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the Kitchesn] (22) 폭탄주무식한 폭탄주 문화, 술 기운 빌어 사랑 고백 등 다양한 소설 속 모습들

장마로 폭염이 잠깐 꺾였던 지난 수요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재미있는 기사가 떴다. 제목은 '하루 8000개씩 팔리는 소맥잔'. 한 인터넷 쇼핑몰이 올 상반기 아이디어 상품 1위로 꼽은 이 맥주잔은 말 그대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실 수 있는 전용 술잔이다.

소주와 맥주 비율이 1대 9인 '부드럽게 술술'부터 '황금비율'인 3대 7, '기절만취'의 5대 5까지 눈금으로 표시해 취향과 주량에 따라 제조가 가능한 게 특징이라고 한단.

이 기사를 읽다 문득 몇몇 일화가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왜 취하려 하십니까?

"왜 폭탄주를 마십니까?"
"양주만 마시면 독해서요."
자칭 타칭 애주가를 내세우는 저널리스트 임범은 <술꾼의 품격>에서 폭탄주의 역사를 이렇게 소개한다. 1999년 국회 청문회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국회의원이 묻고 검찰 간부가 답변한 이 대화가 '한국 현대사에 폭탄주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첫 순간'이라고 말이다.

1980년대 군과 검찰에서 마시기 시작하다 정치권, 언론사를 거쳐 이제 '국민주'가 된 폭탄주. 미시사(微視史)에서 정확한 근원을 어떻게 따지겠느냐만, 임범은 폭탄주의 유래를 설명하며 1990년대 후반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맥주에 위스키 대신 소주를 타는 '소폭'이 등장했다고 정리했다.

필자가 처음 폭탄주를 맛본 건 대학 시절이다. 선배들이 학교 앞 맥주집에서 술에 적신 냅킨을 천장에 착! 착! 붙이며 '회오리주'를 건넸을 때, 속으로 '아 이런 신세계가 있는 것이구나'하며 감탄했다. 지금 생각하면 직장 2,3년 차 새내기와 대학 새내기의 어설픈 술자리지만. 알싸한 맥주 맛과 톡 쏘는 위스키 향이 뒤섞인 폭탄주를 마실 때는 머리 뒤로 불꽃이 팡팡 튀는 만화 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이제 사람마다 폭탄주의 제조 유형과 즐기는 타입이 제각각이 됐지만 조정래의 장편 <허수아비 춤>은 폭탄주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현대사회 권력층의 파렴치한 행태를 정면에서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폭탄주는 편법ㆍ불법 상속, 차명계좌, 비자금, 상납 같은 상류사회 돈놀이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로 등장한다.

'90년대 그 언제부터인가 해괴하게도 폭탄주라는 돌연변이 술이 생겨났다. 그 독한 양주에다가 맥주를 뒤섞은 술, 그 국적 불명의 술은 뒤섞인 내용만 무식하고 무지막지한 것이 아니었다. 마시는 방법은 더욱더 야비하고 저돌적이었다.

양주와 맥주가 섞여 이미 독주로 변했는데, 큰 맥주잔에 한 가득 넘치는 그 독주를 입을 떼지 말고 단숨에 마셔야 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그 이름도 거룩한 폭탄주 마시기의 불문율은 또 하나가 더 있었다. '열외' 인정 없음. 그 술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그 독주를 마셔야 하는 것이다.' (조정래 <허수아비 춤> 220페이지)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소설 속 저 풍경은 분명 폭탄주 문화의 한 부분이지만, 폭탄주 문화가 꼭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열외 없이 강권하는 무식한 폭탄주 문화야 욕먹어 마땅하지만, 알고 보면 폭탄주는 꽤 괜찮은 맛의 '드라이 칵테일'인데 말이다.

혼자 폭탄주로 자작하는 사람, 인터뷰에서 소맥 즐긴다고 말한 그 많은 유명인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루에 8000개씩 팔린다는 저 소맥잔은 전부 기업 회식용으로 쓰이는 걸까?

술은 술일 뿐 착각하지 말자

필자는 '정통 방식'인 위폭(위스키+맥주)보다 '서민형'인 소폭(소주+맥주)을 더 선호하는데, 소폭이 위폭보다 알코올 냄새가 적기 때문이다. 물론 지인들은 "입맛이 싸구려라 그렇다"고 놀리지만. 회식 단골메뉴로 나오는 위폭은 '정신 차리고' 마시기 때문에 감흥이 덜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값싸고 빨리 취하는 소폭은 이보다 편한 자리에서 마시게 마련이다. 이 술의 위력은 자꾸 마시다 보면 '애미 애비도 몰라보는 술'이 된다는 건데, 필자는 이런 경험을 어느 여름날 할아버지 문인 앞에서 한 적이 있다.

