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갈등으로 얼룩진 치욕의 합중국

카트리나가 발가벗긴 '미국의 오늘'
분열·갈등으로 얼룩진 치욕의 합중국

11일 주민들이 모두 빠져나간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말 그대로 유령의 도시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할퀴고 지나간지 1주일이 지났지만 도심 대부분은 아직도 검붉은 물속에 잠겨 있었다.

일반 도로는 물론 전찻길도, 세워져 있는 차량들도 죽음의 늪에서 심하게 썩는 냄새만을 뿜어냈다. 무너진 둑을 타고 들어온 바닷물이 생활하수와 시신 부패에 따른 독성물질, 정유소 등에서 흘러나온 화학물질 등과 섞여 독수로 변했고, 고인 물은 햇볕을 받으면서 역한 냄새를 풍겨댔다.

한편에선 제방 복구와 침수지역 물 빼기 작업이 한창이었지만, 내륙 수송로의 동맥격인 미시시피강은 밀려드는 엄청난 토사와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평소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던 유람선과 내륙을 오가는 상선들이 닻을 내리던 미시시피 항구 주변에는 정박한 대형 구축함 위로 수색ㆍ구조용 헬리콥터들이 쉴새 없이 뜨고 내렸다.

뉴올리언스가 자랑하는 슈퍼 돔은 흰색 덮개로 반쯤 가려진 채 한쪽으로 기울어져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다.

최근 루이지애나주는 안전상의 이유로 슈퍼 돔을 무너뜨리는 방안마저 검토하는 등 이 지역 경제의 자긍심의 상징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괴물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위대한 미국’에서 ‘수치스러운 합중국’으로

이번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재앙은 과연 미국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최근 카트리나 피해 이재민 100만여명이 집을 떠나 미국 30개주로 분산 수용되는 ‘블랙 엑소더스’를 바라보는 미 국민들 사이에서는 조용한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공교롭게도 9ㆍ11사태 4주년을 맞는 시점과 맞물려 카트리나 재앙은 이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

미국은 9ㆍ11 직후 그 대응에 있어 신속하면서도 단결된 일치감을 보여줬다. 사건직후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됐고 재앙을 초래한 배후에 대한 응징도 즉각적이었다.

미 국민들은 하나같이 일치 단결했고 세계도 미국을 한 목소리로 응원했다. 그러나 이번 카트리나 재앙 앞에는 결코 ‘위대한 미국’은 없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휴가를 보내다 뒤늦게 복귀해 지도자로서의 자질까지 시비에 올랐고, 연방정부와 지방 정부간의 서로 겉도는 행정관료주의는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또 많은 주 방위군이 이라크전으로 빠져나가 이재민 구조가 늦어졌을 뿐 아니라 치안유지도 어려운 난맥상을 보였다. 미 전역에서는 초강대국 미국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느냐는 자조의 목소리와 함께 책임 공방이 끊이지 않았다.

카트리나는 ‘위대한 미국’을 분열과 갈등, 분노, 빈부격차 등 심각한 불협화음의 요소들로 가득 차있는 흉물스러운 ‘슈퍼 돔’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이런 미국을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수치스러운 합중국’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컬럼니스트 데이비드 부룩스는 칼럼에서 “카트리나로 넘친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화려한 외양 속에 가려졌던 미국의 벌거벗은 몸이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며 “카트리나로 미국이 당면한 위기는 다름 아닌 신뢰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제3세계도 아닌 미국이 ‘이럴 수 가’라는 탄식과 놀라움에 앞서 미국이란 국가 시스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미 국민들의 의식체계를 흔들어놓았다는 지적이다.

무관심이 예고된 인재를 불렀다

‘위대한 미국’에 대한 신뢰의 위기는 무관심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라크 전에 ‘올인’ 해온 미국은 눈이 가려진 채 이미 예고된 자연재해 위협에 한마디로 무관심 그 자체였다.

올해 초 미 육군은 뉴올리언스 제방보수비?2,700만달러를 요청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를 390만달러로 대폭 삭감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매달 56억달러를 전비로 쏟아 붓고 있다. 불신은 무관심을 불렀다.

홍수예방 사업용으로 연방정부에 요청한 7,800만달러는 그 절반도 못 미치는 3,000만달러로 삭감됐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루이지애나 주정부 관할인 뉴올리언스 제방위원회는 제방관리를 할 돈으로 카지노를 사들이는 등 방만한 경영을 했다.

