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직가장의 '인간극장'작년 권고퇴직 이태준씨 670km 승마 국토 종주 국내 최초로 도전데뷔도 못하고 은퇴한 말 '윈디' 구매후 훈련시켜 '아름다운 동행' 시작

승마 국토종주 중인 이태준씨가 윈디와 함께 도심의 대로를 달리고 있다. 이씨는 이번 도전이 승마 발전과 실직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마사회 제공
40대 실직가장이 경주 부적격마를 타고 670km 거리의 승마 국토종주에 나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통신사 영업 에이전트로 일하다 지난해 희망퇴직을 권고 받고 회사를 나온 이태준(45)씨.

김포골드승마장에서 지난 10월 16일 승마 국토종주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한 이씨는 과천 천안 대전 구미 칠곡 경주 울산 등을 거쳐 종주 30일차 현재 마지막 목적지인 부산경남경마공원을 향해 말머리를 돌리고 있다. 이씨는 과천 서울경마공원 승마장 등 전국의 주요 승마장 19곳을 기착지로 삼아 하루 적게는 20km, 많게는 50km 내외의 거리를 말을 타고 걷고 달리고 있다.

그와 국토종주를 함께하는 '윈디'의 사연은 더 드라마틱하다. 원래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경주마 데뷔를 준비하던 윈디는 사람이 올라타면 전진하지 않고 후진하는 출발 습성으로 '출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경주 한번 뛰어보지 못하고 은퇴한 윈디는 승마장으로 보내졌고, 그 곳에서 승마를 하던 이태준씨를 만났다.

이씨는 본인의 모험적 성향과 윈디의 기질이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윈디를 구매하게 된 것도, 승마장에서까지 출발에 말썽을 일으키던 윈디가 유독 이씨가 기승하면 안정적인 걸음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국토 종주를 하겠다는 결심은 순식간이었지만 이를 위한 준비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먼저 윈디의 도로 적응력과 지구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 필요했다. 꾸준한 장거리 훈련을 통해 윈디의 구보속도는 시속 20~25 km, 경속보는 10km 내외로 끌어올렸다. 장거리 승마를 위한 독특한 부대장비들도 마련했다. 일반 편자는 80~90km를 이동하면 닳기 때문에 특수 제작된 '말 신발'을 구매해 신겨주었고, 마분이 도로에 흐르지 않도록 '말 기저귀'도 엉덩이에 달아주었다.

사실 이씨의 도전이 성공할 것이라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은 무모한 도전이라며 그를 말렸다. 일부 승마 동호인들조차도 윈디의 안전을 염려하며 조심스레 그의 결정을 만류했다.

그럼에도 이씨가 도전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가까이에서 이씨를 믿고 지원해준 아내가 있었기 때문. 아내 김소연(가명)씨는 승마국토종주 전 과정을 차량으로 에스코트하면서 무전기로 교통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또 다른 든든한 지원군은 전국의 승마장과 승마인들이다. 이씨의 협조요청에 한국마사회를 비롯해서 전국의 19개 승마장에서 기꺼이 윈디가 쉬어갈 마방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안성승마클럽에서는 말굽의 충격을 완화할 특수 편자를 장제해 주기도 했고, 추풍령 말사랑 호스타운에서는 영양제 링거를 놓아주기도 했다. 이씨는 "승마 국토종주의 전 과정이 승마인들의 도움으로 진행되었다"면서 "국토 종주에 성공한다면 가장 큰 수훈자는 윈디이고, 그 다음은 우리 승마인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윈디의 상태를 점검한 이태준씨는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길 위에 섰다. 퇴사자와 퇴역마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도전'은 스산한 늦가을 바람에 움츠리고 있는 많은 실직가장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줄 것이다.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