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상> 65x49cm, 목판화, 1984
'동양의 피카소'라 불리는 고암 이응노의 파리 시절 판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 예담 컨템포러리는 고암의 <그려진 판화(Touching Print)>전을 개최한다.

고암 이응노(1904-1989)는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한국회화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찾아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로, 동양의 전통 위에 서양의 새로운 방식을 조화롭게 접목해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고암은 1956년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 자크 라센느의 초대를 받아 1962년 파리에서 개최한 개인전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주로 활동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후 작고하기 전까지 자의반 타의반 고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파리에 정착했다.

고암의 판화에는 다른 판화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에디션(edition)에 적힌 '試作(시작)'이라는 한자다. 보통 판화 작품의 에디션은 '1.숫자 2.제목 3.작가사인 4.제작연도' 순으로 표기하는데 고암의 판화에는 '試作'이라는 한자가 적혀있거나 동양화에서 작품 완성 후 찍는 낙관이 있다. 이런 특징은 시험쇄에 대한 작가식 표기법일 수도 있고 작업 전반의 형식실험이 현재진행형임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5x32cm, 종이에 판화, 1973
두 번째 특징은 찍어내는 판화에서 그리는 판화로 확장된 판화 작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고암은 유성잉크 대신 전통적인 수성의 먹을 이용해 마치 먹그림처럼 부분적으로 번지는 효과를 나타냈다. 그리고 판화를 찍은 연후에 그 위에 다시 칠하고, 판화로 찍어낸 부분 이미지를 다른 종이에 올려 붙인 일종의 콜라주 형식의 작품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파리시기에 정립된 판화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고암 작품들은 대표작인 문자추상과 군상시리즈를 포함해 그의 손에서 태어난 다양한 이미지들이 판화라는 매개체로 옮겨와 기존 판화의 형식에 회화적 요소를 입힌 독창적인 작품들이다. 회화에서처럼 힘있는 필력은 판화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으며 다양한 색감의 조형을 느낄 수 있다. 8월 1일~9월 23일 전시.

한편 전시 기간에 어린이 도슨팅과 판화 체험 수업이 열린다. 유치원, 초ㆍ중ㆍ고생을 대상으로 80~90분씩 진행되며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02)723-6033


34x40cm, 종이에 판화, 1977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