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0년대 18전18승 전대미문의 성적그 비결은 비정상적으로 컸던 심장 때문영국 연구진, 전시된 유골 진짜로 확인

영국 왕립 수의대에 전시돼 있는 명마 이클립스 유골.
영국 캠브리지대 밈 바우워 박사와 로열 베테러너리대 연구진은 최근 발간된 고고표본연대측정 저널(Journal Archaeometry)에서 1880년대 괴력마로 활약한 이클립스에 관한 비밀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전 세계 경주마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더러브렛 말의 유전적인 역사를 파악하고 유전적인 질병의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서 시행됐고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던 '이클립스 유골의 진위'에 대해 규명했다.

이클립스는 개기일식(total eclipse)이 있던 1764년 4월 5일 영국 크랜본 로지 목장에서 더러브렛의 3대 시조 가운데 하나인 달리 아라비안의 고손자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성질만 사납고 볼품없는 체격의 '못된 망아지'에 불과해 목장 사람들은 난폭한 성질을 죽이기 위해 거세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클립스의 잠재적인 능력은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5살이 되어 처녀 출전한 4마일(약 6㎞) 직선주로 경주에서 이클립스는 2위와 200m(약 80마신)의 간격을 두고 우승하는 괴력을 선보인다. '이클립스가 가장 먼저 들어왔고, 나머지는 보이지도 않았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이후의 경주에서도 이클립스는 '2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승리를 밥 먹듯이 거뒀고, 이틀 동안 두 번의 경주에 출전해 모두 우승하기도 했다. 채찍질이나 박차를 가하지 않아도 절대로 다른 말의 뒤에서 달린 적이 없었던 이클립스는 결국에는 그 어떤 말도 감히 도전하겠다고 나서지 않아 1771년 7세로 은퇴할 당시 18전 18승이라는 전대미문의 성적을 남겼다.

이클립스의 놀라운 스피드와 스태미너에 호기심을 가진 영국사람들은 1789년 이클립스 사망 직후 부검을 했고 그 결과 그의 성공의 비결이 심장이 141/4파운드(6.5kg)나 나갈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컸던 것이 요인이라고 밝혀냈다.

한편 영국 곳곳에서 여러 번의 부검 후 취합된 이클립스의 유골은 현재 로얄 베테리너리 대학에 전시돼 있는데 최근까지도 이클립스 유골이 진짜 이클립스의 뼈가 아니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현존하는 이클립스의 후손과 해당 유골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전시된 해골이 이클립스 것임을 확인했다. 이번 논문은 'journal archaeometry' 2012년 최신판에 게재된다.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