작가 중에 술자리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못 봤지만, 소설가 박상륭 선생은 술 자체를 엄청 좋아하시는 것 같다. 오죽하면 작고한 이문구 선생이 "술 없는 천국보다 술 있는 지옥을 택할 주선(酒仙)"이라고 하셨을까. 아무튼 젊은 작가 몇몇과 선생님 댁 근처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기분이 좋아진 선생님께서 2차로 집에 가자고 하셨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문인이 많았는지 잠자다 일어나신 사모님이 술상을 내주셨는데, 특이한 건 술잔이 패밀리레스토랑 음료수잔 만한 큰 컵이었다. 소주와 맥주가 일렬종대로 꽂힌 냉장고 문을 활짝 열며 선생님이 말하셨다.

"알아서 마음껏 드세요."

그리고 그 큰 컵 가득 맥주와 소주를 섞어 계속 따라 주셨는데, 이미 얼굴이 벌개진 작가들과 필자는 그 술을 다 마시고 무사히(?) 집을 나왔다.

박상륭 선생의 독특하고 난해한 작품을 보면 얼핏 깐깐한 인상이 그려지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그 술자리를 너무 만만하게 봤었나보다. 몇 달 후에 선생의 집을 찾아 다시 그 패밀리레스토랑 컵에 따른 소맥을 마셨다.

이번에는 미리 말씀을 드리고 갔던 터라 술은 그때보다 더 많았는데, 긴장 풀고 마셔서 그랬는지 술 잘 안 먹는 작가를 데리고 가서 그랬는지 그날은 필름이 잠깐 잠깐씩 끊겨버렸다.

같이 간 작가에 따르면 필자가 화장실에서 30분간 나오지 않았다고. 매번 진탕 술 먹고 난 다음날 후회를 하지만, 그 다음날처럼 이불 뒤집어쓰고 "미쳤지, 미쳤어"를 연발했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던 듯싶다.

편한 술자리에서 적당한 알코올 기운과 대화는 '섬씽'을 불러오게 마련다. 권여선의 단편 '사랑을 믿다'는 소맥의 기운을 빌어 옛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실연의 아픔을 가진 두 남녀의 사랑을 현재, 3년 전, 6년 전 이렇게 3겹의 이야기로 포개놓았다. 주인공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허름한 술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맥주에 안동소주를 섞은 술을 얼결에 받아마시게 되는데 그 맛은 "맥주에 희석된 안동소주처럼 너무도 특별하고 아름다운 표독함"이다.

'국그릇과 반찬 접시들 옆에 맥주 두 병과 목이 긴 도자기병에 든 안동소주 한 병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맥주에 안동소주를 섞자는 거였다.(…) 나는 그녀가 따라놓은 술을 마셨다. 싱거운 맥주 맛 속에 뾰족한 심처럼 독한 안동소주 향이 박혀 있었다. 그녀의 친구는 이미 원경으로 물러났다. 이제 실연의 유대는 그녀와 나, 둘 사이에 맺어졌다.' (권여선, <내정원의 열매> 사랑을 믿다 56~60페이지)

이 자리에서 그는 여자가 자신을 좋아했고 제법 심각한 실연의 고통을 겪었음을 처음 알게 된다. 자신 역시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지만 이미 늦은 일. (여자의) 실패한 사랑은 봉합은커녕 다시금 (남자의) 불우한 사랑을 부를 뿐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갖는 유대감은 술기운일 뿐, 기실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

무식한 폭탄주 문화가 욕먹으면서도 유지되는 건 아마 술기운을 빌어 말하고 싶은, 말을 빌어 마음을 나누고 싶은 심리 때문이 아닐까. 술자리 다음날 이불 뒤집어쓰고 "미쳤지"를 연발하는 필자나, 때 놓친 사랑을 후회하는 저 소설 속 '나'나, 폭탄주가 만사 통하는 황금열쇠는 아니지만 말이다.

"뭐하냐?"
"뭐하긴, 돈 벌지. 퇴근하고 소맥 콜?"
친구랑 술 약속 하나를 잡고 속으로 되뇌어 본다. 술기운은 술기운일 뿐, 착각하지 말자!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