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패션 포토그래퍼 로베르시와 텔러 사진전

파올로 로베르시, Nataila from back, Paris 2003
두 명의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가 동시에 국내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현존하는 패션계 3대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파올로 로베르시와 예술과 패션의 영역을 마음껏 넘나드는 유르겐 텔러가 주인공이다.

지금 패션계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두 사진작가의 작품은 그 성향과 결과물에 있어 대조적이라 더욱 흥미롭다. 몽롱하고 황량한 로베르시와 에너지와 호기심으로 충만한 텔러의 사진 세계.

꿈에서 마주한 현실 - 파올로 로베르시 'Photograph'

텐 꼬르소꼬모 10층의 전시장은 덥다. 봄 햇살이 전면 유리를 통과하며 뜨끈한 열 에너지로 바뀌면서 전시장 전체를 데운다. 몽롱하게 덥혀진 조용한 실내 어딘가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드 사진이 전시된 섹션에서 한 장년의 신사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찰칵'하는 외설스런 소리가 물러간 자리에는 전혀 외설스럽지 않은 누드 사진들이 있어 당황스럽다. 취향이 특이한 신사이거나 너무 오래 굶주린 남자이거나.

파올로 로베르시, Audrey, Paris 1996
이번 전시는 파올로 로베르시가 이제까지 출간한 사진집 '리브레또', '누디', '스튜디오' 3권에 실린 사진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그의 30년 사진 세계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리브레또'는 꼼데갸르송과의 작업 결과물이며 '누디'는 1982년 이래 그와 일했던 모델들의 누드 사진들, '스튜디오'는 항상 실내 작업실에서 사진 찍는 것을 선호하는 작가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1971년 엘르의 아트 디렉터 피터 크냅을 만나 패션계로 들어온 이래, 그는 보그, 마리끌레르, 아이디 등의 잡지, 그리고 조르지오 아르마니, 지방시,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등 수많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했다.

"인물의 외면이 아닌 내면과 심연을 담으려 한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모델들로부터 전해 받은 감정 중에는 별로 즐겁거나 가벼운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내면에서부터 천천히 망가진 것 같은 메마른 여자들은 작가가 부여한 빛 속에서 회화처럼 표현돼 있다. 특히 펜으로 갈기듯이 그린 크로키처럼 보이는 누드 사진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가끔 일부러 초점을 망가뜨리기도 하는 로베르시는 폴라로이드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8x10인치의 대형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데 흐릿하고 흔들린 폴라로이드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필름이 틀에 제대로 밀착되기 전에 막을 제거해 바랜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 결과 나오는 것은 꿈에서 본 것 같은 비현실성, 그러나 어떤 현실보다 명징한 감정들이다. 미성년자는 관람이 불가. 전시장 내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텐꼬르소꼬모 10층 특별 전시장에서 3월 23일부터 5월8일까지.

파올로 로베르시, Theater, Paris 1998
삶의 맨 살을 만지다 - 유르겐 텔러 'Touch me'

사람은 고약하게도 자기에게 없는 것만 찾아 헤맨다. 우리가 '스타샷'에서 사진을 찍어 자신의 비루한 일상이 패셔너블하게 보여지기를 희망한다면 패션은 반대로 일상을 동경한다. 자주 먹고, 가끔 웃고, 종종 놀라는, 결국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 말이다. 패션은 그래서 유르겐 텔러를 선택했다.

섬약하고 가볍고 매사 극적으로 사는 패션계 사람들은 무심하고 소박하고 진중한 이 남자에게 완전에 반했다. 그는 루이비통, 마크 제이콥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셀린느, 미소니, 입생 로랑 등 의 광고 사진을 촬영했으며 케이트 모스, 파멜라 앤더슨, 라켈 짐머만, 릴리 콜 등과 함께 작업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삶이다. 사실 나는 가방에는 큰 흥미를 못 느낀다. 내 관심사는 가방을 든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다. 패션업계가 내게 흥미를 보였을 때 나는 평소 만날 수 없었던 패션 쪽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뻤다."

텔러의 사진 속 패션계 사람들에게서는, 그러므로 그들이 업계에서 다져온 경력과 파워, 이미지가 모두 삭제돼 있다. 영국 패션계의 대모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칠십 해를 넘게 살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컬러와 실루엣, 소재 속에서 지냈지만 텔러의 카메라 앞에서는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

파올로 로베르시, paris 2010
허옇게 늘어진 배와 살가죽이 덜렁거리는 팔뚝, 얼마 남지 않은 음모. 패션의 여왕은 유쾌한 옆 집 할머니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케이트 모스는 소달구지에 드러누운 시골 여자로, 빅토리아 베컴은 쇼핑백 속에 쳐 박혀 다리만 달랑거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대림미술관과 프랑스 디종의 '르 콩소르시움,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지난 10년간 작가가 작업한 광고 이미지뿐만 아니라 쿠바의 수도에서 진행한 다큐멘터리 작업 'Ten days in Havana', 모델들이 작가에게 던지는 102가지 질문, 그리고 텔러의 다양한 출판물들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대림미술관에서 4월 15일부터 7월 31일까지.


유리겐 텔러, Kete Moss Gloucestershine, 2010
유리겐 텔러,Victoris Beckham, Marc Jacobs Campaign SS08
유리겐 텔러,Girl in park, London, 1999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