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60년대까지 '꾀꼬리의 여왕'으로 불렸던 황금심(본명 황금동)은 고운 목소리의 대명사격인 가수다. 무려 4,000여곡을 취입한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마이크를 쓰지 않고 육성공연을 고집한 가수로도 유명했다. 황금자란 예명도 보유한 그녀는 황금심이란 예명을 빅터레코드사에서 공식 데뷔곡 '알뜰한 당신'을 발표하면서 사용했다.

예쁜 외모 애간장 녹이는 음색

단박에 시선을 잡아 끄는 예쁜 외모에 애간장을 녹이는 간드러진 음색으로 사랑받았던 황금심은 신민요, 트로트는 물론이고 서구 스타일의 노래까지 전혀 이질적인 질감의 노래들을 맛깔나게 소화했다. 실제로 그녀는 14세 소녀시절 오케레코드사 전속가수 선발 오디션에서 2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1등으로 선발된 가창력의 소유자다. 탁월한 미모의 신인여가수에게 뭇 사내들의 야릇한 시선이 쏠렸던 것은 당연했다. 당시 오케레코드의 노총각 인기가수 고복수도 그녀의 미모에 반해 전속사를 옮겼을 정도.

1939년 4월, 황금심은 이부풍 작사 전수린 작곡의 '외로운 가로등'을 또 다시 히트시키며 빅터레코드의 흥행보증수표 콤비로 명성을 구가했다. 당시로서는 희귀했던 블루스 곡 '외로운 가로등'은 통속적인 사랑의 배신이라는 슬픈 정조로 한번만 들어도 가슴에 진한 상흔을 여지없이 남기는 쓸쓸한 노래다. 이 노래는 이미자, 남상규, 조미미, 김연자, 한영애 등 수많은 가수들에 리메이크되었다. 현대적 어법으로 리메이크된 한영애 버전은 블루스 필이 강렬한 기타와 재즈 질감의 클라리넷 그리고 잘 정돈된 현악기 연주가 어우러져 근사했다.

하지만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여러 연인들이 키스를 나누는 내용을 담은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뮤직비디오가 방송 3사의 자체 심의에 걸려 방송금지를 당했다. 당시 MBC는 "댄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키스 장면이라면 장난스럽게 볼 수 있지만 진지한 분위기의 노래인데다 박노식이 개를 뉘어놓고 키스하는 장면이 노랫말과 맞아떨어지면서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수정을 요구했고, KBS는 "혀를 내밀어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너무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부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제작사는 수정을 거부했었다.

이미자·김연자 등 리메이크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은 노래에 담긴 복잡 미묘한 정서와 감정의 골이 깊어 맛깔나게 표현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난해한 곡이다. 구절구절마다 담긴 쓸쓸한 정서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진한 사랑의 상처를 경험하지 않고는 도저히 소화해내기 힘든 곡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의 슬픔을 알 것 같지 않은 17살 어린 소녀였던 황금심의 표현력은 믿기 힘들 정도다. 이루어질 수 없는 통속적인 사랑의 슬픔과 배신의 정조가 압권인 이 노래는 오히려 식민지 조선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마력을 발휘했다.

노래에 얽힌 사연 역시 통속적이고 신파적이다. 1937년 겨울비가 스산하게 뿌리던 어느 날 밤, 작사가 이부풍(본명 박노흥)은 빅터 가극단의 창설행사에 참가한 후 종로 명월관 앞을 지나다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우산을 쓰고 명월관을 응시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았다. 3일 연속 같은 장소에서 밤늦게 서 있는 여인에게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은 당연했다. 용기를 내 신분을 밝히고 여인에게 다가간 그는 기막힌 사연을 들었다. 여인은 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 법학과에 유학을 간 애인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애인은 검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를 버리고 출세를 위해 변심을 해 당시 검사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명월관 앞을 지키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슬픈 여인의 사연은 명곡의 가사로 태어났다. 당시로서는 개체수가 희박했던 블루스 곡인 '외로운 가로등'은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지만 원곡 가사는 보존되지 않았다. 광복 이전에 발매된 대중가요 중에는 작사자와 작곡자는 물론이고, 가사가 원곡과 다르게 전해지는 변형된 노래가 많다. 심지어 오리지널 가수인 황금심조차도 3절의 원곡 가사로 부른 버전이 거의 없다. 이 노래는 최근 단국대 장유정 교수가 <근대가요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 노래를 통해 원형이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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