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는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 후, 1985년 솔로 1집부터 1990년 6집까지 발표하는 음반마다 히트 퍼레이드를 벌였던 당대 대중음악계의 블루칩이었다.

작은 체구에 폭발적인 가창력을 구사한 그녀는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했다. 특히 '히트곡 제조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양인자, 김희갑 콤비가 작사, 작곡한 1986년 3집 수록곡 '알고 싶어요'는 흥미로운 사연을 간직한 그녀의 빅히트곡이다.

이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촉촉하게 파고드는 근사한 멜로디와 사랑에 빠진 여성의 감성을 귀엽게 표현한 가사가 귀에 박혀오는 인상적인 노래다. 끊임없이 애정을 확인하고 싶은 여성 특유의 정서를 잘 담아낸 이 노래의 가사는 당대 최고의 가수로 떠오른 이선희의 애잔한 보컬에 얹혀 실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지금도 많은 대중이 애창하는 명곡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히트곡엔 먼저 부른 오리지널 가수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이선희가 오리지널 가수로 믿어 의심치 않을 이 노래 역시 실은 그녀 보다 2년 앞서 먼저 발표했던 오리지널 가수가 있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 노래는 남자 가수의 곡이었고 제목과 가사도 달랐다. 오리지널 가수는 누구일까? 80년대 대중에게 '눈동자', '아득히 먼 곳'으로 잘 알려진 이승재가 주인공이다. 원곡의 제목은 '가을나무 사이로'다.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가 1984년 발표된 이승재 독집에 수록된 노래라는 사실을 아는 대중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김희갑이 작사 작곡한 이 곡은 이승재 솔로 1집의 타이틀곡 '아득히 먼 곳'의 빅히트로 인해 사장된 비운의 노래다.

사실 작곡가 김희갑의 히트곡 중에는 오리지널 가수와 히트 가수가 공존하는 노래가 제법 있다. 혼성 보컬그룹 '한울타리'의 여성 보컬 출신인 최진희의 대표곡 '사랑의 미로'도 태원의 '너의 사랑'이 원곡이고 임희숙의 대표곡 '진정 난 몰랐네' 역시 김상희가 1967년에 먼저 발표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된 노래들이다.

제목과 가사가 다른 이승재의 오리지널 버전은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만큼이나 지금과 같은 만추의 계절 가을에 제격이다. 하지만 가을을 타는 남자의 마음을 노래한 오리지널 버전의 가사는 지극히 상투적이었다. 사장된 노래를 그냥 버리기에 아까웠던 작곡가 김희갑은 강변가요제 대상 이후 솔로로 독립해 정상의 가수로 등극한 이선희를 주목했다. 그래서 1986년 노래의 제목과 가사를 수정해 이선희에게 취입시켰고 그렇게 재탄생된 노래가 비로소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며 생명력을 획득했던 것.

'알고 싶어요'의 빅히트 원동력은 가사에 있다. 작사가 양인자와 재혼한 작곡가 김희갑은 결혼 전 마음에 두었던 그녀에게 자신이 쓴 평범한 가사를 다시 쓰도록 요청했다. 멜로디를 들어 본 양인자는 남성적 시각의 가사를 자산의 마음을 표현하듯 애틋한 가사로 둔갑시켰고 이선희의 애잔한 음색에 얹혀 명곡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결혼식장에 온 이선희에게 축가로 부탁한 노래가 '알고 싶어요'라는 점이다. 이는 수정된 노래가사가 결혼 자신들의 연애 감정을 반영한 노래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알고 싶어요'는 3집의 타이틀곡이 아님에도 KBS '가요 톱10' 5주 연속 1위를 하며 이선희에게 두 번째 골든 컵을 안겨주었고 한 달 방송 횟수 107회, MBC 라디오 음악 차트 15주 1위 기록을 창출하며 그해 골든디스크 상까지 안겨주었다. 이선희의 최대 매력은 파워풀한 가창력에 기인한다. 하지만 '알고 싶어요'에서 들려준 서정적인 그녀의 발라드 창법은 긴 여운을 안겨주며 보컬리스트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엄청난 히트곡답게 노래 가사는 한 때 '황진이가 소세양을 유혹하기 위해 쓴 한시'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1995년 조선일보에 '청사홍사'란 칼럼을 연재한 작가 이재운이 양인자의 양해를 얻어 가사를 한시로 작성해 발표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 노래는 대중가요에서 가사쓰기 작업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80년대 최고의 연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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