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식 1집 <황망한 사내>는 30대가 된 젊은 남자의 방황과 낭만 그리고 덧없는 욕망에 대한 음악 보고서다. 자신이 주체가 되질 못하고 끌려만 다녔던 삶에 황망한 생각이 든 정차식은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문득 자신의 30대 시절을 정의하고 기록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지나온 세월 동안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고 싶었다고 한다.

홀로 제작 3개월만에 완성

'용서'를 음악적 화두로 2011년 3월부터 창작 작업에 들어갔다. 거의 모든 제작과정을 홀로 수행한 그는 3개월 만에 작업을 끝냈고 문제작 <황망한 사내>가 세상에 나왔다. 1집에는 총 15곡이 수록되었지만 그는 이 앨범을 위해 무려 19곡을 생산해냈다. 앨범의 백미로 평가받는 '마중'의 경우 하이, 로우 두 가지 보컬 버전이 존재한다. 정규앨범엔 로우 버전으로 수록했고 하이버전을 포함 선곡에서 누락된 시낭송 같은 '황색정원'등 4곡은 100장 한정으로 제작한 비공식 미니CD로 꾸며졌다. 공식배급을 하지 않은 한정CD는 홈페이지에서 음반을 구매한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서비스 차원에서 제작했던 것.

처음 12곡 정도를 수록하려 했지만 선곡과정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 결과, 앨범 구성에서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약간 지루해지는 약점을 남겼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앨범 타이틀만큼이나 모든 수록곡들은 수려한 멜로디로 무장했다. 사실 이 앨범의 매력은 변화무쌍한 보컬을 구사한 정차식의 목소리에 있다. 거의 모든 곡에서 그는 진성과 가성, 두성을 넘나들며 때론 독백처럼 때론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1인 2역의 보컬을 구현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격과의 대립, 화합을 통해 결국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보컬 어법의 새로운 실험에 다름 아니다. 국내 남성 발라드 가수들에게 '금기'처럼 부담스러웠던 가성 보컬이 그에겐 오히려 매력적인 것은 중저음의 내공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홍보활동도 안해

정차식은 욕망과 회한의 정서를 탱고, 왈츠, 집시, 트립합, 트로트 그리고 한국적 이미지가 진동하는 다양한 리듬 위에 얹어냈다, 피아노 선율에 실린 처절한 독백인 첫 트랙 '용서'와 가난 때문에 일본으로 떠나간 아내와 두 아들을 평생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한 화가 이중섭을 염두에 두고 만든 '마중'은 사랑하는 모든 대상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기막히게 표출한 명곡들이다. 마치 가스펠처럼 함께 박수치며 화합하는 풍경이 그려지는 '오해요'는 정차식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고, 프로그래밍음악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음탕한 계집'은 탱고와 여인의 하이힐 소리로 연상되는 탭댄스 리듬이 인상적이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며 해학적 느낌까지 구현한 '내게 오라', 록 오페라의 필을 구현한 '습관적 회의', 절규 같은 하이 톤 보컬과 리듬으로 극한의 긴장감을 안겨주는 '괴물'등 뺄 곡이 없다.

담배 피는 숨소리, 자동차, 바람, 새, 고양이 소리 등 여러 효과음들이 촘촘하게 배치된 그의 노래들에는 회화적 요소가 넘실거린다. "앨범에서 소리가 덧대어진 것은 노래가 중심이지만 나머지 부분에서 전달하려는 뉘앙스를 샘플이나 기괴한 소리를 사용해 회화적인 느낌으로 표현해보려 한 것이다." 또한 그의 음악에는 남자의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 공감할 슬픈 마초의 향내가 진동한다. "내가 생각하는 마초는 무모하지만 진취적이고 도전하는,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누군가 그립고 사랑하고 싶은데 난 이미 늙어가고 있다는 좌절감, 무엇을 해도 안 될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 '용서'라는 건 잘못을 저지른 그때 받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할 숙제 같다"는 정차식의 말처럼 '용서'는 그에게 영원히 풀지 못할 음악적 화두가 될 것 같다.

정차식은 1집 발표 후 언론 홍보는 물론이고 방송국에 심의조차도 일절 하지 않았다. "반응을 기대했다면 기자와 피디들에게 음반을 돌렸을 텐데 안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 기대 없이 던진 음악에 이 정도로 파장이 일어나니 두려워진다. 워낙 가진 게 없는 사람인데 관심을 가져주는 지금의 상황이 솔직히 조금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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