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the Kitchen] (25) 팥빙수어린 시절 달콤한 추억을 곱씹으며 나눠 먹어야 제 맛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카모메식당>에는 '소울 푸드'란 근사한 말이 나온다. 영혼을 움직이는 음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영화 속에서는 사치에의 어머니가 소풍 때마다 만들어준 주먹밥이다.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밥. 진심과 정성이 담겼다면 서양인에게도 통할 거라고 주인공은 믿는다. 그래서 이 작은 갈매기 식당의 주메뉴는 주먹밥이다.

이 감독은 꽤 여러 편의 음식영화를 만들었는데, <안경>에서 이런 소울 푸드는 팥빙수다. 사쿠라 할머니는 매년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팥빙수를 판다.

공들여 만든 팥고물, 시원한 얼음, 시럽. 이 세 가지가 빙수에 들어가는 전부다. 별것 안 들어가는 이 팥빙수에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주인공 타이코를 제외하고서. 팥을 삶으며 사쿠라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빙수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조급해하지 않으면, 초조해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달콤한 빙수가 만들어진단다."

영화 속 바글바글 졸여지는 팥고물을 보며, 필자는 기자는 어린시절 먹었던 팥빙수가 생각났다.

팥빙수 드실래요?

팥빙수. 말 그대로 얼음을 눈처럼 간 다음 그 속에 삶은 팥, 설탕 따위를 넣어 만든 청량음료다. 청량음료란 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국어사전에 '팥빙수'란 단어는 없고, '빙수'란 말로 이렇게 소개돼있다.

오늘날과 같은 팥빙수 꼴을 갖추게 된 건 일제강점기라고 하는데, 단팥을 얹어 먹던 일본 음식이 전해져 우리의 팥빙수가 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빙수 장수는 손수레에 얼음덩어리를 싣고 다니면서 깎은 얼음에 설탕 한 숟가락과 빨간 물과 노란 물을 뿌리거나 팥을 얹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빙수도 사랑했는데, 그래서 인지 빙수에 관한 수필도 여러 편 남겼다. 이 글을 읽다보면 일제 강점기 먹었던 빙수의 모습이 그려진다.

'얼음의 얼음 맛은 아이스크림보다도, 밀크셰이크보다도 써억써억 갈아주는 '빙수'에 있는 것이다. (…) 눈이 부시게 하얀 얼음 위에 유리같이 맑게 붉은 딸깃물이 국물을 지울 것처럼 젖어있는 놈을 어느 때까지든지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시원할 것 같은데. 그 새빨간 데를 한 술 떠서 혀 위에 살짝 올려놓아 보라.

달콤한 찬 전기가 혀끝을 통하여 금세 등덜미로 쪼르르르 달음질해 퍼져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분명히 알 것이다.' (방정환, <없는 이의 행복> '빙수 2' 중에서)

방 선생은 "한 그릇 먹고는 반드시 또 한 그릇을 계속하는 버릇이 되었다"(빙수 1)고 하는데, 기자도 어린 시절 하루에 꼬박꼬박 두 그릇 씩 팥빙수를 먹었다.

90년대 초, 기자는 아파트촌으로 이사를 갔는데 다행히도 그 아파트에는 기자 또래 아이들이 꽤 많이 살았다. 동네 아줌마들은 매일 우르르 모여 밥 먹으며 수다를 떨었는데, 고만고만한 살림살이에 어느 집이 세간 하나 장만했다 하면 또 우르르 그 세간을 사 모으며 이튿날부터 품평회를 시작했다.

이사 간 이듬해 여름 유행한 세간이 팥빙수 기계다. 집집마다 얼음 가는 기계를 산 후,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팥빙수를 해 먹이기 시작했다. 요리라면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기자 엄마는 아줌마들이 팥 통조림을 살 때, 팥을 집에서 삶기 시작했다.

첫 번째 팥고물은 실패했지만 아줌마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나이 많은 위층 아줌마에게 몰래 팥 삶는 법을 다시 배워 두 번 만에 성공했다. 그리고 하루 두 번씩 팥빙수를 만들어주며 그때마다 이렇게 물었다.

