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메뚜기 <로커스트>의 유일한 독집은 80년대 캠퍼스밴드 전성시대를 증언하는 한국 록의 명반이다. 제3회 '젊은이의 가요제'대상 수상 곡 '하늘색 꿈'이 실황음반을 제작한 지구레코드와의 관계 때문에 빠지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내가 말했잖아''바람''밤길'등 8곡의 탁월한 창작곡을 수록한 독집은 1981년 대성음반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서울 동부이촌동 서울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녹음은 몇 일간 진행된 8곡의 악기 세션 파트와는 달리 보컬 녹음은 단 하루에 끝냈다. 당시는 동시녹음 시절이 아닌지라 해프닝이 벌어졌다. 최대 히트곡 '내가 말했잖아'를 녹음하던 중 2절 '슬플 땐' 부분에서 원곡은 한번인데 실수로 중복되어 들어갔던 것. 리드보컬 김태민은 "노래를 들을 때 마다 늘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지만 그 버전이 오리지널로 대중에게는 각인되었다.

대학생 특유의 순수함과 실험정신이 가득한 <로커스트>의 독집은 80년대 젊은 음악 마니아층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발랄한 리듬 감각이 돋보이는 보컬 김태민의 맑고 풍부한 감성의 시원한 음색과 신선한 연주는 기성 록밴드와는 차별되는 폭발적인 매력으로 젊은 영혼들을 사로잡았다. 총 8곡의 수록 중 무려 5곡을 제공했던 김창완은 "젊은이다운 강한 비트와 다이나믹한 톤. 그러면서도 대학생답게 지적으로 정리된 음악성에다 리드싱어 김태민의 재치 넘치는 노래 표정이 좋았다"고 평했다.

이연희가 여고생때 창작

사실 타이틀 곡 '내가 말했잖아'는 작곡자 이연희가 여고3학년생 때 창작했던 평범한 통기타 곡이었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들은 사철메뚜기 멤버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로 채색한 빠르고 경쾌한 록 사운드로 편곡해 빅히트를 터트렸던 것. 음반의 재킷그림을 그린 김태민의 친구 한유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코러스뿐 만 아니라 자작곡 '밤길'을 제공하며 독집제작에 큰 도움을 주었던 숨은 공로자다. 5분32초 분량의 대곡 '밤길'은 <로커스트>가 추구했던 음악적 방향을 잘 보여주는 한국 록의 숨겨진 명곡이다.

기념음반 발표 후 <로커스트> 멤버들은 밴드 결성 당시의 약속을 지키며 일체의 상업음악활동과는 거리를 두었다. 음반 발표 후 키보드 연주자 김성배가 군에 입대하면서 남녀멤버를 보강해 몇 달간 활동을 이어갔지만 그해 12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KBS '젊음의 행진' 공개방송은 완전 해체를 선언한 고별공연이었다. 하지만 리드싱어 김태민에게는 집요하게 방송출연요청이 이어졌다. 1982년, 계속되는 출연요청을 거절하기 힘들어 KBS TV '젊음의 행진'에 두 번 더 출연했지만 멤버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그녀 역시 평범한 대학생으로 돌아갔다. 김태민은 졸업반이던 1983년 결혼과 더불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결혼 직후 사연 하나. 5월 학교축제 때 사회를 온 개그맨 고영수가 많은 커플 속에서 김태민을 발견하고 노래를 청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가수활동을 원치 않았던 남편을 배려해 끝내 사양했고 대학 졸업 후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살아왔다.

2000년대에 들어 가장 강력하게 형성된 문화흐름은 복고다. 온 나라를 휘청거리게 했던 경제 환란에 몸살을 겪었던 386세대들은 장밋빛 꿈을 먹으며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나갔던 7080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다. 7080음악 부활은 그 같은 불안정한 경제사회적 분위기가 이끌어낸 시대적 부름이었다. 지난 2004년 KBS TV에서 진행한 7080공연을 통해 김태민은 23년 만에 컴백했다. 활동을 재개한 김태민은 2005년 1집을 CD로 복원하는 작업과 더불어 2009년에는 솔로 독집 <사랑 그리고>까지 발표해 주목받았다.

우리는 잘나가던 록커가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는 음악적 변절을 수도 없이 목도했다. 인기와 성공이라는 미명아래 행해진 장르적 선택이 트로트인 것은 손쉬운 성공 때문이다. 그녀에게도 '트로트 가수로 변신을 해야 된다'는 제의가 있었다. 하지만 캠퍼스밴드 최고의 여성보컬출신인 그녀는 세월이 흐른 지금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녹일 수 있는 장르로 발라드를 선택하며 넘지 말아야 될 선을 지켰고 녹슬지 않은 가창력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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