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순이 읽는 김억의 국토 문예 목판화 - 한라에서 백두까지 무한히 부르러운 오름·산상의 운평선… 남국 이색풍물 간직한 제주도 판타지 담아

한라산 영실계곡 202cm x 100cm 한지에 목판 2009
환상의 섬, 신비의 섬, 꿈의 섬이라 내세운다. 촉각이 섬세한 청춘언어에 아첨하기 위해 판타지, 미스터리, 드림랜드 등등의 외래어 코드를 남용하기도 한다. 제주 관광인프라를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의 천박성 덧칠과 토착성 훼손은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양해된다.

산림녹화 출중한 남녘

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두 구역으로 양분되는데 내지인은 북쪽 도시에 살기를 선호하고 외래인은 남쪽 도시 편력을 좋아한다. 한라산은 일단 중립을 지키지만 아무래도 남녘 기슭의 산림녹화가 출중한 쪽이다. 나는 역대 제주도 민선 도지사라든가 시장들의 제주 살림 솜씨가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끼는 쪽인데 예사롭게 한눈팔고 곁눈질로 흘끔거리는 듯 싶기 때문이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섬 주민들이야 워낙 입이 작은 편인 데 대해 육지 쪽의 목청은 우렁차기만 하니 어쩔거나.

제주도는 바다의 수평선, 해안의 지평선만 간직한 것이 아니다. 중산간 지대의 '오름'이라고 부르는 무한히 부드러운 구평선(丘平線), 그리고 산상의 운평선(雲平線)으로 아스라하기만 하다. 더구나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늘 율동을 치는데 초대 받은 이들은 물론 끼리끼리, 또는 저 혼자 찾아온 이에게도 무도회의 권유로 흠뻑 춤에 빠지게 하고야 만다. 호화 호텔의 서양 춤일 경우도 물론 있으나 제주 민요의 비나리 춤사위는 다른 곳에는 없는 정취로 외지인마저 춤꾼을 만든다. 남국의 이색 풍물은 그냥 눈요기, 맛보기로서는 느끼지도 못하고 제대로 스며들지도 않으니 바짝 껴안아 돌고 또 돌아야 한다.

차로와 올레의 제주

타고 다니는 차로의 제주와 걸어 다니는 올레의 제주는 어찌 다를까. 주상절리의 바다 폭포길, 침식 해안길만 아니라 중산간 마을들의 고샅길, 서덜길, 자드락길을 이냥저냥 하염없이 걸어보는 추억 만들기 서비스에도 충실히 응해야 한다. 황토라기보다는 흑토의 돌담길은 우줄우줄 춤을 추듯 오름들 위로 기어오르는데 한라산은 너무 아득하여 여전히 안개구름 속에 가려 있으니 나 자신을 그냥 실종시키는 황홀이 마련된다. 한라산은 저 혼자 우뚝 솟구쳐 오르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고 그 대신 옆으로 무한정의 벌판을 펼쳐 나아가게 하면서 그러한 터전을 확보해 주기 위해 마지못해 1천9백50미터의 높이를 허락하고 있는 그러한 산이다. 5백여 자식을 낳았다는 설문대할망의 다산성 창세설화를 이 산 속에서 실감해 보게 되는 까닭이다.

신령의 살림방, 영실

영실(靈室)…, 신령의 살림방에 들어 정신이 번쩍 났던 화가가 있고 그림이 있다. 목판화가 김억의 작품 <한라산 영실계곡>은 눈높이를 한껏 높이어 어찌 영실 기암(奇巖)에 영기가 서려 있는지 꼼꼼 살피고 거듭 훑어 필(feel)이 꽂힌 까다로운 화가의 깐깐한 감격영상을 보여준다.

육안·육필의 풍경사냥

제주도에 너무도 매료된 화가들이 몇 차례 스케치 여행을 거쳐 특별전시회를 갖는 기획을 마련했는데, 김억이 이에 참여하여 출품한 작품이다. 디지털카메라를 통해 온갖 풍경사냥을 해볼 수 있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카메라 만년필>로서는 도저히 채록해볼 도리가 없는 한라산을 그의 육안과 육필의 칼끝과 붓끝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천기를 누설하고 있는데 한라산이 왜 영산(靈山)이며 영봉인지 제주도가 어떠한 판타지와 드림을 지니고 있는지 이 작품이 대번에 체험케 해주니 함빡 서그럽다.



박태순 sosanb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