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인상에, 사회공헌 외면, 서민경제 악영향 등 비난

토종 브랜드와 외국계 회사 간에 담뱃갑 논쟁이 붙었다.

물가 불안으로 국민의 가계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 기호식품인 담배의 가격이 올랐다. 담뱃값 인상을 주도한 기업은 외국계 담배 회사들이다.

'던힐', '켄트', '보그' 등의 브랜드를 판매하는 국내 점유율 2위의 BAT코리아가 지난 4월 28일 담뱃값을 2500원에서 2700원으로8%(200원) 올린 데 이어, 일본계 담배회사인 JTI코리아도 5월 4일부터 '마일드세븐', '셀렘' 등 2종 12개 제품의 값을 같은 비율로 올렸다.

현재 국내 담배시장의 점유율은 2010년 기준으로 토종 브랜드인 KT&G가 58.5%이고 뒤이어BAT코리아(18%대)와 필립모리스(17%대, 말보로, 팔러먼트 등), JTI코리아(7%대) 등 외국계로 양분돼 있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1.08%로, 0.11%인 소주의 10배에 달하고 0.19%인 배추보다 비중이 높다. BAT코리아의 국내 점유율 18%를 기준으로 보면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소비자물가지수는 0.0156% 정도 오를 것으로 추산된다.

소비자물가의 0.0156% 상승분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7492억 원의 국민경제의 희생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담뱃값 인상은 전체 국민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담뱃값 인상은 소비자들, 특히 저소득층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우려된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저소득층 가계소비 중 담배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고소득층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서민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BAT코리아는 지난 4월 22일 가격 인상을 발표하며 "2005년 대비 담뱃잎 가격이 60%, 인건비가 30% 상승해 최근 몇 년간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매출원가율(매출액 대비 원가의 비율)이 98.8%이며 1100억 원의 영업손실이 났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업계의 주장은 다르다. 국내외 담배회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20~30%이고, 매출원가율도 40%와 비교해 엄청나게 높은 수치라며 BAT코리아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또한 BAT코리아가 지난해 122억 원, 2009년 77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것과도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도 외국계 담배 기업의 담뱃값 인상은 도마에 올랐다.

4월 26일 대전에서 'BAT코리아의 담배가격 인상 규탄 집회'를 연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연협중앙회)는 외국 담배 기업들이 국내 잎담배 사용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익의 사회환원에도 소극적이라며, 이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가격 인상에만 나선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연협중앙회는 "BAT코리아가 원재료를 외국에서 전량 수입해 제조할 뿐 국내산 잎담배는 단 한 잎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며 "2002년 국내 공장 설립 당시 국내산 잎담배 사용을 약속했지만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이행하지 않아 잎담배 생산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협중앙회와 소비자단체들은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사회공헌이라는 기업의 책임에 소극적이고, 한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국내에 재투자하지 않고 대부분 국외로 보낸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외국계 담배회사 3곳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2976억 원 규모였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기부한 기부금은 고작 4억4755만 원으로 매출액 대비 기부금이 0.00034%에 그쳤다.

BAT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국내에서 5870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기부금은 기껏 3억727만 원으로 매출액 대비 0.00052% 수준에 머물렀다. '말보로', '버어지니아 슬림', '라크' 브랜드를 가진 한국필립모리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4895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국내 기부금액은 한 푼도 없었고, 2009년에는 8843만 원(매출액 대비 0.0002%)을 기부했다. JTI코리아 역시 지난해 매출액 2211억 원 중 기부금은 1억4028만 원으로 매출액 대비 0.00063%였다.

반면 이들 담배 회사들이 지난해 임직원에게 지급한 복리후생비는 BAT코리아가 38억6400만 원, 필립모리스는 44억3776만 원, JTI코리아는 38억6400만 원으로 기부금과는 대조를 이뤘다.

이에 대해 BAT코리아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메세나 활동을 통해 사회공헌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비 사회적 기업' 을 선정해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메세나 차원에서 서울팝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발레시어터와 손잡고 전국순회공연을 진행했는가 하면, 1999년부터 올해까지 32대의 냉동탑차를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인 KT&G와 비교해 보면 외국계 담배 회사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소극적이라고 할 만하다. 기부금의 경우만 해도 KT&G는 지난해 2조4999억 원의 매출액 중 293억9200만 원을 기부금으로 내놔 외국계 담배 회사 3곳의 기부금액 4억4755만 원의 65배가 넘는다. 또한 사회공헌 활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해 지난해 한국메세나대회에서 문화공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외국 담배의 시장 점유율이 42%대에 이르는 현실에서 외국계 담배 회사들의 담뱃값 인상은 흡연자뿐만 아니라 비흡연자를 포함한 국민 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대두됐다. 또한 이들 회사의 국내 진출이 20년을 넘기며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잡은 만큼 책임 있는 기업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전문가들은 "외국 담배회사들의 가격 결정은 무엇보다 그들이 영업을 하는 국가의 물가정책과 특히 서민을 포함한 국민정서를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이번 기회에 국내 담배산업의 구조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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