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안(원격투시)은 가능할까

당시 학자들 입증 실험 감행… 결과는 도출되지 않아

적대국 정보 알기 위해 미, 심령술사 스완에게
원격투시 능력 개발 의뢰

스완의 투시 훈련 과정은 일반 심신 수련법과 유사
그 제자들 獨통일 2년전 감지

냉전 체제 종식 후엔 미궁 범죄 등 수사에 이용
아직 과학적 근거는 부족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구상의 어떤 장소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진 적이 있나? 목격하지도 않은 사건의 정황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지는 않은가? 천리 밖 먼 곳의 일, 말하자면 따로 보거나 듣지 않고도 세상사를 훤히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리켜 흔히들 천리안, 다른 말로 원격투시(remote viewing)라 한다. 원격투시는 정말 가능할까.

훈련으로 달성되는 초능력

책상에 가만히 앉아 먼 곳의 일까지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인생사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모른다.

지난 2000년 개봉한 일본 영화 '천리안'에는 천리안을 가진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초능력의 소유자다. 투시력과 예지력을 모두 지닌 인물이라고나 할까. 세상 돌아가는 일을 척척 알아맞힐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의문투성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신기한 여자라고? 단지 스크린 속에서 살아가는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이 지구상에는 우리가 흉내 낼 수 없는 비범한 능력의 원격 투시자들이 실존하는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사람은 스웨덴의 에마뉴엘 스웨덴보르그. 그는 1759년 여행을 떠나 예테보리에서 식사를 하던 중 스톡홀름의 자신의 집 근처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을 마치 직접 목격한 것처럼 생생히 투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두 도시는 500㎞나 떨어져 있지만 추리에 의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자세한 정황까지 줄줄이 얘기해 사람들을 자지러지게 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학자들이 원격투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가 도출되지는 않았다. 다만 스웨덴보르그와 같은 능력자들은 미국과 소련이 냉전체제 속에서 암투를 벌이던 1970~1980년대에 주로 탄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때는 양국에서 상대방의 기밀이나 군사동향을 빼내기 위해 스파이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시기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미국이 이 목적을 위해 원격투시자들을 양성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잉고 스완. 당시 미국 정부는 그에게 원격투시 능력의 개발을 의뢰했다. 말하자면 그는 원격투시 훈련의 체계를 세운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원격투시가 텔레파시나 공간이동과 같은 일반적인(?) '초감각적 지각(ESP)'의 개념이 아닌 훈련의 개념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격투시는 ESP, 혹은 심령술과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다 체계적인, 말하자면 과학에 근접한 것으로 말이다.

스완 역시 초능력자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도 어느 정도 훈련만 받으면 충분히 천리안이 될 수 있다고 여겼고 제자들이 잠재된 초능력을 일깨울 수 있도록 도왔다. 학원에서 영어와 요리를 배우는 것처럼 훈련으로 원격투시자가 될 수 있다니 언뜻 믿겨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마 이보다 획기적인 자기계발법은 없을 듯하다.

잉고 스완과 사이코메트리

도대체 스완은 어떤 방법으로 후학을 양성했을까. 구체적 훈련 과정은 일반의 심신수련법과 유사하다고 알려진다. 일단 마음의 혼란한 파동을 가라앉힌다. 그런 뒤 애초에 정한 목표에 따라 잠재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에 의식을 집중한다. 이로써 의식의 깊은 곳에 닿으면 마침내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만물일여 우아일체(萬物一如 宇我一體)'의 단계에 이르고, 여기서부터 투시를 가능케 하는 정보가 하나씩 수집된다고 한다.

일견 이는 동양의 기공(氣功)과 유사한 면이 많다. 기공은 우주 만물이 작용하는 근원인 기를 직접 제어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 수련법이다. 일례로 현재 국제초능기공협회에서는 수련 프로그램 중 하나로 원격투시가 포함돼 있다. 명상을 통해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미국인인 스완이 지금도 아닌 그 당시에 기의 존재를 믿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원격투시를 초능력의 하나로 봤고, 그것을 훈련으로 습득하고자 했던 괴짜였다. 그러나 그 괴짜의 원격투시자 양성프로젝트는 괴짜스럽지 않았다. 그가 키워낸 능력자들이 실제로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마약관리국(DEA) 등 정부 기관에서 활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원격투시자는 소련과 중국의 지도를 보고 명상에 들어가 살상병기가 위치한 구체적 지명까지 읽어냈다고 한다.

