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국 불안·테러 위협 등 악재에 수요 폭증, 50달러 시대 눈 앞에흔들리는 세계경제·내수도 '꽁꽁', 중국 견제 위한 미국의 음모설도

[Oil Shock] 3차 오일 쇼크 오나?
이라크 정국 불안·테러 위협 등 악재에 수요 폭증, 50달러 시대 눈 앞에
흔들리는 세계경제·내수도 '꽁꽁', 중국 견제 위한 미국의 음모설도


올 여름 세계는 에너지 위기로 혹독한 시련을 겪을 전망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4월 감산 결정을 계기로 5월 중순 들어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훌쩍 넘으면서 세계는 이러한 위기 진단에 익숙해지고 있다. 세계는 벌써 40달러 대 유가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고, 50달러 대 고유가 시대의 도래마저 감수할 처지가 됐다.

현 고유가 국면은 공급 불안이라는 단일 요소로 촉발됐던 이전의 오일 쇼크와 달리 공급 불안에 더해 미국과 중국 등의 수요 폭증, 이라크 정국 불안 및 테러 우려 등 심리적ㆍ지정학적 불안정 등이 겹치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실마리를 풀기 위한 방정식도 이전보다 훨씬 난해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미 OPEC이 증산 결정을 내려도 세계가 유가를 진정시키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면서 “에너지 가격 통제 시기를 놓쳤다”고 실기론을 거론하기 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5월22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OPEC 석유장관회의에서 회원국들간에 증산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유가 불확실성은 당분간 세계 경제를 더욱 옭아맬 듯 하다.

- 새로운 오일 쇼크인가

현 고유가 국면은 오일 쇼크의 초기 진입 구간인가 아니면 시장 수요에 따른 유가 조정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고유가 국면이 오일 쇼크 사태로 이어질 지 여부를 가름하는 잣대는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인상폭일 것이다.

UBS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지 매그너스는 “배럴당 40 달러 대에서 유가가 오름세를 지속, 세계 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안길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오일 쇼크 진입 국면 쪽에 섰다. 그는 전세계 투자가들과 기업들도 고유가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고, 주식시장이 몇 차례 폭락을 경험한 징후를 지적한다. 현 유가 상승이 소비급랭 →기업이윤 감소→ 인플레이션→ 세계 경제 회복 지연 및 불황을 연쇄 유발하는 전형적인 오일 쇼크 국면이 전개되리라는 예측이다. 이들 전문가는 고유가로 유발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각국이 긴축정책을 택할 것이어서 70년대식 스테그플레이션의 재연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래서 지난해 이라크 전쟁이후 시작된 미국의 호황이 단 1년여 만에 종지부를 찍고 자본부의 역사상 최단 호황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예언마저 나오고 있다.

원유 매장량이 고갈돼 산유국들 중 증산의 여력이 있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몇 개 나라에 불과하다는 점도 이들의 우려를 부채질한다. 또한 3차 중동전, 이란의 회교 혁명이라는 아랍의 지정학적 불안정 속에서 진행된 1, 2차 오일 쇼크처럼 이라크 전쟁과 대 테러전을 배경으로 이번 유가 위기가 시작된 점도 주목된다.

- 쇼크라고 말하기에는

하지만 이 같은 진단은 아직은 시장의 과장된 반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81년 2차 오일쇼크 당시 치솟았던 유가 35달러(두바이유)를 그간의 인플레를 감안해 환산할 경우 72달러 선이다. 결국 40달러대는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닐 수 있다. 또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도 80년대에 비해 현저히 낮아 고금리정책을 펴 인플레를 잡는다 해도 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미 캘리포니아대 제임스 해밀턴 교수는 “최근 고유가는 1990년대 이후 유정 투자가 지체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세계 경제가 지난 10년간 IT산업에 투자를 집중하다 보니 원유 생산 공급 시설에 대한 투자가 등한히 됐고, 이에 따라 생산량을 늘릴 여지가 적어 현 수요량을 따라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50달러 대 유가 시대 도래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가가 연초보다 배럴당 10달러 올라 1년간 지속될 경우 세계 GDP는 0.5%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IMF 등이 30달러 유가를 기준으로 올 세계 경제 성장율을 4.6% 안팎으로 추정했던 점을 감안하면 4% 이하로 성장세가 둔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유가의 타격은 선진 경제권보다는 석유의존도가 높고 경제구조가 취약한 이머징 마켓과 가난한 국가들에게 심할 것이다. 선진국들은 오일 쇼크후 지난 30년간 고효율 에너지 사용 구조를 만들었으나 중국과 아프리카는 석유 의존도가 당시보다 두 배 정도 높아졌다. IMF는 고유가로 인해 중국 경제성장율이 0.8% 둔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경우 국내 소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유가 배럴당 35달러를 넘어설 경우 GDP가 3.67% 감소되고, 경상수지는 18.6% 줄어든다. 고용과 실질임금도 각각 3.06%, 2.14% 하락할 것이다. 우리에게 심각한 대목은 최근 2~3년간 꽁꽁 얼어붙어왔던 국내 내수 경기가 이번 고유가 파동으로 더욱 얼어붙게 돼 고용, 성장, 실질임금 등 거시지표가 당분간 회복하지 못해 서민 들의 주머니가 더욱 가벼워질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 특수로 최대 호황을 맞은 수출 전선도 중국 성장 저하로 찬서리를 맞을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다.

- 유가에도 중국 위협론

현재 진행되는 고유가 행진을 바라보면서 세계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이 중국 위협론을 고유가 시대의 주요 배경으로 지적하고 있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일부 전문가들은 하루 600만 배럴을 먹어치우면서 세계 소비량의 9~10%룰 차지하는 세계 2위 원유 소비국, 중국의 원유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불가피하게 고유가 정책을 택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시각을 연장해 미국이 ‘가상의 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석유안보차원에서 이라크를 침공, 고유가 시대를 불가피하게 열었다는 주장마저 펴고 있다. 이런 시각은 중국의 수요 폭발로 전세계를 휩쓴 철강 등 원자재 대란을 유가에 직접 대입한 시각이기도 하다.

사실 미 에너지부는 2025년까지 석유 수요를 전망하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수요 급증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고, 그간 중국도 중동의 석유에 끊임없는 접근을 시도해왔다.

이 음모론은 미ㆍ중간 에너지 쟁탈전에 대한 심각성, 이에 따른 수요 폭증이 고유가를 불러왔다는 객관적 진단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스타워즈로 대변되는 미소간 무기경쟁이 소련을 무너뜨리고, 1997년 국제금융자본의 의도로 촉발된 외환위기가 동아시아 이머징 마켓을 무너뜨렸다는 식의 일방적 결론으로 치달을 위험성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음모론은 향후 점차 고갈되는 원유에 대한 강대국간의 쟁탈전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심장하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영섭 기자


입력시간 : 2004-05-25 21:15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