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는 대중가수를 아티스트로 대접하는 요즘과는 달리 '딴따라'로 비하했던 시절이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학사가수라는 학벌 프리미엄의 위력은 대단했었다.

고려대 법대 출신의 여학사가수 김상희는 당대를 대표하는 인기가수다. 그녀의 존재가치는 단지 고학력가수의 프리미엄 틀 안에 안주했던 인기가수보다는 장르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음악적 시도와 실험에 도전한 뛰어난 보컬리스트였다는 점에 빛을 발한다.

감미로운 중음역의 음색으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김상희는 팝, 뮤지컬, 민요, 가곡과 더불어 재즈까지 섭렵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보컬리스트다. 세월이 많이 흐른 요즘 그녀의 존재는 어떻게 각인되어 있을까?

60~70년대 대중음악계를 풍미했던 그녀의 이름 석 자는 젊은 세대들에게 그저 왕년의 인기가수 정도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 70년대는 물론이고 한국대중음악사상 최고의 섹시 여가수로 평가받는 김추자도 왕년의 인기 트로트 가수로 오해되는 요즘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신중현 사단의 대표여가수로는 김추자, 김정미, 펄시스터즈로 각인되어 있다. 김상희는 신중현사단 여가수의 계보에서도 거의 삭제되어 있다. 이는 한순간의 외도라 말할 정도로 짧았던 활동 탓이기도 하다.

장르적으로 신중현사단 최고의 사이키델릭 여가수로 김정미의 이름이 선명하다. 문제는 한 때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신중현사단의 사이키델릭 여성 록커로 자신은 물론이고 장르 자체를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렸던 주인공이 김상희란 점이다.

건강 문제로 법조인 꿈 포기

대중가요 음반 시장에서 김상희의 음반들은 비교적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그 중 짧은 신중현사단 활동시절의 음반 3장은 초희귀 음반으로 대접받는다. 신중현의 작품이라는 브랜드 파워와 더불어 김상희의 파격적 변신과 실험적 시도가 안겨주는 신선함 때문이다.

김상희는 우수한 학업성적뿐 아니라 학생회장, 학교 신문반 사진기자 등으로 활약하며 교내 노래꾼으로 유명했던 멀티플레이어 재능이 범상치 않았던 소녀였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요즘처럼, 그녀 역시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 입상자 출신이다. 고려대 입학 전인 1961년, KBS의 전속가수를 모집 광고를 보고 심심풀이 삼아 응모를 한 그녀는 수백 명의 응모자중 베스트 8에 선발되며 정식 가수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샘표간장의 라디오 CM송을 취입하면서부터. 당시 이 노래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불리어졌다. 그녀가 한동안 무명가수의 범주에 머문 것은 학교와 가족에게 가수활동을 숨겨야 했던 개인사정이 한 몫을 했다.

가수활동을 숨기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글자인 (희)姬와 친한 친구들 이름과 성에서 한 자씩 가져 온 (김)金과 (상)相을 조합해 예명을 김상희로 정했다. 그녀의 본명은 최순강이다.

4년 연속 납세액 1위 가수

가수활동과 병행해 법관을 꿈꿔왔던 그녀는 건강 문제로 법조인의 꿈을 접고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에 들어갔다. 1965년 '울산 큰애기' 1966년 '대머리 총각', '경상도 청년' 1967년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뜨거워서 싫어요', 1968년 '단벌신사', 1969년 '빨간 선인장'등 감미로우면서도 발랄한 음색의 노래들로 히트퍼레이드를 벌였다.

1960년대는 경제재건 의욕이 탱천했지만 빈곤했던 시절이다. 옷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상경을 시도했던 시골 젊은이들의 행렬이 이어진 이농현상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던 1965년에 발표된 김상희의 '울산 큰 애기'는 그녀의 빅 히트곡이다.

1968년에 발표한 '단벌신사'는 엉뚱한 금지사연이 있다. 노래가 히트되면서 북한에서 노래가사 내용을 인용해 '남쪽은 가난해 신사들도 옷 한 벌 밖에 없을 만큼 궁핍하다'는 식으로 남쪽을 비방하는 노래로 이용했던 것.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첨예했고 반공의식이 투철했던 당시 방송금지의 멍에는 당연했다.

금지의 아픔도 잠깐, 결혼 후 '빨간 선인장'등 느릿하면서 분위기 있는 성인 가수 이미지로 변신을 꾀한 김상희는 1968년부터 1971년까지 '4년 연속 가수납세액 랭킹1위'라는 부와 명예를 얻으며 인기가도를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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