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실마리를 우리나라 동해에 살았던 귀신고래에서 엿본다.
풍요로움이 넘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이전 시대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끊임없이 기회와 풍요의 사다리를 추구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죽어가고 있지만 주위의 아무도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형편에 놓여있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아닐까. 성공의 봉우리에 올라서도 한숨 돌릴 수 없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회의 사다리를 놓치기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이지만, 늘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우리는 '죽음의 계곡'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윌래밋밸리는 19세기 중반까지 칼라푸야라는 원주민 부족이 살던 축복받은 땅이었다. 칼라푸야 부족은 비옥한 토양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어 질병과 죽음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아무도 떠나지 못했기에 누구도 떠나지 못한' 채 계곡에 갇혀 있다가, 결국 백인들의 총부리를 등지고서야 그들의 오랜 역사도 막을 내렸다. 축복의 땅이 '죽음의 계곡(The Vally of Death)'이 된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신간 <죽음의 계곡>은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경제현장을 취재해온 저자가 어쩌다가 우리가 이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는지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이곳을 벗어날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경제사(經濟史)를 꼽았다.

이 책은 경제사회 구조의 변화가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뒤바꿔 놓았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미국 자본주의는 J.P 모건과 록펠러 등이 거대한 부를 형성하던 초기 '야만의 시대'을 지나, 큰 부자는 별로 없지만 다수의 미국인이 잘살게 된 '타협의 시대'을 지난다. 이후 정치가 울타리를 허물고 각자 도생해야 하는 '해체의 시대'에 접어든다. 사람들은 '시장에 정치적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면 인간의 노동과 자연과 돈을 모두 황폐하게 만들어버릴' 악마의 맷돌 속에 자신이 갈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자기계발에만 몰두한다.

저자는 이 맷돌을 멈추게 하고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실마리를 우리나라 동해에 살았던 귀신고래에서 엿본다. 이 고래는 작은 따개비들을 몸에 붙이고 새끼고래를 등에 업고 너른 바다를 유영한다. 생태계를 독점한 사나운 범고래와 달리, 약한 존재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주는 귀신고래가 만든 따뜻한 생태계가 바로 탈출의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생의 가치는 누군가의 완벽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의 창조적 열정이 만들어 내는 영역임을 설파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는 첫발은 우리가 이런 변화의 조짐들로부터 희망의 단서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 흐름에 합류하는 것이다.

유병률 지음. 알투스. 1만6,000원.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