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어벤저스 'CES 2020' 혁신을 이끌다

곧 다가올 미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0'이 지난 7~10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됐다. 올해 한국에서는 380여 곳의 기업들이 참가했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수치다. 국내 기업들의 산업혁신 의지 및 기술력이 돋보인 셈이다. 다만 이 같은 변화를 현실화하기 위한 과제를 마주한 자리이기도 했다. CES2020 속 국내 기업들의 모습을 들여 봤다.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이 CES2020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키노트 삼성 ‘착한 기술’

ICT 기술을 선도한 기업은 매해 CES의 키노트를 쥔다. 기조연설을 통해 미래를 제시하는 것인데, 한국 기업은 지난 10년 동안 6차례 마이크를 잡았다. 이 가운데 4번을 삼성전자가 나섰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3년 만인 올해 연단에 다시 올랐다. 특히 여러 연설 중 가장 상징성이 큰 프리쇼(Pre-Show), 첫 주자로 나서 의미를 더했다.

전 세계 미디어와 업계 관계자 등 2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CE부문장)은 향후 10년을 ‘경험의 시대’로 정의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결합으로 개인에게 보다 최적화된 신기술의 시대를 압축한 표현이라고 한다. 그는 “삼성의 기술은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궁극적 목표”라며 ‘착한 기술’을 강조했다.

경험의 시대 속 착한 기술의 상징은 삼성전자가 최초 공개한 지능형 컴퍼니언 로봇 ‘볼리’였다. 공 모양인 이 로봇은 사람을 쫓아다니며 명령에 따라 집안 곳곳을 모니터링한다. 스마트폰, TV 등 주요 스마트 기기와 연동해 다양한 홈 케어를 수행할 수 있다. 김현석 사장은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인간 중심 혁신 기술의 대표 사례”라고 볼리를 소개했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기술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주를 이뤘다. 특히 ‘T7 Touch’가 이번 CES에서 혁신상을 받아 눈길을 사로잡았다. 5세대 512Gb V낸드와 초고속 인터페이스 NVMe 컨트롤러를 탑재한 낸드 플래시 기반 외장형 저장장치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는 속도와 안정성이 기존보다 최소 2배 이상 뛰어나다.

일반 관객들의 주목을 받은 제품은 단연 ‘갤럭시 S10 라이트’와 ‘갤럭시 노트10 라이트’였다. 갤럭시 S11이 출시하기 이전 공백기를 메우기 위한 보급형 상품이지만,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 중인 삼성인 만큼 눈길이 많이 따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보급형 스마트폰이지만 프리미엄 기능을 대거 도입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고객사를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부스를 따로 마련, 슬라이드폰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품은 화면이 돌돌 말리는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다. 기기 안에 디스플레이 패널이 말려 있는데, 필요 시 버튼을 누르면 미끄러지듯 밖으로 나오며 화면이 커지는 형태로 설계된 것으로 전해졌다. 폴더블폰을 이을 혁신폰으로 관측된다.

LG전자는 CES2020 전시관 초입에 초대형 올레드 조형물을 설치했다.
TV 시장이 디스플레이 격전지

이른바 ‘QLED 전쟁’을 펼치는 삼성과 LG의 TV가 보란 듯 대규모 전시됐다. 국내에서 선공을 받은 삼성전자가 특히 해당 라인업을 대폭 강화했다. 글로벌 시장 공략의 주력 제품은 ‘더 세로’인데 CES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진화한 인공지능(AI) 기술을 입힌 2020년형 ‘QLED 8K’ 및 ‘마이크로 LED’를 적용한 ‘더 월’도 관람객들을 불렀다.

더 세로는 기존의 가로형 스크린과 달리 시청하는 콘텐츠에 따라 43형의 QLED 디스플레이를 가로와 세로로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 1000여점의 미술 작품을 스크린에 띄워 액자처럼 활용 가능한 ‘더 프레임’에 32형과 75형을 추가했다. 그레이스 돌란 삼성전자 미국법인 상무는 “모바일 기기와 동기화가 가능해 젊은 층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2020년형 ‘QLED 8K’는 화질뿐만 아니라 사운드에까지 새로운 AI 기술을 대거 적용했다. 화질을 업스케일링 해주는 ‘AI 퀀텀 프로세서’에 딥러닝 기술을 추가로 적용했다. 또한 베젤이 없는 ‘인피니티’ 디자인을 적용해 화면 몰입감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기존 제품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유려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88형과 150형 더 월 신제품이 이번 CES에서 처음 공개됐다. 더 월은 마이크로 LED를 적용한 모듈러 기반 스크린으로 뛰어난 화질은 물론 베젤, 사이즈, 화면비, 해상도 등에 제약이 없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 사장은 “AI 기반의 혁신적인 스크린을 ‘퀀텀닷 AI’로 규정해 스크린 혁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찍이 TV에 자신감을 보여 온 LG전자는 행사장 입구서부터 관람객들을 압도했다. 전시관 초입에 초대형 올레드 조형물을 설치했다. 조형물은 올레드 사이니지 200여 장을 이어 붙여 물결을 연출했다. 관람객들이 바다의 파도 아래를 걷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도록 한 것. 롤러블 올레드 TV 20여 대도 근방에 설치했다. TV가 음악에 맞춰 위아래로 움직이는 안무를 펼쳤다.

