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시대, '회사앱'이 나를 감시?KT, 회사앱 설치 거부한 근로자 1개월 정직 징계피죤, 노조원들 회사앱 설치 거부하자 출장비 지급 미뤄회사앱 관련 개인정보보호법 개선 움직임 일어

우리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한 스마트폰이 이제 업무에도 활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는 편리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일부 회사들이 자체 발행한 앱을 통해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게 되면서 직원들의 반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KT는 위치정보를 비롯한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한 직원이 회사앱 설치를 거부하자 징계를 내렸다. 피죤 또한 앱 설치를 하지 않은 직원들의 출장비 지급을 3개월째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근로자들이 회사앱 설치를 거부하는 큰 이유는 사측이 앱을 통해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은 사내에서 지급한 단말기에 앱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회사들은 개인 단말기에 앱을 다운받으라는 강요를 하고 있다.

회사앱, 과다한 개인정보 요구

지난해 10월, KT 업무지원단 소속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업무와 관련된 앱을 개인 스마트폰 단말기에 설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KT직원 이 모씨는 앱 설치과정에서 개인정보유출이 우려될 만한 내용을 다수 발견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사측에 문의했으나 공식적 답변을 듣지 못했다. 회사는 이 앱을 설치해야만 무선품질측정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앱 설치를 거부한 직원들은 업무를 할 수 있는 사업용측정폰지급을 요구했다. KT의 앱은 안드로이드폰에서만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사측에서는 아이폰과 폴더폰을 사용하는 직원들에게는 사업용측정폰을 지급했으나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는 직원들에게는 개인 휴대폰에 앱을 설치하라고 말했다. 안드로이드 사용자였던 이씨는 사업용측정폰을 지급받지 못한 채 앱 설치를 하지 않았고 회사는 이씨에게 1개월의 정직 명령을 내렸다. 이씨는 앱 설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린 회사를 상대로 정직 처분의 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피죤 또한 회사앱 설치 강요로 논란을 불러왔다. 피죤 노동조합 소속인 영업직원 다섯명은 20개월간의 자택대기 명령을 끝내고 지난 7월 회사에 복귀했다. 복귀 후 피죤 측은 영업사원의 위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AR시스템이라는 앱을 직원들의 개인 휴대폰 단말기에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피죤 직원들은 이미 지난 3월부터 AR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앱 설치를 거부하자 회사는 교통비를 포함한 영업활동비 지급을 거부했다. 피죤 노동조합의 김현승 지회장은 <주간한국>과의 통화에서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간의 영업활동비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지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앱을 통해 회사는 영업사원이 영업장을 옮겨 다니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선 영업사원들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어서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이 앱이 노조감시를 위해 악용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2013년 11월 40명에서 출발한 피죤 노조는 현재 여섯 명으로 축소됐다. 노조 측은 이에 대해 "회사가 대기발령으로 노조원들을 압박하면서 회유했기 때문에 노조 탈퇴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안 그래도 거셌던 노조 압박이 앱을 통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KT와 피죤 외에도 기업들의 앱 설치 강요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포스코가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하는 하청 근로자들에게 위치와 통화내역 열람이 가능한 앱을 설치하라고 지시해 논란을 불러온 적도 있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정책활동가는 "스마트폰 보급이 보편화된 이후로 회사에서 앱 설치를 요구하고 그 앱이 위치, 통화목록 등 너무 많은 사적인 정보를 요구해 부담을 느끼는 근로자들의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근무 편의를 위한 회사앱은 업무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피죤 측은 AR시스템 도입 후 직원들의 현장출퇴근이 가능해지면서 업무 능률이 향상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앱들이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를 사찰할 수 있다는 점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앱을 설치하려면 위치정보나 달력, 스케줄 등 개인정보가 담긴 앱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에 '승인'을 해야 한다는 것. 더 큰 문제는 설치하지 않은 근로자들에게 회사가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 16조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정보주체가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 외의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정보주체에게 재화 또는 서비스의 제공을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김진 변호사는 "이 조항에 따라 근로자 역시 개인정보 수집을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사의 압박에 저항할 수 있는 직원들은 많지 않다. 장여경 활동가는 "근로자 입장에선 회사가 지시하는 사항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 고민하다가 결국엔 앱 설치를 그냥 수용하는 노동자도 많다"고 밝혔다.

'을'에게 더 필요한 개인정보보호 권리

근로자들이 특히 거부감을 느끼는 건 사생활에 사용되는 개인 스마트폰 단말기에 앱을 설치하라는 지시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들은 별도의 업무용 단말기를 제공하지 않고 근로자들의 개인 휴대폰에다 앱을 설치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문제가 된 KT 사태에서도 아이폰과 폴더폰 이용자들에겐 업무용 단말기를 지급했지만 안드로이드 이용자들에겐 개인 휴대폰에 설치하라고 명령했다. 피죤 역시 앱 설치를 거부한 노조가 업무용 단말기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앱을 통한 회사의 근로자 감시와 이에 따른 갈등은 향후 더 촉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과 민주노총, 진보네트워크 등은 회사앱 설치와 관련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방안을 준비 중이다. 노사관계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처리의 침해에 대해선 고용노동부 장관이 신고 접수, 자료제출 요구와 검사, 시정조치, 고발 및 징계 권고를 소관하도록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은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나 노사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보호 관련 사안은 고용노동부가 개입하는 게 정확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현재는 앱 설치와 관련해 근로자 개개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나 앞으로는 단체의 동의를 받는 것으로 법안 수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김진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앱 설치에 대한 동의를 받는다면 근로자들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사가 합의를 하거나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앱 설치를 할 수 있게끔 법률 변경을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KT 직원인 이씨는 회사를 상대로 징계 처분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소송을 접수했다. 이씨는 현재 회사로 복귀해 업무에 임하고 있으며 KT 측은 이씨에게 업무용 단말기를 지급했다. 이씨의 법률 대리인인 김진 변호사는 "업무에 임하곤 있지만 앱 설치를 거부한 것에 대해 회사가 처벌로 내린 징계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향후 스마트폰을 포함한 전자기기를 통해 근로자의 근무 상황을 확인하는 '전자 노동 감시'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외 각국에서는 스마트폰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인정한 관련 법률이 마련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에 담긴 민감한 정보를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을'입장인 근로자들이 회사라는 '갑'에게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여경 활동가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분들에게 개인정보 보호 권리는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 지적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