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는 '음악 산업'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했던 한국대중음악의 볼륨이 확대된 사상 최대의 황금기였다. 1992년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구심점이자 분기점이었다. 랩 댄스음악이 주류 대중음악계를 순식간에 재편한 뜨거운 열풍이 몰아쳤던 당시에도 감성적인 웰 메이드 곡의 생존 가능성을 입증했던 노래들이 제법 있었다.

1994년 김광진과 박용준으로 구성된 남성듀오 <더 클래식>의 1집 타이틀 곡 '마법의 성'은 랩과 댄스 일색이었던 당대 대중음악시장에서 감성적인 멜로디와 동화 같은 가사로 중학교 교과서에까지 소개된 명곡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희망적인 가사가 마치 '어른을 위한 동요' 같았다.

어른들을 위한 동요

곡을 만들고 노래한 싱어송라이터 김광진은 당시 인기차트 1위에 올랐지만 TV출연을 고사해 애니메이션을 배경으로 노래가 나가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비주얼 음악에 열광했던 신세대는 물론이고 남녀노소를 초월한 폭넓은 대중은 이 노래를 들으며 잃어버렸던 자신들의 가슴 깊은 곳에 잠재된 '동심'을 자각하며 감동했다.

중학생 때부터 가수의 꿈을 품었던 김광진은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에서는 모두 1차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연세대학교 100주년 가요제에서는 2등 <동물원>의 김창기, 3등 안치환을 제치고 1등을 2번이나 차지했다. 이후 외국유학을 다녀 온 후 1992년 독집을 발표하며 가수의 꿈을 이뤘지만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작곡가로 먼저 명성을 날렸다. 1991년 한동준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사랑의 서약'을 시작으로 이승환의 '내게' '덩크슛',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등은 모두 그의 작품들이다. 최근 슈퍼스타K3에서 준우승한 <버스커 버스커>가 리메이크해 음원시장을 올킬했던 '동경소녀'와 기막힌 사연으로 많은 대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편지'도 그가 빚어낸 주옥같은 마법의 노래들이다.

1994년 발표된 <더 클래식>의 1집은 김광진의 싱어송라이팅 능력이 빛났던 첫 앨범이다. 팀 이름이 <더 클래식>이듯 이 앨범은 비올라, 첼로, 바이올린 같은 클래식 악기들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더욱 부각시켰다. 재킷도 근사했지만 12곡이 수록된 이 음반을 명반으로 인증서를 발부하기에 머뭇거리게 한다. 재치 넘치는 '오비이락'과 앨범 제작자 이승환의 'Jerry Jerry go go'같은 해학적이고 리듬감 넘치는 경쾌한 노래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전혀 다름 질감의 노래들이 혼재했던 앨범은 의욕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이 부족해 음악적 완성도에서는 산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유재하에 필적할 감성을 지닌 김광진은 경쾌한 리듬감에 해학적 재능까지 담보한 미완의 대기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30분만에 명곡 탄생

타이틀 곡 '마법의 성'은 창작자들의 영원한 숙제인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한국대중음악의 명곡으로 손색이 없다. 만화 주제가처럼 동화적이고 환상적이었던 이 노래를 만들고 있을 때의 에피소드는 '명곡은 갑자기 뚝 떨어지고 속전전결로 만들어진다'는 기존의 속설을 입증한다. 그가 피아노 앞에서 첫 소절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그의 와이프가 빨리 하고 자라고 쿡쿡 찔러 약 30분 만에 완성한 곡이라 한다. 지난 2001년 MBC 라디오 <이주노의 뮤직토크>는 대중음악전문가 75명을 대상으로 '우리시대의 명반 및 명곡 20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했다. 따뜻함과 순수함의 대명사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한 '마법의 성'의 선정은 당연했다.

음반에는 최대 화두인 '마법의 성'의 3가지 버전이 혼재한다. 김광진이 부른 공식 버전과 변성기 전 14살 중학생 백동우의 미성이 빛났던 키드버전과 13명이 참여한 합창버전이다. 녹음 때의 자연스런 대화 수록이 인상적이고 당대 최고 보컬리스트 장필순, 윤종신, 유영석, 한동준 등이 참여한 합창버전은 무수한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될 명곡의 탄생을 알리는 예고편 같았다. 실제로 '마법의 성'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세계적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을 비롯해 동방신기, 에즈원, 핑클, 서영은, 성시경 등 무수한 국내가수들이 리메이크 작업에 참여한 불후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