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지배하는 유전자

"자살 유전율 50%" 소설가 헤밍웨이 전 가족 자살로 점철된 사례 있어

신경증적·위험 회피 새로운 자극 추구 성향 기질 가족력 영향 높아

기질-유전자 관계 규명 최근 '분자행동학' 정립 걸음마 학문 수준

"특정 유전자가 모든 것 결정하진 않아"

꽃미남, 꽃미녀를 가리켜 흔히 '우월한 유전자'라 칭한다. 큰 키에 조막만한 얼굴, 오뚝한 콧날, 부리부리한 눈매 등 누가 봐도 부러운 생물학적 조건을 두루 타고난 것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유전자는 비단 신체적 특질만 결정짓지 않는다.

신체발부수지부모, 부모는 유전자를 통해 여러가지 신체적 특징을 물려준다. 그런데 유전자에는 정신적 특성정보도 담겨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몸과 정신 모두를 주는 것이다.
정신적 특질, 즉 성향이나 행동양식 역시 유전자의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후천적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지난 2001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연구 결과가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아침형 인간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유전학자 잉후이 푸 박사팀의 이 연구 결과는 아침형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노력했으나 실패의 쓴 잔을 마셔야 했던 수많은 올빼미족과 늦잠꾸러기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당시 푸 박사팀은 남들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가족성 수면주기 전진 증후군(FASPS)'을 앓고 있는 가족들의 유전자 샘플을 분석했다. 그 결과, 수면 및 기상 시기를 조절하는 체내 생체시계인 활동일주기(circadian rhythm)의 조절에 관여하는 DEC2 유전자가 변형된 것을 발견했다.

이 유전자가 변형된 한 모녀는 평균 수면시간이 일반인의 8시간보다 짧은 6.25시간에 불과했다. 유전자 변형이 없었던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정상적으로 평균 8시간의 수면을 취했다.

동물실험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변형된 DEC2 유전자를 주입한 쥐는 정상 쥐보다 1시간, 초파리는 2시간 적게 잠을 잤다. 이에 연구팀은 DEC2 유전자가 변형되면 평균 수면 시간이 짧아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인드 컨트롤, 선천적으로 어떤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공격적 성향이 강하다고 누구나 사이코패스가 되지는 않는다.
이 연구결과만 놓고 보면 결국 아침형 인간은 유전자적 산물이며 노력에 의해 도달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인체의 신비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다. 생체시계 같은 체내의 생물학적 구조물뿐만 아니라 정신적 특질까지 온통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연구들이 속속 도출되고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

지난해 12월호에 게재된 '우리가 모르는 웃음의 미학' 취재 당시 한국발달심리학회장 장휘숙 박사는 이렇게 말했었다.

"웃음은 다른 기질적 특성과 함께 선천성을 지니고 있어요. 개인차가 크죠. 명확히 타고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개연성이 매우 높은 게 사실입니다."

이 말은 성격을 특징짓는 기본 요건인 기질은 선천적ㆍ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일생 동안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충북대 심리학과 김혜리 교수도 이에 동의한다.

베르테르 효과, 가족 중 자살 사망자가 있을 때 나머지 가족의 자살 확률은 일반 가정보다 2~3배 더 높다.
"기질이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는 애당초 타고나는 것입니다. 후천적으로 학습된 결과가 아니에요. 이런 성향은 사회화가 덜 이루어진 어린 아이들에게서 특히 뚜렷한데, 혼자서 조용히 놀기 좋아하는 아이와 남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일찍부터 구분됩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는 유치원 어린이들의 놀이 유형을 관찰한 미국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 교수의 연구에서 확인됐다. 심지어 미국 국립아동건강발달연구소의 발달영장류학자인 스티븐 수오미 박사가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도 인간과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김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긍정적이고 행복한 감정을 많이 느끼는 성향과 자주 짜증을 내는 까다로운 성향 또한 부모의 양육 방식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기 자체의 기질 차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적 기질에 대한 근거를 생물학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심리학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는 유전자, 호르몬, 뇌 구조 등 다양한 분야, 다양한 학설이 동원된다. 각각의 형질은 부모에서 자식에게로 전이되며 체내 모든 구조뿐만 아니라 행동양식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게 핵심 요지다.

