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보다 이름을 히트시켜라! 예명으로 활동하는 연예인들은 무수하다. 일반적으로 본명을 감추고 예명을 쓰는 이유는 촌스러운 이름을 숨기려는 목적도 있지만 독특한 이름으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더 크다.

사실 연예인들의 예명을 살펴보면 제법 듣기 좋은 정겨운 이름이나 애교와 재치가 넘치는 독특한 이름도 있지만 억지 외래어를 쓰거나 기성천외 하지만 말이 안 되는 단어를 쓴 경우도 무수하다.

가수들의 경우, 솔로가수들보다는 록밴드나 보컬 그룹들이 예명을 팀명을 사용하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 무수한 그룹들을 결성했던 록의 대부 신중현도 <에드훠>, <블러즈 텟츠>, <덩키스>, <퀘션스>, <더 맨>, <엽전들>, <뮤직파워> 같은 의미심장하고 독특한 예명을 사용했었다.

예명을 짓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의미심장한 뜻과 독특한 이미지다. 걸그룹의 경우는 보석, 과일, 꽃, 곤충 같은 예쁜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록밴드들은 곤충이나 동식물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았다.

최헌이 리드했던 <검은나비>는 멤버들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룹이 해체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호랑나비>, <불나비> 등 주로 나비 이름을 팀명으로 사용해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냈었다.

무수한 캠퍼스 밴드들을 탄생시켰던 1978년 해변가요제는 강변가요제와 더불어 당대의 여름 음악축제로 각광받았다. 이 대회를 통해 항공대 <활주로>와 홍익대 <블랙테트라(열대어)>를 탄생시키며 <송골매>로 합체됐고 중앙대의 <청룡들> 그리고 <장남들>, <휘버스>등 무수한 캠퍼스 록밴드들이 탄생했다.

난항을 겪었던 야외무대 진행으로 단 1회로 그친 해변가요제의 후신으로 이어진 젊은이의 가요제는 <라이너스(범수리)>, <라스트 포인트>, 수의학과생들로 결성된 <제브라(얼룩말)>, <조랑말>, <카라반>, <종이비행기>, <긴젝스> 등 무수한 캠퍼스밴드들의 인큐베이션(Inqubationㆍ배양) 역할을 했다.

무더위가 시승을 부렸던 1980년 7월 31일 장충체육관에 마련된 제3회 젊은이의 가요제 가설무대는 관객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로 폭발 직전이었다. 5인조 혼성 록그룹 <로커스트>는 이날 무대의 슈퍼스타였다.

<로커스트>는 직역하면 메뚜기를 의미하는데 이들은 한글로 팀명을 사용할 때는 <사철메뚜기>라 했다. "메뚜기는 한철이라는 게 싫어 사철 메뚜기라 지었다.

메뚜기 한 마리는 약하지만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 떼의 힘은 무섭지 않는가. 우리는 헤어지면 약하고 뭉치면 강하다는 논리의 음악 공동체"라는 의미로 붙인 예명이다.

여하튼 프로를 능가하는 감각적 연주로 '하늘색 꿈'을 불러 대상과 가창상을 휩쓸었다. 당시 <로커스트>의 여성 보컬 김태민의 다이내믹한 가창력은 참가 17팀 중 단연 발군이었다.

가요제 대상 수상 후 '하늘색 꿈'은 당시 젊은 층에 인기 높았던 '영11', '젊음의 행진'등 지상파 TV와 KBS 라디오 등을 통해 연일 방송을 타고 흘러나오며 방송과 업소 출연 요청이 빗발쳤다.

"팀 해체 전 기념음반 내자"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했던 이들은 돈을 받고 노래하는 밤 업소출연은 사양하고 방송활동도 수업이 없는 날에만 출연에 응했을 정도로 순수한 캠퍼스밴드로 활동영역을 스스로 제한했다. 주가가 오른 <로커스트>는 서울시내 대학 축제의 초청대상 1순위 밴드로 떠오르며 대학가 최고의 스타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리드보컬 김태민은 노래실력뿐 아니라 통통하고 귀여운 용모로 또래의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방송출연료를 모아 악기를 장만하고 서울 신촌에 7평 규모의 건물 지하실을 월 80만원에 빌려 연습장을 장만했다.

본격적인 연습과 활동으로 음악 갈증이 어느 정도 해갈되면서 이들은 밴드를 해체하고 학업으로 돌아가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그때 폭발적인 가창력과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했던 이들의 음악을 높이 평가한 대성음향에서 독집제작을 제의를 해왔다.

산울림의 김창완이 음악을 주관했던 신생 레코드사 대성음향은 당시 음악성 높은 뮤지션들의 음반을 주로 발매했던 레이블이다. 멤버들은 "팀 해체 이전에 기념음반을 한 장 내보자"며 마음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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