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문화는 물론 패션·가전 등 소비패턴의 변화 곳곳서 감지

집중호우로 인해 피해가 속출했던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거리에 차량들이 침수되어 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지난달 27일은 강남, 서초구 일대가 악몽과도 같은 끔찍한 날이었다. 방배동과 대치동, 강남역 일대가 침수되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현실화됐다. 홍수라는 말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아니 무서운 하루였다.

방배동의 우면산은 산사태를 일으키며 인명피해를 낳았고, 대치동과 강남역 일대는 눈앞에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물에 잠겼다. 소위 잘나가는 강남이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국지성 집중 호우로 인해 삽시간에 서울 한복판이 물에 잠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9월 추석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똑같은 변을 당한 셈이다. 그해 10월에는 기습한파가 몰아쳐 방한복을 꺼내 입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가을이 사라지는 게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전문가들은 이미 우리의 이상 기후를 두고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한 바였다. 현재 한반도 남해 연안까지 이미 아열대화가 진행 중이어서 50여 년 후에는 고산악지대를 제외한 중부지방까지 아열대성 기후로 변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말로만 듣던 여름과 겨울, 즉 '2계절 환경'이 도래하는 것이다. 어쩐지 그날은 멀지 않게 느껴진다.

지난달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육군 52사단 장병들이 복구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3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선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와 산사태의 원인을 알아보고 대책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기후변화센터와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주최로 '반복되는 집중호우와 도심피해, 대책은 없는가?'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권원태 소장은 '기후변화에 따른 호우 현황과 전망'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동아시아 여름 강수량 증가의 메커니즘을 논하며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한 기온상승은 대기순환 패턴의 변화를 가져와 수증기 수렴대 변화, 대류 불안정과 역학 불안정 강화, 태풍에 의한 강수량 증가를 야기한다.

그러면서 동아시아 여름 강수량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라 기후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미래에 예상되는 극한기상 현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취약성 평가와 지역 규모의 방재 적응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유철상 교수는 '도시홍수 대응의 한계 및 극복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며 침투시설, 저류시설, 빗물 펌프장과 같은 구조적인 대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강수 특성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할 경우 과거 관측기록에 기초해 만든 설계조건이 쉽게 무력화 될 수 있다는 것. 유 교수는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는 재해예방의 효율성 및 경제성 제고, 침수발생 시 인명 및 재산피해 최소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 구축, 이를 가능하게 하는 예측 강우의 정도확보 등을 선결문제로 제시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후변화센터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주최로 열린 '반복되는 집중호우와 도심피해, 대책은 없는가' 긴급토론회에서 국립기상연구소 권원태 소장이 '기후변화에 따른 호우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이병국 박사는 "모라꼿 태풍이 대만에 뿌린 하루 3,000mm의 호우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도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전략 수립과 실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또한 "기후변화에 의한 우리나라의 예상 피해비용을 추산해 보면 앞으로 90년간 약 2800조 정도로 예상되며, 극한적 기후변화일 경우 그 피해가 이보다 10배에 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노력과 함께 최소한 백년 이상 계속될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적응 대책이 필요함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식문화가 바뀔 수 있다. 지난해 기상청의 주최로 열린 '제9회 기후변화와 미래포럼'에선 기후변화에 따른 우리 식문화에 대해 논했다. 원광대학교 이영은 교수는 기후변화가 농산물 생산과 우리의 식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아열대 기후로 바뀐 제주도에선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아티초크와 오키나와의 특산물로 알려진 여주 그리고 망고, 아보카도 등 아열대과일을 들여와 환경적응성을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기후온난화로 인해 아열대 작목이 유망작목으로 부상하고 우리의 식탁이 다양해진다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기온이 지속적으로 오를 경우 생산과 채집이 어려운 작품이 생겨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식생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김장은 우리 식문화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지만, 기후변화로 배추를 비롯한 채소들의 가격이 상승해 우리 식생활에 커다란 문제로 부각한 게 사실이다.

내륙지방의 온난화 현상은 식문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특히 전주비빔밥은 주재료들이 모조리 바뀌게 되는 수모를 겪을 지도 모른다는 것. 전주 10미(味)로 간주되는 식재료로 파라시, 열무, 황포묵, 애호박, 모래무지, 게, 무, 미나리, 콩나물 등이 들어가지만 이것이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주비빔밥은 한 그릇의 음식 안에 3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가며 특히 콩나물, 미나리, 애호박, 황포묵, 무 등은 전주 10미 중 필수재료다.

그러나 최근 같은 속도로 온난화가 가속화 된다면 "전주비빔밥에는 콩나물 대신에 숙주가, 미나리 대신 피망이, 빨갛고 노란 파프리카가 구색을 갖추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식재료의 변화는 그 음식의 맛도 변화시킬 것이 뻔하다.

우리의 생활과 소비패턴은 어떨까. 아쿠아 슈즈, 방수기능 가방, 가정용 제습기. 이름만 들으면 쉽게 이해가 가는 제품들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관련된 상품들이라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진다.

스포츠브랜드 엘케이스포츠는 아쿠아 슈즈를 출시해 레저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내놓았다. 바캉스 시즌을 겨냥한 것이지만 최근 발생한 아열대 우기 같은 이상 기후로 인한 갑작스러운 장마에 요긴하게 쓰인다.

물 빠짐 기능과 통풍성을 극대화시켜 착용감이 뛰어난 게 특징. 네파도 빗물을 막아내는 투습력과 방수력이 돋보이는 기능성 워킹화를 출시했다. 가벼운 중량감으로 레저 활동이나 장마 때 레인부츠를 대신해 착용이 가능한 스마트한 아이템이다.

방수기능이 더해진 가방은 어떤가. 태풍이나 갑작스럽게 내리는 폭우 등 기후 변화를 고려한 배낭은 필수다. 레저 용품으로 출시된 제품들이 기후변화에 따라 필수품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기후의 변화가 오면서 패션업계는 더욱 비상이다. 업계에선 날씨에 따른 반응생산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폭염과 폭우 등 기후변화에 따른 장기전략 수립이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에 대비하는 기능성 의류시장이 확대되는 결과도 낳았다. 계절별 의류를 생산하던 과거와 달리 그 경계를 없앴다.

SPA브랜드 매장은 계절의 구분이 없어진지 오래다. 여름이라고 반팔이나 민소매 상의나 반바지를 판매하는 게 아니다. 털 코트나 가죽재킷, 스웨터, 부츠, 털모자 등 겨울 제품과 반팔 티셔츠와 비치드레스, 샌들, 밀짚모자 등은 사시사철 진열돼 있다. 계절의 구분 없이 다양한 의상들을 디자인해 판매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소비패턴까지 변화시키는 위력을 지닌 셈이다.

또한 가전제품 브랜드 리홈에서 출시된 가정용 제습기도 소비자들의 관심 대상이다. 강력한 습기 제가와 탈취 및 공기정화 기능까지 갖춰 눅눅한 실내공기를 상쾌하게 바꿔준다. 리홈 측은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로의 변화가 제습기의 사용을 높이고 있다"며 "빨래건조나 공기정화기능 등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