이를 지지하는 유전자결정론자들 가운데 혹자는 '인간의 복잡 미묘한 정서, 행동양식은 모두 유전자의 산물이며 생명체의 탄생은 곧 유전자의 탄생'이라 단언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자살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자살도 유전이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은 자살 충동에 취약한 생물학적 특성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울러 가족력이 있을 때 자살률이 더 높아진다고 본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김병수 교수는 "자살이 유전될 확률은 40~50%에 이른다"며 "자살에 의해 사망에 이른 경우는 물론 자살시도, 자살충동 등이 모두 포함된 비율이 이 정도이고 사망에 이른 비율만 따지면 이보다 훨씬 높다"고 밝혔다.

이 같은 유전율은 기본적으로 가계도 조사와 일란성 쌍생아 대상 연구에 기반한다. 자살한 가족이 있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살 확률 차이,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일란성 쌍생아 중 한 명이 자살했을 때 다른 한 명도 자살할 확률 등을 일일이 확인해 통계화 시킨 결과다.

"가족 중 자살 사망자가 있을 때는 나머지 가족의 자살 확률은 일반 가정보다 2~3배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어요. 심리적 충격이라는 요인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유전적 부분이 상당 부분 기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본인은 물론 부모, 형제 등 전 가계의 역사가 자살로 점철된 사례가 결코 우연만은 아닌 셈이다.

자살충동과 같은 기질은 왜 유전되는 걸까. 지난 1996년 영국 브리스틀대학 연구팀은 뇌 속 5-HT(5-hydroxytrptamine)라는 화학물질을 자살의 원흉으로 지목했다. 자살 시도자의 뇌에는 감정 수위를 조절하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의 생성을 돕는 5-HT가 결핍돼 있었다는 것. 또한 인간에게는 5-HT의 분비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음을 밝혀내고 이 유전자를 자살 유전자로 지목했다.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은 ACP1이라는 유전자의 변이를, 캐나다 중독ㆍ정신건강센터(CAMH) 연구팀은 뇌 유래 신경 영양인자(BDNF)의 메티오닌(methionine) 쌍을 자살 유발용의자로 꼽았다. 부모로부터 이런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의 자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자살 유전자와 관련한 연구들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특정한 하나의 유전자를 자살 유발 유전자로 볼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단지 자살과 유전자의 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유의미한 결과로 보면 족하다는 설명이다.

"지금껏 밝혀진 유전학적 근거 외에도 추정치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최근에는 모성을 관장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자살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죠. 자살 사망자의 옥시토신 레벨이 떨어진 것을 확인한 뒤 옥시토신과 관련된 여러 유전자를 탐구, 하나의 변이를 파악해냈어요."

말하자면 자살 충동과 같은 하나의 기질적 특성은 유전적 요인에 근거하지만 유전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만에 하나 단일 자살충동유전자가 발견된다고 해도 결론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유전자가 발현되기까지의 후천적 과정은 너무나 복잡다단하니까 말이다.

당연히 이것은 자살에 한정되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기질이 마찬가지다. 김혜리 교수는 이렇게 전했다.

"선천적으로 어떤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격적 성향이 강하다고 누구나 조직폭력배와 사이코패스가 되지는 않아요. 스트레스가 적고 정서적으로 편안한 환경에서 자란다면 운동이나 한층 성취적인 일에 몰두해 공격성을 긍정적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죠."

한 마디로 인간의 문제를 한 두가지 요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인 견해다. 미국의 유전학자 리처드 르원틴 박사는 자신의 저서 '삼중나선'에서 이처럼 표현했다.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와 유전자가 발현되는 몸,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환경이라는 세 가지 요소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유전자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며 그 영향을 다른 요소들과 분리시키는 것은 지극히 힘들다.'

