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the Kitchen] (19) 소금소설 속 민중의 궁핍한 삶, 어머니ㆍ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로

"뭐 먹고 싶어요? 우리 내기 했는데. 술이랑 밥 중에 누나 뭘 먹고 싶어 하는지."

"응. 떡볶이가 먹고 싶어."

대학시절 선배가 말했다. 등록금 투쟁이 '개나리투쟁'으로 끝났던 시절, 유독 사회에 관심 많던 선배는 조금이라도 학내 관심을 더 끌기 위해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물과 소금으로 30일을 버텼다.

간혹 소금을 가장한 설탕을 먹을 거라는,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연설할 수는 없을 거라는 풍문이 돌긴 했지만 지율스님처럼 바짝 말라가던 선배를 보며 필자는 아마도 소금으로 버텼을 거라 생각했다.

"단식한다면서 소금은 왜 먹는데?"

"원래 단식 때 물과 소금이 기본이야. 그것도 안 먹으면 일주일 버티기도 힘들어."

"왜 비타민이랑 미네랄도 챙겨먹지? 칼로리 없기는 마찬가진데."

가끔 뉴스에서 재난이나 매몰 현장을 보게 되면 대학시절 그 선배가 떠오른다. 72시간이 지나 생존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120시간이 지나 생존 확률이 그 절반으로 떨어질 때면 부엌 한 켠에 정크푸드처럼 감춰둔 소금통에 눈길이 간다. 소금만 있어도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선배는 한 달을 버티던데. 근데 저 '2분의 1 나트륨' 소금으로 단식하려면 소금을 두 배로 먹어야 되나?

소금, 바다의 가루

소금. 짠맛 나는 백색 결정체로 주성분은 염화나트륨이다. 바닷물에 약 2.8% 들어 있고, 암염으로도 산출된다. 인체 혈액이나 세포 안에 약 0.71% 들어 있고,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는 하루 5g의 섭취를 권장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언제나 발생하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13g을 먹고 있고 소금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요컨대 너무 남용해서 자제해야 하는 식품, 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모르는 식품이다. 지구의 70%는 바다가 덮고 있고, 바닷물을 말려 만든 소금은 공기처럼 편재해 있다.

소금은 자본주의 시대, 상품이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로 평가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염전기술이 발달해 화수분처럼 소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후, 우리가 소금을 말할 때는 비만이나 고혈압의 원인을 찾아 처단해야 할 때 정도다.

그리고 어쩌다 어떤 숭고한 의미의 음식을 찾을 때, 하지만 먹을거리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 너무 달라 딱히 보편성을 가진 음식을 찾을 수 없을 때, 소금은 그 상징처럼 쓰인다. 이를테면 강경애의 중편 '소금'처럼. 이 소설은 소금을 매개로 어느 여인의 기구한 삶을 통해 일제 강점기 조선 민중의 궁핍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만주로 이주한 봉염의 어머니에게 소금은 단순이 입맛을 돋우는 조미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대상이다. 공산당에게 남편과 아들을 잃고 다시 가난 때문에 두 딸마저 잃은 그녀는 "장 같은 것도 단번에 담그지를 못하고 소금 생기는 대로 담그다가도 어떤 때는 메주만 썩여서 장이라고 먹곤"한다. 그녀에게는 중국인 지주 팡둥보다 소금을 얻기 위한 투쟁이 급선무다.

