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에 담긴 행동심리학 범죄 해결뿐 아니라 의사소통에 도움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대리는 부서에 없어선 안 되는 인재로 소문났다. 그러나 부장은 부서에 일만 터지면 그에게 사무용품을 집어던지기 일쑤였다.

자신의 실수가 아님에도 계속되는 부장의 행동에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고 있던 그. 혹시 자신의 바디 랭귀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찾았다.

그런데 바디 랭귀지를 바꾸자, 일주일 만에 부장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물건을 던지는 대신 큰 소리로 지적하던 부장은 3주차가 되자 그에게 다가와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한 달이 조금 넘자 김모 대리와 부장은 둘도 없이 친밀한 사이가 됐다.

관계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온 이 실제 사례는 바디 랭귀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모든 관계에는 눈에 보이는 직급이나 심리적 주도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조직에서 그런 상하 관계는 명확해지는데, 동료들과 큰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미 자신의 직급에 맞는 바디 랭귀지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례에 나온 김모 대리는 부장보다 높은 직급이 할 만한 신체 언어를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가령, 부장이 호출할 때, 하던 일을 마치고 느릿하게 부장에게 간다거나, 부장에게 지시를 받을 때도 부장이 앉은 의자 등받이에 팔을 대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제스처를 취하는 등의 행동이었다. 두 사람만 있어도 한 사람은 우두머리 지위인 ‘알파’를 차지하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2인자인 ‘베타’로 자리하게 된다.

한쪽 손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 동작은 서로 축하할 때 하는 동작
통계적으로 조직에서 높은 직급에 오른 이들이 ‘알파’의 제스처를 사용하는데, 특징으로는 느리고 적은 움직임과 말투, 무감각해 보일 정도의 감정 표현, 위에서 내려보는 시선, 넓은 반경 등이다. 사례에 나온 김모 대리가 이 중 몇 가지 제스처를 사용했고, 부장은 그 몸짓을 알게 모르게 불편하게 느끼고 있던 것이다.

내 마음이 보이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만 보더라도 현대인의 소통 의지는 강해지고 그 방식 역시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걸까. 오히려 이같이 다양해진 소통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소통 부재 시대의 반증으로 보인다. 대면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말과 글이 소통의 대부분을 차지할수록 관계는 점점 더 단절되고 있다.

다소 과장을 한다면,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연구는 말과 글만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사람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신체 언어는 대략 1000가지에 이른다.

비언어적 의사소통 체계 중 손이나 얼굴, 몸을 이용해서 전달하는 의사소통이 바디 랭귀지다. 전체 의사소통에서 55%를 차지하고 음성(목소리의 높이, 음색, 억양 그리고 기타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이 38퍼센트를 차지해 비언어적 의사소통 체계는 93%에 이른다.

팔짱을 끼면 자신은 편안하지만 상대에겐 방어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완벽한 의사소통을 원한다면 7%밖에 안 되는 말에 의존하지 말고 93%를 차지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체계(바디 랭귀지와 를 활용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도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바디 랭귀지 활용 능력을 타고나기 마련이지만, 성장 과정에서 언어를 익히고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교육과 환경 속에서 신체 언어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만다. 불필요한 오해와 뜻하지 않은 결과는 이런 과정에서 암처럼 자라난다. 그동안 간과되었던 신체 언어는 21세기 감성의 시대를 맞으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미드 중 몸짓언어와 제스처를 반영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라이 투미>나 <멘탈리스트>. 두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행동심리학은 범죄를 해결하는 데 한정되어 있지만 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상에 도움이 되는 신체 언어

<라이 투 미> 주인공인 ‘칼 라이트먼’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비언어 의사소통 전문가이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주립대 폴 애크먼 박사는 '최초의 얼굴지도'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입술이나 이빨을 빠르게 핥는 동작은 스트레스 받을 때 나타나는 제스쳐
그는 20여 개의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연구에서, 모든 감정은 얼굴에 나타나며 상대방의 얼굴에서 감지되는 수용, 사랑, 공격, 분노 등의 감정을 읽고 상호작용한다고 한다.

또한 내면에 감정 상태와 외현화된 표현이 일치될 때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경험한다. 또한 사람은 특정한 감정 표현을 흉내 내면 몸도 이에 따른 생리적 유형을 보인다면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속설에 힘을 싣는다.

다음 실험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똑같은 강사가 비슷한 지적 수준의 수강생한테 강의를 했다. 한 집단은 바른 자세로 앉아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게 했고 다른 집단은 의자를 뒤로 빼고 팔짱을 끼고 듣게 했다. 똑같은 강의를 했음에도, 강의 내용을 기억하는 비율은 팔짱을 낀 반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바디 랭귀지가 닫힌 것만으로도 마음과 생각이 닫히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스트레칭이 더 효과가 높을 수 있다.

자세를 바꾸면 관점이 바뀌고, 시야가 변하면 뇌의 화학작용이 바뀌어 기분이 한층 나아지기 때문이다. 바디 랭귀지 해석은 타인을 관찰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는 데도 도움을 준다.

브란젤리나 커플의 스캔들이 터진 후,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시사회에 그들이 등장했을 때 모습을 기억하는가. 브래드 피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데, 이는 들추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그런가 하면 안젤리나 졸리는 뒷짐을 진 채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난 겁먹지 않았고, 당당하다’는 사인을 보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만일 뒷짐만 짓고 미소를 짓지 않는다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깍지를 끼거나 한 손이 다른 손을 어루만지거나 쥘 경우, 혹은 종이에 글씨를 쓰는 행동은 스트레스가 높다는 전형적인 신호다. 종종 불편한 장소나 동의하지 않는 대화 내용이 흘러나올 때 다리를 꼬거나 작게는 발목을 꼬기도 하는데, 이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라는 표현이다.

두 손을 중앙으로 모은 무화과 잎 자세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실제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느릿한 동작일 때는 유혹의 제스처로 자주 사용되는 ‘혀로 입술 혹은 이빨을 핥기’는 위급 상황 시 줄어드는 타액 분비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현재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드러낸다.

참고도서

당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 재닌 드라이버 / 비즈니스북스
몸짓의 심리학 / 토니야 레이맨 / 21세기북스
몸은 나보다 먼저 말한다 / 피터 콜릿 / 청림출판
보디 랭귀지 / 바바라 피즈, 앨런 피즈 / 북스캔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 그레고리 하틀리, 메리앤 커린치 / 도솔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