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정말 비가 많이 내린다. 초봄에 내리는 비는 동장군의 마지막 발악인 꽃샘추위를 동반시키지만 봄비를 단비라 말하는 것은 온 대지를 촉촉이 적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봄을 노래한 시즌 송의 기본 정서는 명랑하고 희망과 극복의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봄비'를 소재로 한 노래의 공통된 정서는 '나를 울려주던 봄비', '봄비 속에 떠난 사람' 같은 가사처럼 통속적이다.

가슴 먹먹해지는 절창 압권

이은하의 '봄비'는 많은 대중이 기억하는 빅히트곡이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는 절창이 압권인 박인수의 '봄비'는 최고의 명곡으로 손색이 없다. 1970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신중현이 리드한 록밴드 <퀘션스>의 첫 앨범에 수록된 노래다. 당시 객원가수로 밴드에 참여했던 박인수는 이 노래 하나로 한국 소울 뮤직의 대부라는 빛나는 지위를 획득했다.

박인수는 임희숙, 여성듀엣 <펄시스터즈>, 남성듀오 <하사와 병장>의 이경우 등 후배들의 음악영웅으로 군림하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1965년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할램가 뒷골목에서 몸에 밴 흑인 특유의 리듬감으로 무장해 미8군 오디션에서 A등급을 받고 한국 최초로 결성된 록밴드 <코끼리브라더스>의 객원보컬로 노래생활을 시작했다. 흑인의 한이 가득한 소울을 기막히게 소화했던 그는 <키보이스>, <샤우터즈>, <데블즈>, <바보즈> 등 수많은 밴드들의 객원가수로 활약하며 미8군 무대에서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단숨에 미8군 여군들의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한 박인수는 '라이브무대의 황제'라는 극찬을 받기 시작했고 1967년 소문을 들은 신중현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1970년 결성된 신중현 밴드 <퀘션스>의 첫 앨범에 수록된 '봄비'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박인수는 비로소 일반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신중현은 "박인수는 영어 발음이 좋고 손을 비비며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노래 부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한다.

사실 '봄비'의 오리지널 가수는 박인수가 아니다. 신중현 밴드 <덩키스>의 메인 보컬이었던 여가수 이정화가 주인공이다. 비록 인지도를 얻지 못하고 월남 공연을 떠난 후 행적이 끊겨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보컬이지만 이정화는 신중현사단의 가수를 언급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전설적인 여성보컬이다. 1969년 신중현은 이정화가 먼저 발표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던 노래를 박인수에게 다시 부르게 했다. 적중했다. 박인수는 "아이고 세상에. 노래가 히트하면서 여대생들이 엄청나게 따라다녔어. 밤새도록 집으로 전화하고 찾아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라며 당시의 인기를 전했다.

시대초월 리메이크 잇따라

흔히 가슴을 치는 절창이 압권인 박인수의 버전이 '소낙비'라면 부드럽고 여성적인 이정화의 오리지널 버전은 '가랑비'로 비유된다. 박인수 버전이 엄청난 대중적 파장을 일으켰지만 이정화의 오리지널 버전 또한 은근한 매력이 상당하기에 비교해 들어보길 추천한다. 편곡에 따라 노래의 느낌이 변하는 것을 무수한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경험했겠지만 가수의 창법 또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할 것이다. 박인수는 1987년 블루스 돌풍을 일으켰던 <신촌블루스>와 인연을 맺으며 자신의 보컬 능력을 재확인시켰다.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한국 록그룹 페스티발'에서 박인수는 무려 7분40초의 롱 버전으로 명곡 '봄비'를 열창해 "역시 박인수"라는 탄성을 불러일으켰던 것.

가슴에 비수를 꽂듯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인수는 무책임한 방랑벽으로 자신의 음악재질을 탕진했던 한국대중음악계의 아웃사이더다. 하지만 그의 대표곡 '봄비'는 장사익, 록밴드 <키브라더스>, 김추자, 인순이, 체리보이, 홍서범 등 남녀 가수 구분 없이 시대초월적인 리메이크작업이 이루어졌다. 나미가 부른 '봄비'도 있다. 솔로 데뷔 이전 본명 김명옥으로 극장 쇼 무대를 주름잡았던 나미는 1976년 여성 5인조 보컬그룹 <해피돌스>의 메인 보컬로 캐나다로 진출해 한 장의 앨범을 발표했었다. 수록곡들은 모두 팝송인데 단 한곡이 우리말로 노래한 '봄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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