"맛있지? 파는 거랑 비교가 안되지?"

당시 아줌마들 사이에서 또 유행한 게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받아주는 거였다. 일주일에 한 번 학습지 선생님이 집에 오면 엄마는 우아하게 기다렸다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팥빙수 드실래요?"

그리고 얼음을 갈며 말했다.

"우린 통조림 안 써요."

이렇게 달디단 눈빛으로

기자는 이렇게 집에서 빙수를 먹어야 했지만, 90년대 들면서 '파는 빙수'는 다양하게 발전했다. 녹차빙수, 커피빙수, 과일빙수 등 갖가지 알록달록한 빙수가 나온 게 이때부터다.

2000년대는 크기로 승부해서 4,5명이 먹어도 남을 세숫대야 빙수 같은 게 유행했는데, 대학시절 남자친구 앞에서 이 큰 세수대야 빙수를 시켜 배 터져라 먹었던 걸 생각하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싶다. 뭐 눈에 콩깍지가 덮이면 뭔들 좋지 않겠냐만은.

'팥고물처럼 우리 이렇게 달디단 눈빛으로/ 한 백 년쯤 녹아갈 수 있다면// 오늘같이 더운 날/ 이마에 맺힌 땀방울 송글송글 닦아주며/ 달뜬 마음도 식혀주며/ 한술한술 서로 입에 넣어주다가/ 빈 그릇 밑바닥에 얼굴 비춰보면서/ 시원하지 참 시원하지 다독여주면서/ 한 그릇 더 시킬까 마음 써주면서// (…) 내일 또 내일 내년 후 내년/ 이 시려 찬 것 더 못 먹는 날까지 손가락 걸고 자박자박/ 아름답게 늙어갔으면' (고두현,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팥빙수 먹는 저녁' 중에서)

이런 유행 한편으로 혼자 '마시는' 빙수도 나왔다.

음식을 먹는 것이 보편적 감각을 개별적 체험으로 바꾸는 경험이라면 기자에게는 이 혼자 마시는 빙수, 별다방의 레드빈 프라푸치노 시음이 그랬다. 팥빙수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특별히 국내에만 출시한 여름 한정 메뉴였는데, 우유와 얼음, 팥을 갈아 셰이크처럼 만든 음료였다. 이걸 마셨던 날은 기자가 회사에 사표를 쓴 날이었다.

"넌 네 인생, 난 내 인생"을 인생 모토로 삼는 기자에게 이전 회사의 직장 문화는 곤혹이었다. 그때 상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며 정각 12시에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우르르 몰려나가 밥 먹는 걸 즐겼다.(지지난 주 삼계탕편에 등장했던 그 상사다.) 식당에서 점심을 마시고(대개 남자 직장인들은 점심을 먹기보다는 마신다), 커피전문점으로 뛰어가는 게 이 상사의 낙이었는데, 기자는 그와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볶음밥이나 돌솥비빔밥처럼 나눠먹지 않고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시켰다. 같이 밥을 마실 수가 없어서 말이다.

그 상사와 복날 삼계탕을 6그릇째 먹고 난 후, "각자 밥 먹고 커피마시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며 사표를 던지고,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먹은 음식이 이 마시는 팥빙수였다. 카페에서 파는 팥빙수는 대부분 2,3명이 나눠먹을 만큼 큰 그릇에 나오지만, 이 '레드빈'은 머그컵에 셰이크처럼 담겨서 혼자 먹을 수밖에 없는 팥빙수다. 이 빙수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으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혼자구나.'

울컥하는 기분에 가슴이 먹먹했다. 누군가와 세숫대야 빙수를 나눠먹고 싶었다.

팥빙수 녹인 듯한 맛에 반응이 시원찮았는지 이 음료는 그린티 프라푸치노처럼 별다방의 스테디 메뉴가 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 음료수 먹고 체한 기자 같은 사람들이 꽤 있었나보다. 지금도 여름이면 가끔 별다방의 그 음료가 생각난다. 아마 다시 나와도 '그냥 팥빙수'를 먹을 것 같지만.

빙수는 나눠 먹는 게 제 맛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