연방정부나 주정부나 허리케인에 대한 위협을 직무유기 하듯 똑같이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카트리나 재앙은 이미 예고된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사고직후 “누구도 뉴올리언스 주변 둑이 무너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루이지애나 주립대와 방재 전문기관들은 수 차례에 걸쳐 재방 붕괴위험성을 경고했고, 2002년에는 뉴올리언스 지역신문에 대형 허리케인이 덮치는 상황을 가정한 5회 시리즈 물까지 연재됐다.

주민 20만명이 대피하지 못해 수천여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은 슈퍼 돔에 수용되며 도로차단으로 구호요원이 피해지역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시나리오는 이번 재난에서 그대로 현실화했다.

특히 뉴올리언스는 지난해 7월 가옥 50여만채가 부서지고 100여만명이 소개되는 비상사태를 가정한 ‘허리케인 팸’이라는 5일간의 재해대비 훈련을 실시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예고된 재난을 알고도 대응에 소홀했던 인재였다는 지적이다.

관료주의에 발목 잡힌 구호지원

미국의 분열은 둑 붕괴이후 더 심각하게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이 9월 6일 백악관 루즈벨트 룸에서 자선단체 대표들과 카트리나 피해복구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AP)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 정부와 민주당 출신 캐슬린 블랑코 주지사의 주정부는 카트리나 발생 후 당혹감 속에서 늑장대응에 나선 데다 그 책임과 주방위군의 통제권한 등을 둘러싸고 서로가 ‘비난게임’만을 벌이는 등 분열의 극치를 달렸다.

부시 대통령의 대응자세를 둘러싸고도 여론은 반반으로 갈렸고, 9ㆍ11사태 직후 빈 라덴을 적으로 규정했듯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을 비난의 대상을 찾기 위해 모두 눈이 벌개졌다.

수천명의 시민들이 물에 잠겨 죽고, 강간 약탈 난동이 난무하는 피해현장에서 이를 통제해야 할 치안ㆍ구호 시스템은 모두 정지된 채 미국은 관료주의에 발목 잡혀 슈퍼 돔 속에 꼼짝 없이 갇혀버린 셈이었다.

루이지애나 주정부는 수해지역의 치안을 위해 주 방위군의 통제권을 공유하자는 백악관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했다. 재해대책 통제권마저 빼앗기고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불신 때문이었다.

특히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이동병원은 피해현장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 생각 없는 보건부의 관료주의에 발이 묶여 미시시피주 농촌지역에서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또 허리케인 상륙시점인 멕시코만에 정박한 미 해군 강습 상륙함 바탄호는 6개의 수술실과 수백개의 병상, 10만갤런의 깨끗한 물을 싣고도 단 한명의 환자도 수용하지 못한 채 꼼짝하지 않았다.

분열과 불신으로 협력체계에 구멍이 뚫린 국가 시스템의 붕괴는 이같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가능성을 마비시키고 말았다.

‘미국 병(病)’, 흑백 갈등과 빈부 차의 심화

카트리나 재앙은 그 피해규모도 기록적이지만 미국 내 흑백과 빈부 갈등, 이라크전을 둘러싼 국민간 이견 등 미국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또 다른 9ㆍ11’로 기억될 전망이다.

9월 6일 군 수색팀이 보트와 헬기로 생존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다민족ㆍ다원화를 앞세운 ‘위대한 미국 정신’의 기치도 빈부의 격차가 인종의 차이로 굳어져버린 ‘카트리나 등식’ 아래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흑인인구가 70%가 되는 뉴올리언스에서는 이동수단이 없어 다가오는 재난을 알면서도 대피하지 못한 빈곤층들의 피해가 무엇보다 컸다.

피해자 대다수가 흑인들이었기 때문에 초기대응이 느렸다는 비난과 약탈 행위를 둘러싼 해석차이는 미국 사회에 아직도 치유되기 힘든 흑ㆍ백 갈등이 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칼럼니스트 조 클라인은 참상이 확대한 것은 미국의 분열, 그리고 ‘사회의 실종’ 때문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빈곤 퇴치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퍼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빈곤의 수렁에 빠지는 미국인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라고 지적杉?

그는 “미국, 특히 부시 정권에선 사회의 조직에서 부적격자를 쫓아내는 게 정책”이라며 “국가예산이 부자들을 위한 혜택으로 돌아가는 나라에선 재난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은 카트리나 재앙을 통해 내부적으로 분출된 인종갈등, 약탈과 강간 등 폭력,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란 ‘미국 병(病)’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5-09-15 10:32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