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의 시대… 나른한 록발라드 예상 깬 히트

동시대를 뜨겁게 달궜던 빅히트 곡이라 해도 생명력이 유한적인 경우가 무수하다. 또한 발표 당시에는 아무런 기대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뒤늦게 바람을 일으키며 무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노래도 허다하다. 이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대중가요의 히트 여부는 양질의 텍스트 뿐 아니라 대중의 변덕스런 취향이나 사회적 분위기 같은 콘텍스트적 요인들까지 영향을 끼친다. 모두가 히트를 꿈꾸는 대중음악시장은 규격화된 히트 공식이 없기에 언제나 긴장감이 흐르고 트렌드 위주의 음악들이 넘쳐난다.

디스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폭발시킨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광풍이 후끈했던 1979년 11월 이맘때 즈음. 한국 대중음악계는 디스코 풍 댄스가요 열풍이 뜨거웠다. 그해 MBC 10대가수왕을 차지한 혜은이는 '제3 한강교'와 '새벽 비'의 동반히트 퍼레이드를 벌였고 이은하를 디스코 여왕으로 등극시킨 '밤 차', <나미와 머슴아들>의 '영원한 친구' 등 신나는 댄스음악은 10.26 궁정동 사건으로 우울했던 사회분위기까지 반전시켰다. 당대의 디스코 댄스곡들은 경쾌한 코드 전개와 귀에 콕콕 박혀오는 독특한 창법과 단순하고 스피디한 리듬으로 대중의 오감을 자극시켰다. 디스코 리듬에 전국이 들썩거렸던 그해, 대중가요계의 확실했던 히트 트렌드를 거스르는 의미심장한 두 장의 앨범이 조용하게 탄생했다. 조동진 1집과 3인조 록밴드 <노고지리> 2집이다.

조동진의 공식 데뷔앨범은 '행복한 사람'을 비롯해 '작은 배', '겨울비' 등 거의 모든 수록곡들이 70년대와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분기점으로 평가받는 명반이다. 홍보도 없이 발표된 당대의 루키 밴드 <노고지리> 2집은 지금껏 사랑받는 국민가요 '찻잔'을 탄생시켰다. 조동진의 노래들과 느릿하고 단조로운 기타 솔로로 시작되는 노고지리의 '찻잔'은 독특한 디스코풍의 댄스음악이 범람했던 당대의 음악적 트렌드와 멀찍한 간극을 보였다. 고로 히트는 물론이고 시대 초월적인 명곡 등극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노고지리> 2집은 총 11곡이 수록되었다. 앨범 발표 이후 대중적 주목을 받았던 노래는 하드록 트랙인 타이틀 곡 '조용한 방'이었다. 하지만 3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중의 향수를 자극시키는 명곡으로 여전히 사랑 받는 곡은 발표 당시엔 관심대상에서 한 참을 빗겨나 있던 '찻잔'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느리고 단순한 구성으로 나른하게 이어지는 록발라드풍의 노래 '찻잔'은 밴드 음악이라 하기엔 밋밋했다. 또한 통속적인 가요의 질감에 가까운 노래였기에 록 마니아들도 외면했던 노래였다. 하지만 이 노래는 음악다방과 심야 라디오프로를 통해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50만장의 앨범판매량을 기록한 이 앨범의 핵심 흥행 동력으로 급부상했다.

'찻잔'의 예상치 못한 빅히트는 비음이 섞인 독특한 보컬과 쓸쓸한 정서를 스케치한 가사가 절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킨 결과물이다. 실제로 "시내 어느 다방 창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쓸쓸한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노랫말은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한 청춘시절의 낭만을 떠올리는 미덕을 발휘한다. 또한 기타와 드럼 위주의 심플한 사운드 편성은 오히려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시키며 연인을 기다리는 지루하고 초조한 시간을 한 폭의 근사한 수채화로 그려냈다. 분위기가 비슷한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과 '안개' 같은 곡들도 '찻잔'과 더불어 정서적으로 연결고리를 지닌 서정적인 노래들이다.

록밴드 <노고지리>는 데뷔 즉시 스타덤에 오른 슈퍼 루키는 아니다. 안양예고 졸업 후, 1979년 2월 데뷔 앨범 <성주풀이>을 발표하며 등장한 이들은 '찻잔' 히트 전까지 음악적 성취나 대중적 인지도가 전무했었다. 1집에서 '성주풀이, '새타령' 등 민요를 록음악으로 재해석한 실험적 시도를 선보였지만 당시 생경한 크로스오버 음악에 열광할 준비가 된 대중은 거의 없었다. 그해 11월, 하드록과 록발라드로 변신한 2집을 통해 '제2의 산울림'이라는 평가를 획득하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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