신경증적 성향 유전율

이 시점에서 특히 유전율이 높다고 알려진 기질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증이 들 것이다.

먼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기질을 측정할 때 전문가들은 몇 가지 분류 도구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NEO(NEO Personality Inventory)와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bentory)다. 두 도구는 각각 5가지와 7가지 차원으로 기질을 나누는데 240~250개 문항 중 해당되는 항목에 체크한 것을 바탕으로 개인의 기질을 파악한다.

가령, NEO에서는 신경증적 성향(neuroticism), 외향적 성향(extraversion), 경험에 대한 개방적 성향(openness to experience), 쾌활한 성향(agreeableness), 도덕적 성향(conscience)으로 기질을 구분한다. 이 중 가장 연구가 활발한 신경증적 경향은 스트레스에 약하고, 그로 인해 불안?우울 등 부정적 정서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김병수 교수에 따르면 이런 신경증적 성향은 앞서 언급한 세로토닌 결핍과 유관하며 유전율이 30~60%로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세로토닌 결핍 시 공격성이 증가하는 탓이다.

"TCI의 한 차원에 속하는 위험 회피(harm avoidance) 성향은 세로토닌, 새로운 자극 추구(novelty-seeking) 성향은 도파민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신경증적 성향과 함께 유전율이 높은 기질로 알려져 있죠."

세 가지 기질은 공교롭게도 모두 '중독'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방편의 하나로, 또한 잠시의 지루함도 참지 못하고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지속적 흥분을 갈망하기 때문에 알코올, 약물 등과 접촉하기 쉽다는 분석이다.

본성과 反본성의 조화

한편, 정신적 질환 가운데 가장 유전율이 높은 것은 조울증이다. 전문가들은 조울증의 유전율을 최대 70%로 보고 있다. 그 다음은 우울증으로 유전율이 30~50% 정도다.

이렇게 유전율이 높다면 혹시 유전자 검사로 미리 질병을 예측할 수도 있지 않을까. 200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유전학자 시드니 브레너 박사는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유전자로 질병을 예측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검사에서 60%의 발병 가능성이 있다는 답을 받았을 때 그 당사자는 자신이 60%군에 속하는지 나머지 40%군에 속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김 교수 역시 "개인의 성향과 정신질환의 유전 가능성을 정확히 몇 퍼센트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며 "위의 결과들은 학계에서 도출한 산술적인 통계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이미 정해진 기질에 얼마나 잘 대응해 나갈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몸속의 유전자가 모두 '우월한 유전자'만은 아닐 것이니까 말이다. 이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약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 교수의 말이다.

"우선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잘 파악해야 해요. 좋지 않은 기질에도 분명 장점은 있죠. 본성에 근거한 그 장점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신경증적 성향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이 기질은 얼핏 '열등한 유전자'의 산물로 보이지만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을 봤을 때 진화론상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신경증적 성향의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약하고 우울, 불안을 쉽게 느끼는 반면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미리 대비하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적다. 사회적으로 특별한 문제에 봉착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누구보다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많은 전문가들은 반(反)본성적인 성향도 의식적으로 키워갈 필요가 있다고 당부한다. 내향적 사람이라면 외향성을 습득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 위해 연습하는 등 스스로 인지?행동구조를 변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하나의 특정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기질과 유전자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몫이에요.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개인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적 연대입니다."

결과적으로 현재로서는 유전자의 결정 범위를 명확히 단정할 수 없다. 정확히 답할 수 있는 과학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도호쿠대학의 행동유전학자 야마모토 다이스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행동은 어디까지 유전될까?'를 통해 현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직 우리는 인간에 대해 밝혀내지 못한 것이 더 많다. 유전자 수준에서 행동원리를 밝혀내는 분자행동학이 학문으로 정립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인간의 행위와 취향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유전되고 DNA에 각인돼 있는지 이제야 조금씩 파악해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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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 기자 ps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