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이 섹시하고 도발적인 여인으로 변신해 돌아왔다. 마치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화려하고 성숙한 나비로 진화한 느낌이랄까. 그녀의 파격적인 변신에 대한 호불호는 대중의 몫이지만 적어도 획일적인 음악이 공급과잉상태인 한국대중음악계에 다양한 질감의 음악을 수혈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가인의 상반신 누드 이미지가 파격적인 2집 는 재킷부터 시선을 잡아 끈다. 앨범 타이틀에 명기된 'S'라는 이니셜에 대한 발칙한 상상력 유발은 기분 좋은 보너스다. 만약 이 도발적인 재킷 이미지가 반짝 시선을 끌기 위한 에로틱 전략이라면 안쓰러웠을 것 같다. 가인의 2집이 반갑고 즐거운 이유는 파격적 변신이 단지 흥미유발만이 아닌 음악적 진보를 위한 필연적 과정임을 앨범의 완성도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인은 이미 솔로 1집에서 탱고 리듬과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합체한 실험적인 음악적 시도와 풋풋하고 당찬 가창력으로 솔로 가수로서의 존재감을 증명해, 팬들과 평단 모두로부터 극찬을 이끌어냈었다. 1집이 뭔가 알아가는 소녀 가인과의 설레는 만남이었다면 이번 2집은 진한 사랑의 의미를 아는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한 가인과의 황홀하고도 은밀한 만남이다. 이번 앨범은 국민여동생 아이유에 비견되는 가인의 청순, 상큼한 음색과 개인의 개성보다는 하모니가 중시되는 걸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활동 때는 경험할 수 없었던 밝고 도발적인 여인의 향기가 공존하는 치명적 매력을 담아냈다.

앨범에 수록된 5곡은 야릇하고 유쾌 통쾌한 웰메이드 페미니즘 영화 한편을 보여주듯 변화무쌍한 여인의 감성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타이틀 곡 'BLOOM(피어나)'의 뮤직비디오는 19금 판정을 받았을 정도로 후반부 성행위 묘사장면의 노골적인 표현수위로 인해 외설적이란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불쾌하기보다는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은 수려한 영상어법과 스피디하고 간결한 표현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첫 솔로앨범 타이틀곡 '돌이킬 수 없는'을 만든 작곡가 이민수와 작사가 김이나가 다시 의기투합해 만든 이 곡은 파격적인 표현수위를 극복시키는 밝고 드라마틱한 사운드가 압권이다. 특히 인트로부터 1절까지의 펑키 사운드와 리듬파트는 일렉트로닉 장르의 대표가수인 로이진 머피(Roisin Murphy)에 견주어도 손색을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음악·대중성 모두 갖춰

'팅커벨'은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일렉트로닉 스타일로 완성되는 다채로운 편곡을 통해 복잡 미묘한 여성의 다중적인 감성을 놀라울 정도로 상큼하게 그려냈다. 뮤직비디오에서 순수와 관능을 넘나드는 요정으로 변신한 가인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신비로운 기운을 유감없이 전달하는 기대 이상의 연기력으로 멀티플레이어적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랑의 감정이 사라진 여인의 차가운 태도를 표현한 '그녀를 만나'는 보컬을 전면에 내세우는 메시지전달 방식이 인상적인 트랙이다. 윤종신이 피쳐링으로 참여한 '시선'에서는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가인의 뇌쇄적인 보컬을 통해 농익은 여인의 체취를 전달하는 절정의 표현력을 녹여냈다. 또한 경쾌한 브라스와 톡톡 튀는 신스 라인을 혼합해 리드미컬한 분위기를 연출해 가인의 보컬에 생동감을 더해준 'Catch Me If You Can'까지 이 앨범은 금년에 발표된 국내 솔로가수의 앨범 중 가장 세련되고 파격적인 음악성을 담보한 동시에 지루함을 느낄 여지를 주지 않는 대중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는 흔치 않은 성과를 이뤄냈다.

이번 앨범은 국민여동생 아이유에 비견되는 청순, 상큼한 음색과 노래마다 질감을 달리하는 다양한 장르의 사운드에다 도발적인 여인의 향기가 공존하는 치명적 매력을 담아냈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각기 이질적인 곡 구성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앨범으로 여겨지는 것은 수록곡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일성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가인의 솔로 2집 는 '비주얼의 틀 안에 매몰된 아이돌 가수들의 제한적 표현영역을 극복시키는 전환점'이라 평가해도 좋을 근사한 하나의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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