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400m에 위치한 울란바토르는 유목민의 흔적이 서려 있는 몽골 제1의 도시다. 도시의 관문인 '사강하다가'(흰 대문)를 지나면 울란바토르는 '몽골'스런 자태로 속살을 드러낸다. 변두리 외곽 길목에는 전통가옥 '게르'가 군데군데 들어서 있다. 양 가죽으로 만든 둥근 이동 가옥은 오래된 구식 난로처럼 생겼다. 게르 앞에 자가용들이 주차돼 있는 게 다소 이색적인 모습이다.
울란바토르에는 10월초만 되면 성급하게 첫 눈이 내린다. 12월 기온은 영하 30도까지 곤두박질친다. 밤새 불어 닥친 눈보라는 도시를 감싼 4개의 검은 봉우리를 신령스럽게 뒤바꿔 놓고는 한다. 울란바토르의 전체 면적은 서울의 두 배 정도. 하지만 울란바토르의 도심은 그리 넓지 않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거리
도심 북서쪽의 간당 사원은 몽골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사회주의 정권하에서도 유일하게 종교 활동을 보장받던 곳이다. 사원 내부에는 만나는 귀여운 동자승들과는 대조적으로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인 미그지드 장라이시그 불상이 서 있다. 무려 20톤 규모이며 사원의 벽 전체는 수백개의 좌불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에 관심이 높다. 한국어 학원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고 젊은층 사이에서는 영어 대신 한국어가 오히려 통한다. 이곳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는 의미로 '솔롱거스'라고 부르는데 그 기원이 예전 몽골에 왔던 한국 여인들의 색동저고리에서 비롯됐다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다. 가만히 보면 그들이 즐겨 입는 의상이 우리네 두루마기와도 많이 닮았다. '델'이라고 불리는 전통 의상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겉옷에 옷고름 대신 단추를 달아놓은 형상이며 소매는 손이 감춰질 정도로 길다.
울란바토르의 '심장'은 스흐바타르 광장이다. 1921년 울란바토르의 중심지인 이곳에서 '혁명의 영웅'인 담디니 스흐바타르가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선언했다. 광장 중앙에는 말을 타고 달리는 스흐바타르 동상이 서 있는데 혁명의 상징인 이곳에서 최근에는 각종 문화 행사와 락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광장 인근에는 몽골의 주요 건물들이 자리잡았다. 국회의사당, 문화궁전, 국립오페라 극장, 자연사·역사 박물관 등이 광장을 둘러싸고 동서남북을 채우고 있다.
설경과 고원의 광야, 테레지
연기 자욱한 도심을 벗어나 남쪽 톨강을 건너면 오브뜨산 위에 자이승 기념관이 위치했다. 무명용사를 기념하기 위해 언덕 위에 세운 대형 기념비로 울란바토르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탑 위 신단에 돌을 올려놓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자이승 기념비탑에서 4개의 봉우리 바이즈르흐, 성균헤르타, 보크트, 칭기스테 사이에 보자기처럼 싸인 울란바토르를 내려다보면고원 도시의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초원지대의 게르 가옥과 양, 말을 타고 다니는 유목민들도 차창을 스쳐 지난다. 풍장을 끝낸 무덤들도 모래산 중턱을 지키고 있다. 테레지에서는 말을 타고 고원을 질주하거나 하깅하르 노르 호수를 끼고 있는 헨티산맥까지 트레킹을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이방인에게는 색다르고 짜릿한 전율로 다가선다.
환전·전화=화폐 단위는 투르그. 호텔에서 환전이 가능하나 환전골목인 나이머사르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다. 규모가 큰 상점에서는 달러가 통용된다. 울란바토르에서는 길거리에서 사설 전화기를 이용하는 것도 독특한 체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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