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의 희망 아이콘, 제작사 자료 공개수집 나서

스노맨은 친화성이 매우 뛰어난 말이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강을 건너는 스노맨.
미국 유명 다큐멘터리 영화사 '다큐테인먼트 필름'이 미국 역사상 최고의 장애물경기용 말인 '스노우맨(Snowmanㆍ1949~1974)'에 관련된 영상장면과 스틸사진을 공개모집하고 있어 화제다. 모집된 자료는 스노우맨(가제) 영화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스노우맨은 도축될 운명에서 극적으로 벗어나 국제적인 스타가 된'신데렐라 말'이다. 이 영화는 사진과 영상, 스노우맨 지인들의 인터뷰 영상으로 구성되는데 영화제작사는 세계 전역에 스노우맨의 생전 사진과 영상이 있는 것을 고려해 자료 공개모집에 나섰다.

스노우맨은 1957년 펜실베니아 호스 경매장에서 도축용 말로 경매되고 있었다. 트럭으로 도축장에 실려 가기 직전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온 승마지도사 해리의 눈에 띄게 된다. 그는 무거운 안장을 짊어져 상처투성이였지만 점잖은 눈빛의 회색말 스노우맨에게 특별함을 느꼈고 80달러에 그를 구매해 롱아일랜드로 데려왔다. 스노우맨이 해리 집에 도착한 날 함박눈이 내렸고 해리의 아이들은 함박눈에 덮인 그가 눈사람과 같다고 해서 '스노우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노우맨은 부드럽고 듬직한 성품으로 아이들과 잘 어울리면서 해리의 승마스쿨에서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는 생활고로 승마용 말들을 팔게 되는데 스노우맨도 한 이웃의 목장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스노우맨은 1.5m 이상의 수많은 울타리를 뛰어 넘으며 불가능한 탈출을 감행해 해리집으로 돌아왔다.

스노우맨의 충성심뿐 아니라 점프력에 놀란 해리는 스노우맨을 집으로 데리고 왔고 그와 장애물경기 연습을 시작했다. 그들은 2년 만에 미국의 내로라하는 승마 장애물경기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들은 1958년 승마 트리플크라운으로 불리는 쇼링 트리플크라운에서 우승했다. 또한 그 다음 해인 1959년에도 쇼링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참가하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우승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스노우맨은 6년 동안 활동하며 전 미국에 스노우맨 붐을 일으켰다. 자니 카슨의 투나잇쇼에 출연하고 주요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는 등 신데렐라의 삶을 살았다. 스노우맨은 1964년 은퇴했고 여생을 헨리가족과 함께했다.

스노우맨의 인기 비결은 선천적인 점프능력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친화성으로 평가된다. 다큐멘터리 감독 론 데이비스는 "스노우맨은 한 시대의 희망 아이콘이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특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어느 다큐멘터리보다도 감동적인 영상으로 구성될 것이다"고 전했다.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