'그들은 낮에는 산 속에서 혹은 풀숲에서 숨어 지내고 밤에만 걸어서 사흘 만에야 겨우 용정까지 왔다. 집까지 온 봉염의 어머니는 소금자루를 얻다가 감추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낡은 상자 안에 넣어서 방 한구석에 놓고야 되는 대로 주저앉았다. 그는 머리와 발가락을 어루만지며 목이 메어서 울었다. (…) 그는 한참이나 울고 난 뒤에 사흘 동안이나 지난 생각을 하며 무의식간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이 눈물도 여유가 있어야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귀한, 너무 흔한

어린 시절 아버지가 화를 낼 때는 언제나 밥상에서였다. 저녁 밥상에 라면이나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이 올라오면 불같이 화를 내고 식당으로 가 밥을 사먹고 돌아왔다. 당연히 아버지의 저녁밥은 언제나 김 오른 찌개백반이었다. 가장으로서의 노동과 중압감을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보상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한밤중에 퇴근해 늦은 밥상을 받은 아버지는 숟가락에 3분의 1쯤 뜬 쌀밥 위에 반찬을 올려 자식들에게 돌아가면서 먹였다. 잠에서 깬 우리는 아기 새처럼 받아먹었다.

"아빠, 너무 짜."

"반찬 좀 덜까?"

간을 세게 먹었던 아버지는 덩달아 "너무 짜"를 외치며 고봉밥을 다 비웠다.

음식은 식자재와 조미료의 화학작용의 결과라는 걸, 우리는 언제나 화학작용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만 깨닫는다. 음식이 짜거나 싱거울 때만 식탁 위 소금통을 열어본다. 언제나 필요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는 것이 소금이다.

김숨의 소설 <물>은 물, 불, 소금 등 물질의 기본 요소를 의인화해 쓴 장편이다. 여기서 화자가 소금이다. 소금은 너무 흔해 귀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하며 자랐고, 그래서 자의식과 결핍을 가진 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라는 동안 나는 늘 내 자매인 금과 비교되어 왔다. 금과 소금. 우리는 한날한시에 태어났다. 우리는 둘 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한 방울의 물이었지만 하나는 소금으로, 또 하나는 금으로 자라났다. 소금인 나는 늘 금과 비교조차 안 되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았다. 이 세상에 소금을 얼마든지 넘쳐났다. 모래만큼이나 넘쳐나는 게 소금이었다.'

소금이 맛을 낼 때는 제 몸의 원형인 바닷물로 되돌아 갈 때다. 언제나 편재하지만, 언제나 필요하고, 녹아 없어지며 가치를 발한다. 구효서의 단편 '소금가마니'에서 이 가마니가 소설 속 어머니와 겹쳐 읽히는 이유다. 작가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 헛간에 둔 소금가마니를 통해 어머니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소설 속 나는 아버지에게 구타와 폭언으로 억눌려 살던 어머니, 무학(無學)의 어머니가 키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 일본어판을 읽고 있었다는 걸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나는 도대체 어머니의 삶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의문에서 시작하는 '소금가마니'는 비천했지만 자애로웠던 어머니의 삶을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고 있다.

'집에는 세 개의 소금가마니가 있었다. 언제나 세 가마니였다. 부엌 뒤쪽 어두운 헛간에, 그것은 반걸음의 간격을 두고, 신방돌 모양의 단 위에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뱃구레가 꺼지는 그것은, 높이로 보나 좌대 위에 놓여있는 모습으로 보나 영락없는 삼존불이었다. (…) 장마철이 아니어도 소금가마니는 잘 녹아내렸다.

눈물처럼 간수를 흘렸다. 쌀가마니와 달리 소금가마니는 묵은 짚으로 성글게 짠 것이었다. 간수는 어둠과 습기를 한껏 빨아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거였다. 간수는 누구나 좋아하는 맛있는 두부를 만들어냈다. 특히 어머니가 만든 두부는 근동에 유명했다. 가족을 먹여 살린 것은 어머니의 두부였다.'

작가는 소금가마니로 어머니를 그렸고, 필자는 소금가마니를 읽으며 자식에게 밥을 먹인 후 국에 소금을 타 먹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텔레비전에 나온 기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천일염이 귀해졌다고 했다. 방사능 유독물질이 바다로 배출되고 나면 더 이상 안전한 소금을 먹을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했다. 언제나 값어치를 알 때는 그 존재가 사라졌을 때다. 언제나 옆에 있어 귀한 줄 몰랐던 존재. 비단 소금만은 아닐 것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