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에서 ‘공공의 적’이 된 김범수 의장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카카오 모빌리티 독점적 지위 횡포 중단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파죽지세로 승승장구하던 카카오가 암초를 만났다. 불과 20여일 전인 8월말 합산 시가총액 114조원을 돌파했던 카카오 3형제(카카오·카카오뱅크·카카오게임즈)의 기업가치는 주가하락으로 무려 20조원 이상 줄어든 90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카카오그룹은 지난달 6일 카카오뱅크 상장으로 삼성, SK, LG, 현대차에 이어 5번째로 100조원 그룹에 등극했지만 한 달여 만에 밀려났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공정거래법 위반과 관련해 국회 증인 출석도 앞두고 있다. 잘 나가던 카카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문어발식 무분별 확장에 공정위 철퇴…상생방안 반응도 싸늘

발단은 빅테크(온라인 플랫폼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제재가 시작됐기 때문이지만 경쟁사인 네이버에 비해 카카오가 입은 타격이 훨씬 크다. 실제로 같은 기간 네이버 주가는 5~10% 하락하는 데 그쳤다. 카카오가 “그간의 성장방식을 전면 바꾸겠다”고 서둘러 입장문을 낸 데는 조직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큰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9월 초 더불어민주당은 핀테크 플랫폼 대상 규제를 강화할 의지를 밝힌 데 이어 금융당국은 온라인 금융 플랫폼의 기존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위반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여기까지는 네이버를 비롯한 다른 플랫폼도 함께 영향을 받는 사안이다.

문제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의장에 대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카카오, 케이큐브홀딩스 본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그동안 카카오가 제조, 유통, 금융은 물론 꽃, 간식, 샐러드 배달부터 미용실까지 골목상권 곳곳을 침해해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카카오 계열사는 올 상반기 기준 무려 158 개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흔히 ‘문어발 사업확장’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국내 대기업 계열사도 롯데 85개, 삼성 59개 수준으로 카카오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 이들 대기업과 달리 카카오는 철저히 내수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데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사업 모델이 소상공인 위주의 사업 영역에서 자영업자들에게 수수료를 받는 형태이기 때문에 원성이 커진 것이다. 최근 여론 악화의 시작은 지난달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스마트호출 요금을 대거 인상하면서부터였다. 카카오는 그동안 수수료나 이용료를 낮게 책정한 뒤 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면 슬그머니 올리는 행태를 반복해왔다가 이번에 철퇴를 맞은 것이다.

경쟁사 네이버, 독과점 우려 경계해 상생 경영 일찌감치 시작

반면 카카오와 함께 규제 대상으로 떠오른 네이버는 이런 부분에서는 훨씬 자유롭다. 네이버는 과거부터 1위 포털 사업자로서 다양한 독과점 우려에 맞닥뜨렸기 때문에 사업 확장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또 중소상공인과의 상생을 강조한 경영 방침을 계속 강조해왔다.

소상공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수수료 제로, 빠른 정산 등의 시스템으로 사업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며 플랫폼을 키워온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지난 7~10일 실시한 플랫폼 관련 국정감사 대비 관련 단체 의견 청취 설명회에서 네이버는 제외됐다.

규제와 비판의 칼날이 카카오를 관통하자 김범수 의장은 서둘러 상생방안을 내놨다. 김 의장은 지난 14일 “카카오와 모든 계열 회사들은 지난 10년간 추구해왔던 성장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장을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의 지적은 사회가 울리는 강력한 경종”이라며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상생안을 발표했다.

먼저 논란의 시발점이 됐던 카카오모빌리티 ‘스마트호출’은 서비스 자체를 폐지하기로 했다. 택시기사들의 큰 반발을 부른 프로멤버십 요금은 기존 9만9000원에서 3만9000원으로 인하한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불러온 꽃·간식·샐러드 배달중개 서비스도 중단한다. 기존 기업 고객의 불편을 감안해 점진적으로 철수 방안을 택했다.

논란의 타깃이 된 계열사와 서비스를 정리하고 해외사업 중심으로 대대적인 사업 구조 개편에 나선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계열사 통폐합이 예고되고 있다. 김 의장은 카카오 상생안을 통해 “기술과 사람이 만드는 더 나은 세상이라는 본질에 맞게 카카오와 파트너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김 의장이 두 자녀를 카카오 계열사인 케이큐브홀딩스에 재직시켰던 사실(현재 퇴사)과 카카오 그룹 내 경직된 조직문화 및 파벌 문화에 대한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에 비해 부풀려진 카카오의 기업가치와 위험 요인이 공개된 것이라 터질게 터졌다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한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는 “최근 몇 년 사이,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함께 크게 성장한 카카오가 규모에 맞는 내실을 다지는 데 겪고 있는 성장통으로 보인다”라며 “정부의 빅테크 규제 방침과 함께 카카오가 어떤 모델을 택할지 전환점이 되는 시점”이라고 전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