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일 풍속도 변화, 통신료 급증, 정보 격차의 심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S 2'
스마트폰이 바꾼 일상 속 풍경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연인들의 사랑의 풍속도다. 유형 1. 연인 A는 스마트폰이 있고, 연인 B는 없는 경우. A는 대화하면서도 스마트폰만을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고, B는 대화하면서도 자신의 얼굴을 바라봐주지 않는 연인 A를 섭섭한 표정, 혹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형 2. 둘 다 스마트폰이 있는 경우. 두 사람은 함께 있으면서도 실은 각자의 스마트폰과 열애 중이다. 함께 음식을 시키고 함께 차를 마시기는 하지만, A와 B의 시선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향해 있다.

유형 3. 유형 1의 변형으로서, 연인 A는 연인 B에게 '넌 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느냐'고 투덜댄다. 연인 B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써야 하는 것이냐며, 자신은 전혀 스마트폰이 필요하지 않다고 항변한다. 세 경우 모두 스마트폰으로 인해 연애가 더욱 활성화(?)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유형 4도 있다. 스마트폰을 자신만의 밀실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함께 게임하고 함께 어플리케이션을 즐기는 커플들. 그러나 이런 평화롭고 실용적인(?) 사례를 찾아보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바뀐 일상 중 내 눈을 사로잡는 두 번째 풍경. 그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일'과 '휴식'의 경계를 '퇴근 시간 이전과 이후'로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서 병원들도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 여성이 성형수술 비용을 미리 예측해볼 수 있는 성형견적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보고 있다.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끊임없이 이메일 도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각종 업무자료가 스마트폰을 통해 바로바로 확인되기 때문에, 주변의 지인들은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더 바쁘고 정신이 없어졌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마트폰이 노동시간을 확장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스마트폰을 지급하고 그것을 통해 업무 지시 방법의 다변화를 꾀하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처음에는 공짜로 스마트폰 생겼다고 좋아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이게 나의 족쇄다'라고 푸념하며 한숨을 쉰다.

스마트폰이 바꾼 세상을 떠올리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세 번째 풍경. 그것은 바로 우리네 통장 잔고의 눈에 띄는 변화이다. 단지 스마트폰이라는 이유만으로 기기값은 물론 요금까지 두 배 이상 비싸지만,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의 불가해한 매력에 푹 빠져 가격 저항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해 처음으로 한 가구당 평균 통신 이용료가 10만 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을 들으며, 스마트폰이 바꾼 세상의 가장 큰 경제적인 효과가 바로 통신료의 급증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물론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체험하는 것도 좋지만, 과연 우리가 기존 통신 이용료의 두 배 이상을 기꺼이 지불하는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도 좋을 정도로 스마트폰은 혁명적이고 효율적인 기계일까.

피부에 흐르는 전류를 터치패드가 인식해 반응하는 정전식 터치스크린 방식의 아이폰 이용자들이 미니소시지를 터치펜 대용으로 구입하는 일이 늘었다는 것.
최근 스마트폰 사용환경에 따른 몇몇 연구들을 살펴보면, 스마트폰 혁명이 오히려 '정보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우려 섞인 결과들이 보인다. 스마트폰 이용자와 비이용자 사이의 성별, 연령, 학력, 수입 분포, 정치적 성향, 정보 이용 패턴 등의 상호관계를 분석해 보면, 남성일수록, 연령이 낮을수록, 학력과 수입이 높을수록,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통적인 뉴스 미디어에 대한 젊은 층의 의존도가 대폭 하락함으로써, 스마트폰 이용자 사이의 새로운 정보 교환의 통로가 더욱 특권화될 위험이 존재한다. 점점 더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젊은 세대와 노년층 사이의 정보 격차마저 심화된다면, 단지 세대에 따른 '취향'의 차이만으로 진단할 수 없는 치명적이고 총체적인 사회문화적 '갭'이 더욱 커지지 않을까.

스마트폰 혁명의 가장 결정적인 부작용 중 하나는 '소셜 미디어 네트웍스에 속해야만 한다'는 현대인의 강박증이 정보화사회 자체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반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 아닐까.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도 많지만, 정작 그들이 감내해야 할 각종 보이지 않는 차별 또한 만만치 않다. 일단 일상적 대화에 참여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적지 않고('무슨무슨 어플리케이션이 새로 나왔다'든지, 'QR코드를 입력하세요'라는 광고 앞에서 흠칫 놀라는 정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보 격차가 점점 심화될 것 같다), 단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원시인' 취급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이용자는 비이용자보다 한층 우월한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렇듯 개인의 자발적 선택을 일종의 문화적 위계 관념으로 판단하는 심각한 문화적 구별짓기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유독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레비스트로스는 일찍이 현대사회가 과잉 커뮤니케이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떤 문화가 강대국의 것이라는 이유로, 혹은 어떤 문화가 최첨단 유행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문화의 중심이라는 이유로, 누구든 그 문화를 눈치 보고 따라 하게 된다면, 결국 세상은 비슷비슷한 문화, 천편일률적 스타일로 범람하게 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런 말들이 유행하게 되면서 어느덧 전 세계 대도시의 풍경은 비슷비슷해져가고 있다. 과잉 커뮤니케이션의 위험은 너무 지나치게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진정 독창적인 자기만의 문화를 생산해낼 여유와 뚝심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스마트폰이 지닌 과잉 커뮤니케이션의 위험 또한 바로 이런 증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빨리, 전방위적으로 공유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 말이다. 이런 속도와 이런 영향력을 가진 매체가 득세할수록 그 사회에는 틀린 정보, 왜곡된 정보가 급속히 확산될 위험도 높아진다.

악의적인 정보, 한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정보가 유통될 경우 스마트폰의 영향력은 심각하게 악용될 소지가 많다. 개인 정보 유출의 위험뿐 아니라, 그 어떤 정보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함께 공유하는 데서 나오는 위험은 일단 피하기 어렵게 된다.

더 나은 소통을 위해 개발된 매체가 더 깊고 치명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분명 경이롭고 신기한 미디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스마트폰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일까.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