LG전자가 주력한 부분은 물론 ‘리얼 8K’를 중심으로 한 초고해상도 TV. 8K 올레드 TV 88형, 77형, LG시그니처 올레드8 뿐만 아니라 8K LCD TV인 75형 나노셀 8K 등이다. LG전자에 따르면 이들 모델 전부는 3300만개 이상의 화소 수를 자랑한다. CES를 주관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의 ‘8K UHD’ 인증 기준을 모두 충족한 점이 주요 무기다.

LG전자의 TV는 ‘벽밀착 디자인’도 함께 내세웠다. 화면, 구동부, 스피커 등을 포함한 TV전체가 벽에 완전히 밀착한 형태다. 기존 벽걸이 TV는 설치 시 벽과 TV 사이에 일정 두께만큼의 공간이 생기지만, 새로 선보인 벽밀착 디자인은 이를 보완했다. LG전자 관계자는 “백라이트가 필요 없는 올레드이기에 가능한 기술”이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게임 매니아들을 공략한 디스플레이도 이목을 사로잡았다. LG전자의 신제품들은 엔비디아의 ‘지싱크 호환’과 AMD의 ‘라데온 프리싱크’를 동시에 지원한다. 쉽게 말해 게임을 구동하는 외부 기기의 그래픽카드와 TV화면의 주사율을 일치시켰다는 뜻이다. 크기가 달라서 발생하는 화면 어긋남 등이 없으므로 최적의 게임 환경을 제공한다.

현대차는 개인용 비행체(PAV) ‘S-A1’을 최초 공개했다.
지상 대신 하늘, 현대차 ‘대박’

현대차가 ‘대박’을 터트렸다. 2009년 CES에 처음 참가한 이래 최다 인파를 불러 모았다고 한다. 자동차 회사지만 바퀴 4개 달린 차는 한 대도 전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 비행체를 내놓았다. 우버와 협력해 만든 개인용 비행체(PAV)의 최초 공개다. 앞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언급한 ‘하늘 나는 차, 플라잉카’의 실체가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번에 현대차가 전 세계에 첫 선을 보인 PAV ‘S-A1’은 날개 15m, 전장 10.7m 크기로 조종사 포함 총 5명 탑승이 가능하다. 활주로 없이도 비행이 가능하다. 전기 추진 수직이착륙 기능도 있다. 최대 약 100km를 비행할 수 있다. 최고 비행 속력은 290km/h, 이착륙 장소에서 승객이 타고 내리는 5분여 동안 재비행을 위한 고속 배터리 충전이 가능하다.

PAV가 놓인 현대차 부스에는 관람객은 물론 CNN 등 외신 취재진도 북적였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우버와의 협력 등을 토대로 인간의 이동을 자유롭게 할 새로운 기술 개발과 사업을 적극 추진해 왔다”며 “사람들의 이동의 한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그를 통해 보다 더욱 가치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끊임없이 혁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PAV를 필두로 한 미래도시 구현의 발상을 제시했다. 이번 CES에서 공개한 모빌리티 비전을 보면 현대차는 더 이상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는 인상을 남긴다. 현대차가 내놓은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비전’은 자율비행 시대를 만들어 도로 정체를 해소, 도시는 물론 인간의 생활 방식 변화를 목표로 뒀다.

현대차 관계자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혁신적 모빌리티 서비스 구현을 통해 현대차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변화한다”며 “UAM을 자동차를 넘어선 미래 핵심 사업으로 육성, 반세기 넘게 펼쳐온 도로 위에서의 도전을 이제 하늘 길로 확장해 인류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용만 “사회 지도자 반성해야”

이번 CES2020에는 국내 과학기술 분야와 재계를 대표하는 공공·이익단체 인사들도 대거 참관했다. 그러나 두 집단의 책임 있는 관계자들은 같은 듯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제2차관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사례가 그렇다. 장 차관은 각종 지원을 약속했지만, 박 회장은 정부 등에 반성부터 요구했다.

CES 참관을 통해 한국 기업의 뛰어난 역량을 확인했다고는 두 사람이 입을 모았다. 장 차관은 “세계 이목을 끈 국내 기업들의 뛰어난 성과가 자랑스럽다”며 “이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부분들을 잘 되새기고, 신규 사업기획과 기술전략 수립 등을 정부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도 “디스플레이, 모바일 등 여러 분야에서 삼성이 세계 1위를 한 기술들을 보니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들이 매서웠다. 그는 “중국 업체들도 굉장히 많던데 우리 기업들이 중국보다 존재감이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들이 있다”며 “규제의 틀 때문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박 회장은 정부 등에 반성을 요구했다. 그는 드론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가 (중국보다)드론도 훨씬 잘할 수 있다”며 “서울에서 규제개혁을 못하겠다는 논리를 가진 분들은 여기에 오면 설 땅이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들을 통해 새 미래가 열릴 텐데, 사회 지도자 분들이 관련한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지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