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종택과 고산정.(위) 퇴계종택과 육사문학관.
퇴계 이황 선생의 오솔길과 예던 길(노닐던 길)을 되살리려는 문화운동이 진즉부터 일어나고 있다. 청량산을 휘돌아 내려오는 낙동강 본류와 국망봉-영지산 발원의 분강(汾江) 지류가 합수하는 도산(陶山) 일대가 그 산책로이자 생태 탐방로의 중심이 된다. 1000원짜리 대한민국 지폐는 앞면에 퇴계 초상화와 함께 뒷면에 도산서원 일대 그림을 삽입해놓고 있으나, 화폐 속의 산수화를 너무 믿고 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종이 돈 속으로 수묵화가 잘못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으로 화폐 디자인에 어수룩한 데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2009년 3월 '국토백경'이라는 주제를 내세워 김억 목판화전이 파주 헤이리에서 열렸을 적에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실제로는 100편도 넘는 국토의 명장소 명장면 목판화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단연 눈길을 끄는 일련의 작품들이 있었다. 퇴계 예던 길을 추적한 목판화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로 436.6cm에 세로 52.0cm가 되는 '도산구곡'은 그냥 대작이 아니라 거대 압권(壓卷)이었다.

퇴계는 '도산구곡'의 한시를 짓고 '도산십이곡'의 시조를 남겼으며 92편의 시 묶음집 '도산잡영(雜詠)'을 엮었는데 이러한 글들은 '퇴계집' 속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갈무리할 방도가 없는 것이 바로 퇴계가 평생 공업으로 조성하여 한껏 누렸던 도산 산림문화경관 그 자체이다. 물론 성역화 사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산서당-도산서원을 비롯, 퇴계 종택이라든가 이육사 문학관, 농암 종택, 고산정 등이 부분적으로 복원되고 새로이 조성되기는 했으나 이는 퇴계 당대의 문화 환경을 되살리려는 노력보다는 오늘의 문화 욕구 필요성에 의해서인 것이라 보게 된다. 그리하여 조선산수에 관심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는 소망하는 바가 있게 되고 새로운 과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퇴계 산수문화(山水文化) 제대로 알기'는 어려운 테마이다. 워낙 교통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에 현지 답사로서 이를 체감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체념하는 쪽들이 많을 지경이기도 했다. 김억 목판화 '도산구곡' 메시지가 대단히 놀랍고 깊은 울림의 충격을 주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오늘의 인공호수 안동호 일대의 경관에서 '도산구곡'의 문화 원형을 찾아내어 한껏 확대하고 아울러 촘촘히 밑 그림들을 채워놓고 있다. 청량산 줄기와 국망봉 줄기, 낙동강 본류와 분강 지류가 서로 맞물려 어울리고 춤사위를 벌이는 '퇴계 산수'를 극진하게 구상화했다.

'도산구곡' 목판화는 국토의 잃어버린 공간 문화에 대한 환기 못지않게 국토의 '잃어버린 시간'을 강력히 기억시키려 한다. 퇴계의 시조는 읊기를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그치지 아니하는고" 하였는데, 만고불변(청산)과 변화지속(유속)의 순환 음악을 함께 듣는 퇴계 산수를 모처럼 김억 목판화를 통해 누린다. 공간의 해방, 시간의 해방에 관한 질문은 결국 현대문명 속의 자아 공간, 자아 시간의 알리바이 유무에 관한 탐구가 되기도 할 터이다.

도산구곡 436.6x52.0㎝ 한지에 목판 에디션12 2005년작
'온갖 관념투성이 미술로부터 뛰쳐나와 국토 속으로 들어갔다'라는 말을 건넨 적이 있는데, 김억 국토 문예의 새로운 지평이 더욱 또렷하게 열려 나가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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