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의 ‘BitCoin: A Peer to Peer Electronic Cash System’(비트코인: 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9쪽짜리 논문에서 잉태된 가상 화폐는, 이듬해인 2009년 1월 4일 새벽 3시15분에 최초의 비트코인이 채굴되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다음해인 2010년 5월22일, 초기 비트코인 채굴자 가운데 한 명인 라스즐로 핸예츠는 1만 비트코인으로 파파존스 피자 두 판을 주문하면서 최초로 가상화폐가 사용되었다. 바야흐로 가상화폐가 처음으로 화폐로서의 기능을 실현한 날이다. 필자가 글을 쓰는 5월 5일 현재, 우리나라의 비트코인 가격은 대략 7천만원이니, 그는 한 판에 3천5백억원짜리 피자를 먹은 셈이다. 만약 피자 가게 주인이 아직도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다면 엄청난 자산가가 돼 있을 것이다.

최초의 암호 화폐 관련 논문의 제목처럼 기존 화폐가 가진 문제점에서 출발한 비트코인은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에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다. 정부의 통화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는 기존 화폐와 달리 발행량을 2100만개로 한정하는 등 기존 화폐가 가진 문제점들을 일부 해소하면서 보완 통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하더니 12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가상화폐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가상화폐에 관한 뉴스를 쏟아내고 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온갖 소문과 소식이 흘러넘친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중장년층은 또 그들대로, 지금이라도 투자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너도나도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었다. 급기야 가상화폐 한 종류의 거래 금액이 증권시장 전체 거래금액을 넘어서는 초유의 일조차 일어났다. 온 국민이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려워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최근 매일경제신문이 직장인 18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40.4%가 가상화폐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상화폐의 가격이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오르고 내리는 와중에 본업에 충실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투자자 가운데 80.7%는 업무 집중도 저하를 호소하고 있으며 회사 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의욕이 저하되었다는 응답자도 52.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조차 가상화폐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가상화폐를 대하는 시각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전세계에서 거래되고 있는 가상화폐의 종류가 5000여 종에 달하며 하루에도 10여 종의 새로운 가상화폐가 상장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필자는 자연스레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 파동을 떠올린다.

당시 해양 패권을 두고 대영제국과 경쟁하던 네덜란드는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돈이 넘쳐나서 투자할 곳을 물색하던 자본은 엉뚱하게도 튤립에 몰리게 된다. 그 결과 튤립의 가격이 하룻밤 사이에도 몇 배씩 오르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튤립 구근 투자에 뛰어들게 되면서 네덜란드의 튤립 사태는 본격화 된다. 당시 가장 비싼 튤립종이던 황제튤립 구근 하나는 2,500길더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이 금액으로는 돼지 8마리, 황소 4마리, 양 12마리, 밀 24톤, 와인 2통, 맥주 600리터, 버터 2톤, 치즈 450킬로그램, 은 술잔, 옷감 108킬로그램, 그리고 침대 세트까지 살 수 있었으며, 이는 당시 숙련된 장인의 10년 치 수입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1637년 2월의 어느 날, 끝없이 오르기만 할 것 같던 튤립 가격이 폭락하면서 온 나라를 집어삼킨 튤립의 거품도 사라지게 되었고 그 자리엔 피해자들의 절망과 황폐해진 경제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도구 자체에는 선악이 있을 리 없다. 칼은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또는 사람을 살찌우는 요리도구가 되기도 한다. 가상화폐 역시 사용하기에 따라 수많은 가능성과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한 종목의 가상화폐 채굴에만 소요되는 전기가 인구 4500만의 아르헨티나 전체에서 사용되는 전기를 넘어서는 사실 앞에서 가상화폐의 긍정적 기능 보다는 폐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상화폐를 활용한 다단계 금융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며 그 규모 또한 날로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우려할 만한 것은 사기 피해가 상대적으로 디지털 정보에 뒤처진 장년이나 노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개입 및 제도화를 시행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상화폐에 대한 태도는 접어두고서라도 이미 하나의 사회 현상이 돼 버린 상황에서 가상화폐와 그 투자를 둘러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태풍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바람의 방향을 살피며 몸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가상화폐의 광풍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디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온 몸을 뒤흔드는 광풍에서 벗어나 다시금 평온한 항해를 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 손연기 우송대 교수 프로필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후 미국 유타주립대 사회학과 학사, 텍사스A&M 대학교에서 석·박사(사회학) 학위취득,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학과장을 거쳐 한국정보문화센터에서 소장으로 근무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원장을 연임했으며, ICT폴리텍대학 학장,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원장도 역임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우송대학교 IT융합대학 교수와 한국정보통신보안윤리학회 회장 및 한국미디어네트워크의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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