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마음수력 통해 해소, '착한 사람 콤플렉스' 벗아나라 제안

'화병'은 WHO의 질병색인에 'hwa-byung'으로 등재된 독특한 질환이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특징적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국 정신과협회에서는 1996년에 문화 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하기도 했다.

국어사전에서 '화'는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이라고 정의된다. 곧 '성이 나는 것'을 화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화를 꾹꾹 눌러 담아 장기화된 감정이 화병이라고 해석된다. 섣불리 화를 표출할 수 없던 것은 이들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화병은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는 중년 이상의 여성이나 교육수준과 사회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주 발병하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와 경쟁, 정리해고와 사업실패를 겪은 중년 남성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화병은 오랜 시간 억제했던 감정이 한번에 폭발하면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의 원인으로도 심심찮게 보고된다.

화가 나는 순간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2시간 동안 기다려도 전혀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5분만 늦어도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상대에게 화를 낸 다음에야 공정한 처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각자의 사례는 달라도 화를 내게 만드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한자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분노를 의미하는 노(怒)라는 한자를 보면, 노예(奴)와 마음(心)이 합쳐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예의 마음', 이것은 분노가 생기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심리학에서 설문을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분노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라고 한다. 이어 반윤리적인 행위를 보거나, 자신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또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등이다. 여기에 상대방의 태도는 분노의 강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인 분노를 억압하기만 해서는 화병을 일으킬 수 있고, 마음 내키는 대로 분출해서는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의 불이라 할 수 있는 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끓어오르는 분노 잠재우기

갈대처럼 움직이는 인간의 감정에 대한 조언이 필요할 때마다 의지하게 되는 것은 종교적 가르침이다. 그 중에서도 평정심을 잃었을 때 즉, 분노와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에 대한 한결 같은 종교적 조언은 '참아라 혹은 통제하라'로 요약할 수 있다.

내과전문의인 최현석은 저서 '인간의 모든 감정'에서 "분노 표출은 분노의 원인을 밝혀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분노가 인간의 기본적이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감정이기는 하지만 분노를 파괴적으로 폭발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를 내면 상대는 미안해하기보다 함께 화를 내며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켜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그가 제안하는 건설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란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불편한 감정을 차분하게 대화하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 수도승 코이케 류노스케는 초기에 제압하지 않으면 스스로 더 크게 자라나는 분노를 통제할 것을 조언한다. 저서 <화내지 않는 연습>을 통해 그는 화를 내기에 앞서 화가 나지 않는 마음을 먼저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조언이지만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분노라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평소 마음 수련과 감시를 통해 평정심을 유지할 것을 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분노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원인이므로 자기 식대로 남의 태도나 말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모든 번뇌를 분노로 정의한다. 욕망도 예외가 아닌데, 욕망은 어떤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나 현재 그것을 할 수 없기에 분노라는 감정을 끌어들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작은 염려, 현재 하는 일에 몰입하지 못하는 순간은 모두 분노의 또 다른 형태라고 말한다.

인간 걱정의 96%가 걱정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은 수시로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며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참고 인내하라는 일반적인 종교적 가르침의 새로운 해석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천주교회 사제로 가톨릭 평화신문에서 오랜 세월 속 시원한 영성 상담에 종사한 홍성남 신부의 처방이다. 홍성남 신부는 화를 참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필요한 경우에는 화를 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풀지 않고 쌓아두면 화내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게 된다. 일상의 짜증이나 가시 돋힌 말투 역시 이것의 연장선이다. 자연스럽게 주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나가는 건 시간문제다. 또 속으로 삭이다 보면 마음의 병은 몸의 병으로 이어지고 화가 한꺼번에 폭발해 비이성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등 화내지 않아 생기는 병폐는 많다.

홍성남 신부는 화를 '마음속에 생긴 배설물'로 정의하고 사람이 밥을 먹으면 화장실에 가서 배설을 하듯이 불쾌한 감정도 배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자신도 방에 샌드백을 달아놓고 화가 날 때마다 이것을 때려 분노를 해소한다는 고백에는 수도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홍 신부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남들의 행복을 돌보다가 정작 자신은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다가는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없다며 가장 먼저 떨쳐버릴 것을 권하고 있다.

이 순간, 분노는 필요하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코이케 수도승과 홍성남 신부의 조언은 유용하다. 그러나 진정 분노해야 할 순간에는 분노가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사회적 강자를 앞에서다. 이 감정은 때때로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라는 자기 위안 속에서 무관심으로 변하기도 한다.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더라도 나에게 해가 될 일이 없다고 느낄 때다. 상대가 나보다 월등히 강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분노는 두려움이 되거나 무관심이 되는 것이다.

한 심리학자가 호주의 직장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화나게 한 사람이 부하 직원인 경우 71%가 분노를 표출하지만 동료인 경우는 58%로 줄고 상사인 경우에는 45%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보다 강자라 하더라도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하면 두려움은 크게 줄어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 같은 집단의 분노는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최근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93세의 레지스탕스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전직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냈던 스테판 에셀은 젊은이들을 향해 '분노하라'고 외친다. 이 책은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며 그는 역설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21세기, 사회 양극화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 그리고 사회를 장악하려는 자본주의 권력은 전 세계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커다란 문제다. 한국만 하더라도 그런 문제는 산재해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하루만 달더라도,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에게 120만 원이 지급된다는 소식은 이 사회를 한층 암울하게 한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로스쿨'과 '외교 아카데미'는 또 어떤가. 추진방침을 내비친 의보 민영화도 우리 눈앞에 펼쳐진 분노의 동기가 아니고 무엇일까.

"당신은 개인으로서 책임이 있다." 스테판 에셀이 인용한 사르트르의 이 한 마디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떤 권력이나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이 책임은 가장 강력한 대의명분이 될 수 있다. 무관심을 최악의 태도라고 말하는 에셀은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라며 프랑스 청년들에게 뜨겁게 호소한다. 그의 호소가 먼 땅에 사는 한국 젊은이들의 가슴을 데우는 것을 보면 그것이 더 이상 프랑스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