메뉴다. 그 밖에도 보리와 찹쌀을 섞어 만든 '코무기 모치'와 쌀을 빻아 진득하게 뭉쳐 팥고물을 묻힌 도 인기다.

"모치는 수수한 맛의 디저트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한국 지점에서 만드는 모치는 본점 것보다 약간 달기 때문에 씁쓰름한 맛차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딱 맞습니다."

진하고 떫은 맛차를 빗자루처럼 생긴 '차센'으로 힘차게 저으면 자잘한 거품이 형성되면서 카푸치노처럼 부드러워진다. 따끈하게 구운 야끼 모치 한 입에 부드러운 맛차 한 모금, 완벽한 디저트 타임의 시작이다.


거품 낸 맛차와 차센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