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맞춤형 교통수단은…유모차나 휠체어 쉽게 탑승소음이나 코너링 쏠림 적고 휠 마모가 기존전차의 ⅓알루미늄 전동차 '인스피로' 가볍고 재활용 비율 95%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전동차 '인스피로'
선진국들은 현재 대중교통의 낙후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세계적인 전자·전기기업 지멘스가 전차와 지하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기존의 대중교통이 점차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전세계의 도시들은 이런 문제를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경우 대중교통 시스템의 확장을 위해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전차와 지하철이 도입된 지 수십년이 지난 유럽은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다.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시스템은 확장과 업그레이드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개량 작업이 개별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최적화나 비용 절감을 이룰 수 있는 표준화는 거의 불가능했던 게 사실이다.

환경 적응형 노면전차

독일 에를랑겐에 위치한 지멘스 모빌리티의 제품 매니저 마티아스 호프만은 유럽지역의 모든 노면전차(tram) 시스템이 곡선구간, 경도, 선로, 그리고 무엇보다 서비스 품질에서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노면전차의 운행 역사가 긴 도시의 경우 선로 재료의 낙후 가능성이 높고 급격한 곡선구간으로 인해 안락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차세대 노면 전차 '아베니오'
실제로 전차가 선로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으면 일부 곡선 구간을 달릴 때 차량에 많은 스트레스가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선로와 차량의 마모를 촉진시키고 차량 진동에 따른 승객 불편을 초래한다.

'아베니오(Avenio)'는 이러한 문제를 직시해 개발된 차세대 노면전차다. 과거처럼 단단한 차대를 통해 긴 동체를 연결하지 않고 개별 모듈의 중앙부분에서 회전이 가능하다는 게 최대 특징. 특히 아베니오는 현지 실정에 맞춰 한층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으며 낙후된 선로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

일례로 지멘스는 길이 좁고 곡선이 많으며 낡은 선로가 많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50만㎞ 구간에 아베니오를 적용, 휠 부분에 과도한 토크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있다. 정비가 잘 돼 있는 유럽의 현대식 노면전차와 비교해 휠 마모가 3분의 1 수준이다. 부다페스트는 이 같은 마모 감소로 인해 승차감 향상이라는 이점도 누리고 있다. 이동 시의 불쾌한 소음이 줄었고, 운행이 부드러워지면서 승객들은 전차가 코너를 돌 때 몸이 한쪽으로 심하게 쏠리는 짜증나는 경험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아베니오는 지면에서 전차의 바닥 면까지 높이가 몇 ㎝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에 두 개의 큰 출입문이 있어 유모차를 끌거나 휠체어를 탄 승객들이 손쉽게 탑승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생애 주기 비용이 저렴하며 차량이 정지할 때까지 작동하는 전자 브레이크, 차량 정차 시 작동이 중단되는 보조장치, 지능형 에너지관리 시스템, 90%에 달하는 재활용 비율 등이 아베니오만의 장점으로 꼽힌다.

레고 블록 지하철

1863년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상용운행에 돌입한 뒤 지금껏 다양한 지하철 모델들이 서유럽을 중심으로 개발됐다. 그런데 이들은 전고, 전장, 전폭과 설비가 모두 다르다.

왜 그럴까. 오스트리아 빈 소재 지멘스 메트로-비즈니스 사업부의 산드라 고트-칼바우어 대표는 "과거에는 주문된 모든 지하철 시스템이 현지의 선로 네트워크에 맞게 제작돼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표준화된 모델이 아닌 현지 맞춤형 소량 생산 지하철 모델은 개발기간이나 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됐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각 차량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시간과 비용을 줄어야하는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효율을 고도화하고 인체공학적 디자인이 적용된 신형 전동차 '인스피로(Inspiro)'는 이 난제에 대한 지멘스의 대답이다. 레고 장난감과 유사한 '빌딩 블록' 방식을 채용, 고객사들은 미리 제작된 표준화된 모듈에 자체 보유하고 있는 지하철을 추가해 조립할 수 있다. 소량 생산 모델이라도 백지 상태에서 모든 것을 만들지 않아도 되므로 대폭적인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이 플랫폼은 근본적으로 고객들이 옵션을 선택하는 자동차 업계의 판매 전략과 유사하다. 다른 부분이 있다면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인스피로의 플랫폼 부문 베르너 크멜라 매니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스피로의 기본 차량은 6량이지만 동력이나 특성을 달리해서 3량 또는 8량까지도 만들 수 있어요. 고객의 조건에 맞춰 조립이 가능하죠. 이는 모든 고객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취할 수 있는 구조여서 구매 단가가 매력적임을 의미해요. 표준 모델과 맞춤형 모델의 가격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셈이죠."

인스피로의 차체는 알루미늄이다.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지하철이며 재활용 비율은 최대 95%에 달한다. 효율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승용차 이용자가 지하철 티켓을 끊지는 않는다. 부드러운 차량 연결 구간과 각 차량 사이의 간격 최소화, 심미적 선호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승차감이 필수적인 요소다. 지멘스는 이를 위해 미국 BMW 디자인웍스에서 제품 디자이너를 채용, 인스피로의 내·외장 디자인을 맡겼다.

그 결과, 커다란 출입문이 생겼고 승객들은 손쉽게 열차를 탈 수 있다. LED 램프는 다양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부 통로도 넓어 공간 이용이 여유롭다. 또한 디자이너들은 디스플레이, 보안 카메라, 소방 센서 등 실내 정보 표시와 보안 시스템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승객의 편의를 극대화했다. 이런 차별화된 성능과 편의성에 주목해 독일 뮌헨과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각각 21대, 35대를 주문하는 등 인스피로는 벌써부터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박소란기자 ps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