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청평페스티발 공연 후 <바블껌>의 리더 이규대는 아마추어 노래 콘테스트에 출천해 1등을 차지했다. 하루 개런티 500원의 무명가수로 명동 '꽃다방'에 출연을 시작한 이후 조연구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어느 날, 청평 페스티발 사회자 정홍택이 연락을 했다. 당시 그는 대학체육회관 빌딩 2층에 라이브 클럽 '오비라운지'를 오픈했었기 때문. 매니저를 자청한 정홍택은 '오리엔탈', '코리엔탈'등 합성어로 이들의 팀명을 생각하다 "동요 같고 예쁜 곡을 부르는 혼성듀엣이니 풍선껌이란 이름이 좋겠다"며 팀 이름을 <바블껌>으로 지어주었다.

DJ 박원웅과 정식 계약

하지만 정식 매니저 계약은 당대의 유명 DJ 박원웅과 맺었다. <바블껌>과 함께 이규대가 소속한 배재고 출신 남성사중창단 <마일스톤>도 함께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해 1972년 1월 데뷔 음반을 냈다.

<바블껌>의 음반 중 데뷔앨범과 함께 가장 희귀하고 당대 젊은이들이 좋아했던 캠프송과 포크송들이 총 망라된 음반은 최근 40년 만에 재발매된 <바블껌 베스트>다. 이 앨범은 포크송 애호가라면 누구나 소장을 꿈꾸는 국내 캠프송의 최고봉 '연가'가 수록된 최초의 앨범이자 <바블껌>의 히트곡이 총망라된 한국 포크의 명품 음반이다. 상편에서 이미 언급한 최초의 군 입대 전송가 '이 말만 전해다오'는 물론이고 라틴음악의 여왕이라 불렸던 카테리나 발렌테의 'Papa Ama Mama'를 번안한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짝사랑'등 빠트릴 곡이 하나도 없다.

1971년 리리시스터즈에 의해 먼저 발표된 '짝사랑'은 곡 발표 때마다 작곡자가 바뀌는 사연 많았던 곡이다. 이규대는 이 곡에 대해 "당시 대학가에는 이름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곡이 많았다. '짝사랑'은 1969년에 Y 대학서클인 부족사회의 선배 김욱이 산행 다니던 시절에 만들었던 노래"라고 전한다.

<바블껌>은 박원웅과 인연을 맺은 후 조선호텔 뒤 라이브 클럽 <포시즌>을 주 무대로 삼았다. 그때 그들의 앞 순서에 노래한 가수가 이연실이다. 이규대는 "이연실과는 동갑이어서 금방 친구가 되었지만 자신의 독집제작 때 곡이 모자라자 우리가 포시즌에서 불렀던 '손꼽동네 새색시'를 '9살 새색시가 시집을 간다'고 가사를 고치고 '새색시 시집가네'로 제목을 변경하며 발표해 많이 싸웠다. 당시 처남과 같은 홍대 미대생이고 친한 사이라 그냥 넘어갔는데 작사작곡자도 틀리게 발표해 혼란이 빚어졌다. 원 작곡자는 약수동 장로교회 성가대 지휘자 김신일"이라고 전한다. 이스라엘 국가인 '비야 비야'는 원래 동요 '꼬부랑 할머니'를 쓴 신일고 교사 한태균이 가사를 썼다. '마당쇠 이야기'도 남성듀엣 <쉐그린>의 코믹 포크송 '얼간이 짝사랑'의 오리지널 버전이다.

이규대 결혼후 활동 접어

1974년 10월 9일 이규대는 여성멤버 조연구와 조선일보 뒤 덕수교회에서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그 때문에 <바블껌>은 사실상 활동을 접었고 이장호 감독의 동생 이영호와 <외침과 속삭임>이란 남성듀엣을 결성해 잠시 활동을 했다. 이후 이규대는 전업 사회자로 변신했다. 당시 그가 주도했던 라이브클럽 <코러스>는 모르는 남녀들에게 자연스런 만남을 유도하는 '껀수의 전당'으로 불리며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각광받았다. 훗날 가수로 데뷔해 히트곡을 터뜨렸던 <코러스>의 DJ 이재민은 춤을 추면서 재미난 멘트를 날려 인기가 높았다.

다운타운 최고의 스타 진행자가 되었지만 노래에 대한 갈증 때문에 다시 곡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마초 파동을 겪은 이후 자격지심에 모든 곡을 아내 조연구 이름으로 발표했다. 첫 작품은 남성듀엣 <가람과 뫼>의 음반이고 두 번째는 1979년 코러스 손님인 경기대생 한승기에게 만들어준 2회 TBC 젊은이가요제 대상 곡 '탑돌이'. 그리고 신인가수 장애향을 통해 '석탑'을 발표하며 연타석 히트를 터트렸다.

1982년부터 방송작가로 변신한 그가 MBC 작가시절 발표한 창작곡 '탑돌이', '석탑'등은 그가 꿈꿨던 한국적 이미지의 노래들이다. 그 결과 큰 딸 이윤아는 서울대 국악과에서 작곡을, 막내 이자람은 국악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하게 된 자양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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