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끈할 수도, 무시할 수도…'갑갑'

최근 일본 국내외에서 일본인들의 혐한(嫌韓) 감정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지난 7월 발간된 ‘만화 혐한류’(야마노 샤링 지음)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에 대한 외국언론의 비판과 일본 보수ㆍ우익 언론의 반박 사태 등이 맞물려 수면 하에 감춰져 있던 뿌리깊은 혐한 감정이 다시 조명 받게 된 것이다.

“일본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는 식의 왜곡와 편견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매도한 만화 혐한류는 그 동안의 일본 우익 세력들의 혐한론을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랫동안 혐한을 주도해 온 우익들은 이 책의 출판을 전후해 인터넷 등을 통한 대대적인 ‘판매 공작’을 펼쳤다.

광고게재를 거부하는 등 철저한 무시로 일관한 일본의 주류언론을 ‘한국의 눈치만 보는 매국 언론’이라고 몰아붙이는 등 논쟁 만들기에도 성공해 결국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 등 외국 언론들의 우려와 비판의 기사가 잇따랐다. 특히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11월19일자 1면 톱으로 비판해 혐한류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일본에서 표면화하고 있는 혐한 혹은 혐중(嫌中) 감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경계감과 서양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라는 것이 이 기사의 골자다.

NYT는 “혐한류에 대해 일본 정부 언론 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으며, 심지어 산케이(産經) 신문은 ‘균형감을 잃지 않은 매우 이성적 작품’이라고 칭찬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ㆍ우익 신문인 산케이 신문은 11월28일자에서 “미국의 좌파 진보주의 신문인 NYT의 일본에 대한 부정적 논조가 최근 선명화, 노골화하고 있다”며 NYT의 ‘반일’적인 논조를 공격했다.

만화 혐한류에 대해서는 NYT가 책이 나오기까지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들은 결국 그늘 속에 숨어있던 혐한류를 표면화하는 역할을 했다.

혐한류는 인터넷을 타고

일본에서의 혐한 감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혐한을 부추기는 책들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출판돼 왔다. 만화 혐한류도 그런 책 중에 하나다. 혐한을 주도하는 우익세력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도 변화가 없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을 통해 활성화하고 있는 혐한의 양상은 당사국인 우리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인터넷 상의 혐한류 게시판을 살펴보자.

만화 '혐한류'.

“일본이 한국인들을 학살한 이유가 있다. 일본인은 청결한 것을 좋아하고 더러운 환경에서는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퀴벌레(한국인)들은 일본인 근처에서는 서식하지 말아주기 바란다”(ID:ZkwsXFb8), “일본이 한국을 합병하지 않았다면 재일조선인이 지금보다 훨씬 넘쳐 났을 것이다.

한국은 인도 정도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고,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ID:Dat2OOJK), “한국인들은 미키마우스와 스타워즈, 그리고 갖가지 종교의 기원이 자기들이라고 떠드는 놈들이다”(ID:Ae1YfXRp), “알면 알수록 싫어지는 역사 날조국 한국,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보채는 거지나라 북한”(ID:WKr+0A9), “한국인과 일을 같이 한 이후 인간 불신자가 됐고, ‘최악’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됐다”(ID:pT9TLu2B)….

일본의 대표적인 인터넷 익명 게시판인 ‘2채널’에서 떠돌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지독한 험담들이다. 이 곳에는 한국인들을 비하하고 모멸하며, 저주하는 글들이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다. 물론 험담만은 아니다. “한국인이 바보라고 매도하기 전에 우리나라 스스로 고쳐야 할 것이 없는지…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 너희들”(ID:wcUGgSlw)이라든지 “내 상사는 한국인이지만 자상하고 후배도 잘 챙겨주는데요”(ID:R+iq0cgn) 라는 등의 반론도 있다.

인터넷 시대로 접어든 후 졸지에 혐한류(嫌韓流)의 진앙지가 된 2채널은 800여개의 주제별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2채널 운영자측은 일련의 혐한류가 “우익세력의 여론 조작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 이를 억제하기 위해 게시판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직업적인 우익세력의 집요한 ‘혐한 활동’을 근절하는 데는 실패했다.

현재는 ‘한글’ ‘극동아시아 뉴스’ ‘기혼여성’ 등을 문패로 소수의 게시판에 혐한의 글들이 특히 몰리고 있다.

2채널뿐만이 아니다. ‘야후 재팬’이나 ‘라이브 도어’등의 포털사이트와 골수 혐한파 블로그를 통해서도 혐한류는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혐한류의 경향과 대처 방법








인터넷에서 상주하는 우익세력들은 한국 관련 뉴스와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등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등의 방법으로 혐한 감정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나름대로 한국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이들의 특징 중 하나. 이들의 주요 정보원이 한국인들이라는 점도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편견과 오류, 단편적인 사실 등을 자유자재로 요리해 그럴듯한 혐한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인터넷에서 혐한 감정이 분출되고 있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일본에도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적 특성상 이들의 속내가 인터넷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고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혐한을 조장하는 세력은 소수이며, 대다수 일본인들은 이 같은 활동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일본의 혐한류가 한국의 반일감정과 맞부딪혀 악순환이 계속되는 최근의 현상은 매우 우려할만한 대목임이 틀림없다. 일본사회가 우경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익 세력에 의한 혐한 메시지가 제도권의 정책 변화를 겨냥해 체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상황도 문제다.

특히 일본의 우익 같은 존재인 소수 한국인들에 의한 폭력적인 반일감정이 혐한론자를 확산시키고 있는 상황은 심각히 생각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 같은 행동은 한일관계의 악화를 바라는 일본 우익들만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인들의 과격한 반일 언행에 자극을 받은 일본 젊은이들이 인터넷 상에서 혐한 감정을 분출하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은 왜 일본을 상징하는 일장기를 불태우는가”, “고이즈미 총리를 불태우는 것을 보고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느꼈다”는 등 개인적인 소감을 근거로 한 혐한 글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과 방송 등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정보를 가감 없이 접하고 있는 이들은 “한국인들의 폭력적인 반일감정에 충격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간사이(関西) 지방의 한 대학에서 일본인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한국인 A 교수는 “겉으로는 드러내지는 않지만 만화 혐한류의 내용에 공감하는 학생이 적지 않은 것 같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혐한류가 일본의 주류 멘털리티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혐한류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분석을 토대로 한 한국측의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의도를 갖고 혐한과 반일을 부추기는 세력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식에 대해서도 양국 사회가 이성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