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안개가 낀 사려니 숲길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번영로 노선 버스를 타고 30여 분만에 사려니 숲길 입구에 다다랐다. 숲길 입구에는 몇몇 아주머니들이 김밥과 생수, 음료수, 캔맥주 등을 팔고 있다. 사려니 숲길에는 매점이나 식수가 없으므로 필요한 것은 여기서 구입해야 한다.

사려니 숲길은 본디 제주시 봉개동 비자림로에서 월든 삼거리를 거쳐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에 이르는 15km 남짓한 구간을 말한다. 그러나 근래 들어 월든 삼거리에서 사려니오름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통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에는 월든 삼거리에서 붉은오름으로 연결되는 길을 사려니 숲길이라고 일컫는다.

사려니는 살안이 또는 솔안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살이나 솔은 신성함을 의미한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해발고도 500~600m에 위치한 사려니 숲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산책로여서 노약자도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숲길로 들어서자 송이길이 반긴다. 여기서 송이는 버섯이 아니다. 화산의 분화로 분출되는 고체물질을 통틀어 화산쇄설물이라고 하는데, 송이는 이것의 일종으로 영어로는 스코리아(scoria)라고 한다. 제주도 송이는 1990년대 말 보존자원으로 분류되었고 2010년에는 대법원에서도 제주의 공공재산으로 인정함으로써 도외 반출이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11월 하순 단풍이 절정 이룰 듯

사려니 단풍은 11월 하순경 절정을 이룬다
제주 송이로 덮인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길을 걷노라니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그러나 사려니 숲길 전체가 송이길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시멘트 포장도로도 종종 나타나 다소 거슬리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폭우로 송이길이 쓸려갈 우려가 있는 경사로는 시멘트로 포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새의 지저귐을 벗 삼아 느릿느릿 걷는다. 온갖 수목이 우거져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다. 사려니 숲길 일원에서 가장 흔한 식물은 조릿대와 고사리류다.

벼과에 속하는 늘푸른 관목인 조릿대는 조리를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숲속 큰나무 아래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가는홍지네고사리와 고비를 비롯해 다양한 고사리류는 교래 일대의 식생을 잘 나타내주는 표본이다.

단풍나무도 제법 많이 우거져 있다. 11월 중순인데도 아직 극히 일부의 단풍나무만 붉게 물들어 있다. 11월 하순 무렵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루리라. 이밖에도 사려니 숲길 주변에는 78과 254종의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한다.

숲길 입구로부터 30분쯤 걸으면 천미천을 건넌다. 천미천은 해발 1400m의 어후오름에서 발원하여 물장올, 물찻오름, 부소오름, 개오름 등을 지나 표선면 하천리에 이르러 바다로 흘러 든다. 길이가 25.7km로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천미천 징검다리를 건너니 참꽃나무 숲이 반긴다. 5월이면 붉게 핀 참꽃을 만날 수 있으리라.

수종이 다양한 치유와 명상의 숲
근심걱정 떨쳐버리고 명상에…

다시 1시간 남짓 걸으면 물찻오름 입구에 다다른다. 해발 717미터인 물찻오름 정상의 화구호에는 붕어, 개구리, 물뱀 등이 서식해 특이하다. 그러나 2010년 12월까지였던 휴식년제가 1년 더 연장되어 갈 수 없다. 아마 2011년 12월이면 또다시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숲길 입구에서 약 2시간 후 '치유와 명상의 숲' 입구에 이르렀다. 사려니 숲길에서 벗어나 오른쪽 길로 간다. 나무데크가 깔린 길 주변에 수풀이 울창하다. 정말로 근심걱정이 치유될 것만 같고 명상에 젖어 걷기에 그만인 숲길이다. 그러나 불과 삼사 분만에 월든 삼거리에서 사려니 숲길과 다시 만나니 마냥 아쉽다.

월든 삼거리 일원에는 울창한 삼나무 숲이 펼쳐진다. 사려니 숲길 곳곳에 삼나무 숲이 우거져 있지만 이곳과 사려니 숲길이 끝나는 붉은오름 주변의 삼나무 숲이 가장 넓고 빽빽하다. 물론 사려니오름 일원의 삼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이 가장 장관을 이루지만 갈 수 없는 곳이니 어쩌랴.

사려니 숲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제주의 장묘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무덤이 몇 기 있다. 제주의 무덤에는 돌로 쌓은 산담을 두르는 것이 특징이다. 산담을 두르지 않으면 방목하던 말과 소가 들어와 풀을 뜯고 묘를 허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혼의 바깥출입을 위해 60cm 정도의 길을 터주는데 이를 신문(神門)이라고 한다.

사려니 숲길 주변에는 고사리류가 많이 분포한다
숲길을 더듬은 지 3시간 20분, 10km 남짓한 사려니 숲길이 붉은오름 입구에서 안녕을 고한다. 눈꽃으로 치장한 설경도 멋지다니 겨울에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접는다.

# 찾아가는 길
왕소금 간에 참기름 한방울… 성게미역국 '깔끔'

제주시 광양4거리에서 성판악-서귀포 방면 5·16(1131번)도로를 달리다가 교래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 비자림로(1112번 도로)로 1.1km쯤 가면 사려니 숲길 입구에 닿는다.

대중교통은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4회 운행하는 성산부두 및 성읍 방면 번영로노선 버스를 타고 사려니 입구에서 내린다. 붉은오름에서 제주시로 돌아오는 버스는 약 20분 간격으로 운행.

# 맛있는 집
서귀포 향해 달리다 비자림로로 1.1km

조릿대 군락이 넓게 펼쳐진다
제주시 연동(신제주)의 유리네(064-748-0890)는 다양한 제주 향토음식을 내는 집으로 특히 성게미역국이 인기 있다. 싱싱하고 기름진 성게와 부드럽고 싱싱한 미역을 팔팔 끓는 육수에 함께 넣고 한소끔 끓여내는데 왕소금으로 간을 하고 손님상에 나갈 때 참기름을 몇 방울 넣는다.

성게 자체가 고소해 조미료 등으로 따로 맛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짭짤한 젓갈류와 싱싱한 파래무침이나 톳나물무침 등이 곁들여 더욱 입맛을 돋운다.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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