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새 어장 형성, 북극항로 개척 땐 물류혁명 불러

지구온난화에도 음지가 양지 되는 세상의 이치는 있다. 온도 상승이 다른 지역보다 2배 가량 빠른 북극이 대표적인 경우다.

지금 북극권에는 매장된 자원, 새로운 항로를 놓고 21세기 골드 러시가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적어도 북극에선 지구적 재앙이 아니라 개발과 돈을 버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북극의 얼음은 1960~70년대 두께가 평균 3.1㎙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1.8㎙로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빙하가 녹으면서 지난해 8월에는 쇄빙선이 아닌 러시아의 일반 선박이 북극점 항해에 성공했다.

과학자들의 우려대로 향후 100년간 평균온도가 섭씨 5.5도 오른다면 수백만 년 동안 지구의 거대한 흰 왕관이던 북극 빙하는 얇아지고 이마저 끝내 사라질 것이다.

어업전진기지 건설에 박차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따뜻해진 바닷물은 새로운 어종을 출현시켜 새로운 어장과 어획 시즌의 확대를 가져왔다.

북극에선 이에 맞춰 어업 전진기지 건설이 속속 진행되고, 그 뒤를 여행선이 따르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해안인 바렌츠 해에 면해 있는 러시아의 부동항 무르만스크는 약 3만 달러에 쇄빙선을 타고 북극을 항해하는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양지가 된 북극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는 에너지원을 비롯한 각종 지하자원의 탐색이다. 북극해에는 세계에서 발견되지 않은 자원의 최소 4분의 1이상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 최북단 거주지에 속하는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는 ‘21세기 클론디케’로 불린다. 캐나다 유콘강 유역에 있는 클론디케는 19세기 말 북미 골드 러시의 중심지였다.

100여 년이 지나 크발뢰위 섬에 위치한 인구 7,000여 명의 작은 항구도시 함메르페스트는 지금 세계 60여 국에서 검은 골드러시를 찾아 흘러온 투기꾼들로 붐빈다.

노르웨이는 북극 개발에 가장 앞서 있다. 2002년 헴메르페스트에 진출한 스노 화이트사는 가스 선적 항만시설과 140㎞의 파이프라인 건설을 마쳤다.

내년부터 시작해 30년간 채굴될 천연가스에서 이 회사는 59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게 된다. 중동의 난해한 오일 정치를 감안할 때 노르웨이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의 대안으로 선호되고 있다.

북극개발은 환경론자들의 거센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함메르페스트가 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쪽 바렌츠 해의 경우도 생태학상 중요하며 또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이를 수용해 2001년 해당 지역의 유전개발을 금지시켰으나 지금은 대부분 지역의 개발을 허용하고 있다. 늦었지만 캐나다 정부도 북극 개발에 가세해 북극에서 320㎞ 떨어진 지역에서 유전을 발견하는 성과를 냈다.

북극 개발의 최대 수혜국은 쉬톡만 가스전이 있는 러시아가 꼽힌다. 쉬톡만의 가스전은 세계 최대의 연안 가스전으로 매장량이 스노 화이트 가스전의 10배나 된다.

이 가스전 개발을 위한 560㎞의 파이프라인 건설이 혹독한 날씨 탓에 어려웠으나 상황은 달라졌다.

노르웨이·러시아·미국 등 엄청난 수혜국

미국의 철도 사업가 팻 브로는 지구온난화로 경이적인 돈을 벌고 있다. 그는 1997년 캐나다 정부에서 북극해에 인접한 마니토바주 처칠 항의 사용권한을 7달러에 사들였다.

당시 처칠 항은 연중 8개월간 얼음에 뒤덮인 황폐한 항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민영화 철도를 매입한 브로는 언젠가 이 항구가 유용해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빙하가 물러가자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금 처칠 항은 연중 10개월간 얼지 않아 북극해 건너 러시아로 항해하는 중요한 관문으로 부상했다.

브로는 덕분에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뉴욕타임스는 연간 수익규모를 1억 달러로 계산했다.

수혜자는 브로 뿐이 아니다. 북극의 얼음이 더 녹아 시베리아 북쪽으로 이어지는 북극항로가 열리면 유럽에서 극동아시아까지 운항거리가 지금보다 3분의 1 이상 줄어든다.

또 캐나다의 북극 군도를 경유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북서항로가 열릴 수 있다. 15세기 이래 미주대륙의 북부과 서부를 연결하는 이 상업항로를 찾는 것은 탐험가들의 꿈이었다.

북서 항로를 이용하면 북미 동부와 서부를 파나마 운하를 통해 항해하는 것보다 6,438㎞나 단축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30년 안에 이 북서항로가 쇄빙선 없이 운항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000년 여름철 일부 선박들이 이 항로 운항에 성공하자 빙하가 녹기 전에는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간에 벌어진 항로의 관할권 문제인데 이 지역에 길다란 해안선 있는 캐나다는 항로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 항로의 주된 사용자인 미국은 공해라며 맞서고 있다.

영토·영해분쟁 조짐

북극의 빙하시대에는 없던 영토와 영해 분쟁에는 현재 8개국이 관여돼 있다. 모두 북극 주변에 위치한 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이다.

러시아는 2001년 북극을 포함, 북극해의 거의 절반을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했다. 러시아는 또 덴마크와 35년째 해양 경계선 확정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덴마크 역시 북극을 포함해 그린란드 대륙붕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덴마크는 러시아 이외에 캐나다와 한스 아일랜드를 놓고 다투고 있다.

한스 아일랜드는 캐나다 북부 엘레스머러섬과 그린란드 사이 나레스 해협 중간에 있는 1.3㎢의 작은 무인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를 누가 보유하느냐에 따라 향후 주변 해협의 원유시굴권의 향배가 가려지기 때문에 양국은 군사적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대립하고 있다.

북극 관련 영토ㆍ영해 분쟁이 거듭되는 것은 북극권이 어떤 나라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를 판단해줄 국제조약도 존재하지 않는 탓이 크다.

국제해양법은 200해리까지 해당국의 EEZ을 인정하고 있으나, 미국은 이에 서명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분쟁해역에 대해 영역 분할을, 다른 국가들은 각국 해안선에 걸맞게 영역을 나누는 방안을 각기 주장하는 상황이다.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는 이런 모습을 영국의 시인 키플링이 19세기 서구의 아시아 식민지 쟁탈전을 빗댄 ‘The Great Game’을 인용해 표현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