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하면 안네의 일기가 떠오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던가.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묻히기 마련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이 겪었던 참상도 안네의 일기가 없었다면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1929~1945년)는 일기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썼다.

안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은행가로서 재력을 갖췄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로 근무했다. 그러나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안네 가족에겐 유대인이란 굴레가 씌워졌다. 독일군으로 적군과 싸웠던 유대인도 나치의 눈엔 없애야 할 대상이었다. 결국 안네 가족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2년 6월 12일. 이날은 안네의 열세 번째 생일이자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이었다. 안네는 일기에 "생일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당신을 보았다"고 적었다. 안네는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을 당신 혹은 키티라고 불렀다.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독일군에게 끌려가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일기장은 안네에게 안식처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안네가 일기를 쓴 지 2년이 지나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안네 가족은 은신처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독일 비밀경찰이 1944년 8월 4일 안네 가족을 찾아냈고, 그들은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안네와 언니 마르고는 1945년 3월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안네는 16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안네의 일기장은 잘 참고 견뎠다. 안네 가족을 숨겨줬던 네덜란드 여성 미프 히스는 안네가 쓴 일기를 찾아내 보관했다. 안네 가족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는 아버지였다.

오토는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남았는데,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한 덕분에 구사일생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오토는 1947년 네덜란드에서 안네의 일기를 출간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