스완과 그의 제자들의 활약상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약 2년 전에 미리 감지한 일이다. 당시는 정세가 그처럼 급격히 변화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때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완의 예측을 믿지 않았지만 결과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냉전 체제가 종식된 후에도 원격투시는 갖가지 수사에 활발히 이용됐다. 전문용어로는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주로 범죄현장에 남겨진 물건을 만져서 그 소유자에 대한 정보를 읽어냄으로써 미궁에 빠진 사건의 범인을 잡아내는 것을 말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수사선진국들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암암리에 활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1991년 대구에서 발생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건 수사에 사이코메트리가 동원됐다. 개중에는 납치범의 이름과 범행에 쓰인 차량번호까지 제시한 투시자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범인을 잡지는 못했으니 효과는 없었지만 말이다.

오늘날의 원격투시는 단지 특정 공간이나 시간의 개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독심술처럼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능력까지 포괄한다. 미국의 한 원격투시자는 걸프전 당시 사담 후세인의 마음을 읽어 정부에 작전의 단서를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원격투시는 하나의 심오한 '기술'이며, 훈련을 받은 이만이 정확하게 시행할 수 있다. 이쯤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의문 하나. 훈련만 받는다면 아무나 원격투시자가 될 수 있는 걸까. 대답은 '글쎄'다.

주체와 객체의 동화 원격투시 훈련 체계를 마련한 스완의 본업은 다름 아닌 심령학자. 투철한 직업정신을 지닌 그는 원격투시를 영적 의미로 받아들였다. 예지력이나 텔레파시와 유관한 개념으로 믿었던 것. 다시 말해 감각기관에 일절 의존하지 않고 특별한 무언가를 통해 소통한다는 얘기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또 유체이탈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스완은 한 실험에서 몸소 유체를 이탈한 후 숨겨놓은 특정 물건을 감지해 그림으로 그려내기까지 했다고.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그린 물건이 무엇인지는 알지는 못했다. 물건의 대략적인 형상만을 파악했을 따름이다.

심령학에서는 유체이탈을 하는 의식체는 물리적인 세계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공간이나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스완의 일화가 과연 믿을만한 것인지와는 별개로 살아있는 인간이 수시로 유체이탈을 감행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게다가 명상 등의 훈련을 통해 유체이탈을 배우고, 그를 바탕으로 원격투시를 한다? 상식적으로 쉽게 수긍이 가지 않은 부분이다.

과학은 원격투시에 대해 어떤 해석을 덧붙일 수 있을까. 원격투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들 중 흔히 인용되는 것은 프랑스의 초심리학자 르네 워콜리어의 이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투시자와 그 대상 사이에 어떤 특별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에 있다. 그가 자신의 저서 '마음에서 마음으로(Mind to mind)'에서 주장한 바에 의하면 투시자가 어떤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면 투시의 주체와 객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동화된다. 그로 인해 투시자는 대상에 대한 결정적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말하자면 잠재의식이 일상의 감각체계로 편입 혹은 흡수되는 것이다.

소설 'UFO와 신의 비밀 미스터리'의 저자이자 미국의 원격투시 연구가 커트니 브라운 또한 비슷한 견해를 표명했다. 그는 투시를 의식과 무의식의 소통을 통해 자각의 한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이동하는 일련의 절차로 해석한다.

무의식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직관'이라 할 수 있다. 이 직관은 정보를 전달하는 물리적 수단 없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작용한다. 즉, 직관적인 정보를 체계화시켜서 그 내용을 분석·기록하면 사이코메트리 같은 행위가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런 견해에서 보자면 스완과 같은 권위자들의 역할이란 투시자가 자신의 잠재적 능력이나 감각을 힘껏 발휘하고, 직관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나름의 훈련법을 마련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것이 명상이든, 유체이탈이든 말이다. 실제로 여러 정형화된 원격투시 방법을 제시한 이론가들 역시 자신들이 제시한 방법은 투시자가 좀 더 성공적으로 잠재의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계라고 밝히기도 했다.

혹자는 물리학에서 이 이론에 대한 근거를 찾기도 한다. 오늘날 양자물리학의 주류를 이루는 '코펜하겐 해석'이 그 골자다. 코펜하겐 해석에서 모든 물리량은 관측이 가능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물리적 대상이 가지는 물리량은 객관적인 값이 아니라 관측 작용의 영향을 받는 값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점은 투시자와 대상,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각주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투시자와 대상은 서로 어떤 방식으로 동화된다는 것일까. 또 직관적 정보는 어떤 과정에 의해 전달된다는 걸까. 구체적인 방법과 과정에 대해 과학은 아직 설득력 있는 견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원격투시가 청각이나 후각과 같은 감각의 발달 혹은 육감의 발현이라고도 하지만 근거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원격투시를 하나의 과학적 현상으로 설명하려면 새로운 이론이 출현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리고 그 이론은 매우 고차원적인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원격투시는 다른 종류의 초능력들과는 달리 정확히 한 종류의 능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들이 종합적으로 혼합된 존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개념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과학이 분발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



과학칼럼니스트 박소란 noisepark5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